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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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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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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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 인**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은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 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가을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한 조각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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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신비와 내면의 순례
이 해 인 〈가을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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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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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길 위에서 시작되는 영혼의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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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 인 시인의 〈가을바람〉은 단순한 계절의 노래가 아니라, ‘바람’이라는 존재의 언어로 자신의 내면을 정화시키는 영적 고백 시이다.
시의 첫 행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은 외부의 자연이 내면의 영성으로 전환되는 경계를 보여준다.
자연의 움직임이 곧 영혼의 각성으로 이어지는 이 구절은, ‘가을바람’을 단순한 기후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일깨우는 성령의 숨결로 전환시킨다.
이때의 바람은 외부의 변화를 관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면의 잠든 감각을 일으키는 ‘부름’이며, 인간을 다시 ‘자기 존재의 중심’으로 이끄는 소리 없는 스승이다.
따라서 이 시는 ‘자연의 순환’에서 ‘영혼의 순환’으로, ‘바람의 흐름’에서 ‘생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명상의 시학(詩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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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 자리의 언어 — 생의 상실과 열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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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 자리마다 / 열매를 키워놓고”라는 구절은 상실과 결실의 이중 구조를 함축한다. 꽃의 낙화는 아름다움의 소멸이지만,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다. 시인은 “햇빛과 손잡은 / 눈부신 바람”으로 그 생의 변화를 노래하며, 존재의 근원적 상처조차 햇살로 승화시키는 가을의 은총을 찬미한다.
여기서 ‘바람’은 상실을 치유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것은 사라짐을 통해 남음을 배우는 바람, 다시 말해 모든 소멸이 하나의 시작임을 깨닫게 하는 ‘영혼의 동반자’이다.
이 해 인 시인은 인간의 고통과 회한을 직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생명과 사랑의 열매를 발견하는 성숙의 신학적 시선을 견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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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의 미학 이별의 시간에 서 있는 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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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싣고 오는 / 쓸쓸함으로 / 나를 길들이면”이라는 대목은, 인간이 감정의 풍랑 속에서도 자신을 다스려야 함을 일깨운다. 이 해 인의 ‘쓸쓸함’은 단순한 고독이 아니다. 그것은 ‘견딤의 예술’이자 ‘성숙의 감정’이다. 그녀는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 견뎌 낼 수 있으리”라며, 인간이 이별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배우는 과정을 수용한다.
이 부분은 ‘쓸쓸함’이라는 감정이 인간의 영혼을 길들이는 ‘훈련된 침묵’의 시간으로 재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별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그 속에서 영혼이 단단해지는 과정을 받아들이며, 삶을 다시 ‘기도의 자리’로 되돌린다. 이 해 인의 언어는 언제나 슬픔 속에서도 은총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시인의 시가 지닌 영적 품격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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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영성
말 너머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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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 향기로운 모든 말 / 깊이 접어두고 / 침묵으로 침묵으로 / 나를 내려가게 하는 / 가을바람이여”
이 연은 시 전체의 영혼이다.
시인은 언어의 아름다움을 넘어, 언어의 근원을 향해 내려간다.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는’ 과정은 곧 자아의 비움과 존재의 순례이다.
이때의 침묵은 단순한 말의 부재가 아니다. 모든 소리의 근원인 ‘무(無)의 자리’로 향하는 행위이다. 이 해 인 시인에게 있어 ‘기도’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 멈춘 자리에서 ‘바람처럼 흐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중심 주제는 “침묵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 그 침묵은 삶의 허물을 덮고, 상처를 품어준다.
인간을 다시 고요한 사랑의 자리에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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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의 비유, 자유의 은유>
“하늘 길에 떠가는 / 한 조각구름처럼 / 아무 매인 곳 없이”라는 대목은 자유의 시학이다. 시인은 구름처럼 속박되지 않는 존재를 꿈꾸며, 세속의 욕심에서 벗어나 영혼의 자유를 갈망한다. 이때의 자유는 도피가 아니라 내려놓음의 자유, 다시 말해 ‘욕망의 해탈’을 뜻한다.
그녀는 “내가 님을 뵈옵도록 /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라 고백한다.
여기서 ‘님’은 하느님, 또는 절대자의 상징이다.
인간을 자신으로부터 밀어내는 ‘바람’이 바로 신의 손길이다. 인간이 ‘홀로 가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그 길 끝에서 신의 바람이 늘 자신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바람과 구름’이라는 투명한 이미지로 형상화한 탁월한 상징적 표현으로, 이 해 인 시학의 핵심인 “하느님의 바람에 이끌리는 인간의 순리이며 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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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 속의 충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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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는 시의 결론이자, 인생의 깨달음이다.
이 문장은 외로움의 극복이 아니라, 외로움을 통한 충만의 선언이다. 즉, 홀로 있음 속에서도 신과의 일체를 체험하는 영적 자족의 경지다. 이 해 인 시인의 모든 시가 그러하듯, 인간의 고통은 신의 품 안에서 완성된다.
이때 ‘외롭지 않음’은 사람의 곁에 누군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안에 깃든 바람’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바람은 신의 손길이다.
그 손길이 닿는 한 인간은 결코 고립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시의 가장 숭고한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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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의 신학적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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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은 계절의 풍경시를 넘어선 영혼의 계절시(季節詩)이다.
봄의 환희, 여름의 충만, 겨울의 고독을 넘어, 가을은 인간이 가장 ‘비워지는 계절’이다.
이 해 인 시인은 그 비움 속에서 ‘기도의 완성’을 본다.
그녀에게 가을은 ‘생의 정점이 아니다. 영혼의 회귀점’이다. 바람은 생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숨결이며, 인간을 다시 근원으로 이끄는 순례의 동반자다. 시인은 자연의 변화 속에서 ‘내면의 변화를 성찰’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 ‘사랑’과 ‘침묵’을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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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결>
이 해 인 시학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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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언어의 절제 속에 빛난다. 화려한 수사가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모든 단어가 ‘기도의 음률’로 정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침묵, 쓸쓸함, 햇빛, 열매, 구름, ‘바람’ 등은
이 해 인 시학의 5대 영적 상징어이며, 시인의 시는 언제나 이 단어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내면의 찬미 시’를 완성해 나간다.
시인의 언어는 말보다 향기롭고, 문장보다 조용하다. 그것이 바로 이 해 인 시인의 윤리이다. “말이 아니라 사랑으로 존재하는 시인”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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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총평> 가을의 숨결로 드러나는 인간의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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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은 생의 덧없음 속에서 영원의 향기를 길어 올린 시이다.
이 시를 읽는 일은 마치 조용히 예배당 창문을 여는 일과도 같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지만, 그 바람은 생의 향기로 변한다.
시인은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고요를 선택하고, 외로움 속에서도 신을 선택한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향한 인간의 응답이다. 이 해 인의 바람은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영혼의 계절’이 움직이는 소리다.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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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에서 시작되는 기도
가을바람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한순간 멈추어 선다. 그리고 깨닫는다.
삶의 모든 바람은 결국 내 안의 바람이었다.
이 해 인 시의 마지막 고백처럼,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
그 한 줄 속에 가을의 모든 철학, 모든 기도, 모든 삶과 생이 머물러 있다.
시인의 바람은 오늘도 우리 마음의 창을 열고, 사랑으로 깨어나는 침묵의 계절을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