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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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이야기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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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희 시
우리는 출발에서
마무리까지 옷에서
시작해서
옷으로 끝난다
엄마 뱃속에서
응애, 하고 나왔을 땐
배냇저고리 입었고
아동기, 청년기, 장년기
나이 따라 바꿔 입었다
그리고 하늘나라 갈 때
자식들은 상복 입고
나는 수의를 입고
마지막 하늘 가는 거,
결국 배냇저고리에서
수의까지
내 생애 의복 역사는
바늘과 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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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라는 존재의 껍질 ― 유숙희 시〈옷 이야기 / 4〉평론》
박성진 문화평론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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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으로 짜인 인간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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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희 시인의 「옷 이야기 / 4」는 인간의 일생을 ‘의복의 연대기’로 함축한 작품이다. 옷은 이 시에서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니라,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잇는 존재의 표피(表皮)로 기능한다.
태어날 때의 배냇저고리와 죽을 때의 수의가 맞닿을 때, 인간의 생애는 원환처럼 닫힌다. 시인은 그 사이를 바늘과 실이라는 매개로 꿰매며, “살아있음”의 의미를 손끝의 행위로 환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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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의 철학 삶의 무늬를 꿰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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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시간의 기록물이다. 아이의 저고리, 청년의 정장, 장년의 근무복, 노년의 수의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옷을 바꾸며 나이를 먹는다.
시인은 “나이 따라 바꿔 입었다”는 소박한 구절 안에 삶의 단계적 진화와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담는다.
즉, 옷을 바꾸는 일은 곧 존재의 탈피(脫皮)이며, 인간은 인생의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듯 시간의 옷을 벗고 입는 존재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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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실, 삶과 죽음의 연결선>
마지막 연 “내 생애 의복 역사는 / 바늘과 실이었다”는 구절은 이 시의 결론이자 정점이다.
여기서 바늘은 삶의 의지, 실은 관계와 연결의 상징이다.
옷을 꿰매듯, 인간은 관계와 기억을 꿰매며 살아간다. 삶의 틈이 찢어질 때마다 바늘은 다시 들어가고, 실은 이어진다. 결국 이 시는 “인생은 꿰매지는 시간의 직조물”이라는 존재론적 통찰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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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과 수의 남은 자와 떠나는 자의 의례>
“자식들은 상복 입고 / 나는 수의를 입고”라는 부분은 인간의 마지막 장면을 의복의 교차로 보여준다. 남겨진 자는 애도의 흰옷, 떠나는 자는 순백의 수의를 입는다. 두 옷 모두 ‘흰색’이라는 공통점을 지니며, 이는 정화와 귀환의 색이다. 시인은 이 장면을 통해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귀소(歸所)의 의식으로 승화시킨다.
옷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여전히 인간을 감싸는 마지막 포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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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물에서 철학으로 미니멀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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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희 시의 가장 큰 미덕은 간결함 속의 사유이다. 화려한 수식이나 감정의 폭발 없이, 시인은 단 네 연의 일상 언어로 생과 사의 본질을 관통한다. “배냇저고리에서 수의까지”라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인간의 시간을 모두 품는다.
이 절제된 언어는 불필요한 장식 대신 본질에 다가가는 미학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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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옷의 끝, 인간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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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는 “인생은 옷을 입는 시간”이라는 진실을 담고 있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입고 벗는 존재’이며, 그 반복 속에서 자기의 흔적을 남긴다.
바늘과 실로 이어진 옷의 역사는 곧 인간의 이야기다.
옷은 인간의 생을 감싸는 천이 자, 영혼을 묶는 실이다.
유숙희 시인은 그 사실을 한 올의 언어로 꿰매,
한 편의 시를 완전한 수의처럼 봉합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