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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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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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위식 시인
가랑잎 하나
빙그르 세월을 난다
앙상한 가지에 앉은
작은 새 한 쌍
"난 너만 있으면 좋아"
재잘재잘 고운 눈빛
끄덕끄덕 익어가는 사랑
노을 깃든 가을 뜨락
낙엽처럼 뒹구는 지난날들
"나는 당신이 있어 행복해요"
생그레 수줍은 양
정겨운 눈길
노란 단풍잎 하나
빙그르 돌려보는
가을 나무
나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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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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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뜨락의 심연, 사랑과 시간의 시학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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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 하나의 은유 ― 시간의 춤과 존재의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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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구절 “가랑잎 하나 / 빙그르 세월을 난다”는 매우 짧지만, 시 전체를 여는 시문학적 화두다. 가랑잎은 사소하고 연약하다.
그러나 그 연약함은 곧 시간의 본질을 압축한다. ‘빙그르’라는 회전의 언어는 시간의 소멸을 단순한 추락이 아니라 춤추는 흐름으로 바꾼다. 이는 동아시아 시학의 핵심적 시간관과 맞닿는다.
서양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달려 소멸을 향한다. 그러나 동양에서 시간은 원형과 순환의 이미지로 이해된다. 이 한 구절은 “시간은 소멸이 아니라 유희 속에 존재한다”라는 사상을 담는다. 인간의 생애 또한 추락처럼 보이지만, 회전하는 춤처럼 의미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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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가지의 허무와 작은 새의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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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가지에 앉은 작은 새 한 쌍.” 가지는 앙상하다. 그 앙상함은 나무의 결핍, 인생의 허무, 세월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위에 앉은 작은 새 한 쌍은 생명의 온기, 사랑의 충만, 동행의 기쁨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허무와 충만의 성숙함이다.
시인은 비어 있는 공간 속에 사랑이 깃들 때, 허무조차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 서정시 전통에서 ‘허무와 충만’의 대비는 흔히 사용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서도 빈 하늘과 별이 대비되는 순간이 있다. 신위식 시인의 이 장면은 그런 전통 위에 세워지며, 사랑의 소박한 순간을 허무 속의 충만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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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언어 소박함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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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만 있으면 좋아.” 이 고백은 언어적으로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시에서 갖는 힘은 특별하다.
진정한 사랑의 언어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일상에서 길어 올린 말이다.
시인은 부부의 삶 속에서 나누는 소소한 대화를 그대로 시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그 소소함은 곧 ‘영원한 언약’으로 변환된다.
여기서 시인은 ‘사랑의 본질은 단순하다’라는 진리를 선언한다.
인간이 허무와 시간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이처럼 단순한 고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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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성숙 ‘익음’의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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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끄덕 익어가는 사랑.” 사랑이 익는다는 표현은 계절과 맞닿아 있다.
봄은 시작, 여름은 충만, 가을은 익음, 겨울은 침묵이다.
시인은 가을을 사랑의 성숙으로 읽는다. 사랑은 단순히 열정이 아니라, 시간이 빚어내는 향기이자 인내의 결실이다.
‘끄덕끄덕’이라는 반복은 마치 부부가 서로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용하는 장면을 그린다. 사랑은 이해와 수용, 기다림과 인내 속에서 무르익는다.
시인은 사랑을 계절의 언어로 번역하며, ‘시간이 빚은 사랑’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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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의 빛과 황혼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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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깃든 가을 뜨락.” 노을은 하루의 끝이다. 그러나 노을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하루 중 가장 화려한 색채를 뿜어내는 순간이다. 인생의 황혼도 그렇다.
세월은 쇠락처럼 보이지만, 그 쇠락 속에서 오히려 가장 찬란한 빛이 터져 나온다. 시인은 부부의 삶을 노을빛으로 물들이며, 사랑의 황혼이 오히려 절정임을 드러낸다.
