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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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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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위식
사회를 위하여
세상 헛된 욕망
태우며 또 태우며
가슴 깊숙이 흐르는 회한의 빛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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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회한의 철학과 존재의 여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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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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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끝에서 인간의 초상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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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위식 시인의 〈석양〉은 짧지만 강렬한 시적 응축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단 네 줄로 구성된 이 시는 마치 서예의 필획처럼 절제된 언어 속에서 ‘인간 존재의 윤리적 불꽃’을 그려낸다.
이 작품의 본질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태움과 회한’이라는 내면의 윤리학적 사유이다. ‘석양’은 하루의 종말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사회를 위해 스스로를 태우는 정신적 불길의 은유다.
시인은 자신의 생애를 ‘욕망의 소각장’ 위에 올려놓으며, 남김없이 타오른 후에 남는 빛을 ‘회한의 빛 물’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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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행의 윤리 “사회를 위하여”라는 선언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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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첫 행 “사회를 위하여”는 매우 이례적이다. 현대시에서 ‘사회’를 이렇게 전면에 내세운 시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시가 개인의 감정과 사적 기억에 집중하는 데 반해, 신위식 시인은 ‘사회’라는 공공적 차원을 서두에 내세운다. 이는 시인이 개인의 존재 이유를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찾는 윤리적 시인임을 보여준다.
이 구절은 윤동주의 「서시」 첫 행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지점에 맞닿아 있다. 그러나 윤동주가 하늘을 향한 초월적 윤리를 노래했다면, 신위식 시인은 땅 위의 사회적 윤리를 택한다. ‘사회’라는 현실 속에서 헛된 욕망을 