한국 시에서 노을은 흔히 서글픔과 회한의 상징이다. 그러나 신위식은 그 전통적 정조를 확장한다. 여기서 노을은 슬픔이 아니라 성숙, 상실이 아니라 충만, 끝이 아니라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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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과 지난날들의 허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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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처럼 뒹구는 지난날들.” 낙엽은 사라짐을 뜻한다. 그러나 낙엽은 흙으로 돌아가 새 생명을 낳는다. 과거도 마찬가지다. 흩날리며 사라지는 듯 보이는 기억이 사실은 현재를 지탱하는 밑거름이 된다. 시인은 허무 속에서도 의미를 길어낸다. 시간은 뺏어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남겨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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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고백 존재론적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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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있어 행복해요.” 시 속에서 가장 단순한 이 문장은, 사실 가장 심오하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관계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아내라는 존재가 곁에 있기에, 허무도 두렵지 않고 시간도 의미를 갖는다.
이 구절은 단순한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존재론적 선언이다.
‘사랑이 존재를 지탱한다’는 진리를 함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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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의 지속성과 사랑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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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그레 수줍은 양 / 정겨운 눈길.” 오래된 관계에서 수줍음이 유지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부부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서로에게 설레고, 여전히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것이 사랑의 갱신이다.
사랑은 익숙함 속에서도 새로움을 유지할 때,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수줍음은 사랑의 윤리, 정겨움은 사랑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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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의 미학 빛나는 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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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단풍잎은 쇠락과 죽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것은 황금빛 절정이다.
단풍은 죽음을 앞두고 가장 찬란한 색을 낸다. 인간의 생애도 그렇다.
노년은 끝이 아니라, 빛나는 절정일 수 있다.
“빙그르 돌려보는” 단풍잎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지나온 생애를 환히 되돌아보는 태도다. 삶은 소멸 속에서도 빛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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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무, 나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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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구절은 시 전체를 집약한다. 아내는 나무다. 나무는 땅에 뿌리내리고, 계절을 견디며,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잎을 지는 존재다. 아내는 인생의 동반자가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는 ‘나무’다. 시인은 아내를 단순히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기반으로 노래한다. 이는 한국 서정시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존재론적 부부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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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락의 공간성, 경계, 내면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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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뜨락’은 물리적 공간이자 심리적 공간이다. 뜨락은 집과 자연의 사이, 안과 밖의 경계다. 그 경계는 곧 인간 마음의 경계다. 시인은 가을 뜨락에 사랑과 시간을 배치함으로써, 외부 풍경을 내면의 정원으로 전환한다. 뜨락은 곧 시인의 내면이자, 부부의 공동체적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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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상호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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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미학적 구조는 자연과 인간의 병치이다. 낙엽은 시간, 가지는 허무, 새는 사랑, 노을은 황혼, 단풍은 생애, 나무는 아내다. 자연은 인간을 비추고, 인간은 자연을 해석한다. 이 상호 해석의 구조가 서정시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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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절제와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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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속 언어는 절제되어 있다. 화려한 비유나 난해한 문장은 없다. 대신 일상 언어가 배치된다. 그러나 이 절제가 오히려 울림을 낳는다. 시 속에서 “좋아”, “행복해요”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영원한 고백이 된다. 이는 절제된 언어가 만들어내는 시학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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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시간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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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핵심은 사랑과 시간의 화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가지만, 사랑은 그 시간을 의미로 바꾼다.
낙엽 같은 지난날도, 노을 같은 황혼도, 사랑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시인은 사랑을 통해 시간과 화해하고, 존재와 화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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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뜨락의 총체적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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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뜨락」은 단순한 계절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과 시간, 허무와 충만, 소멸과 성숙이 교차하는 서정의 총체다.
신위식 시인은 자연의 사소한 장면에서 존재의 철학을 길어 올린다. 결국 이 시가 말하는 것은 단 하나다.
“사랑은 세월을 견디는 힘이며, 황혼조차 찬란하게 만드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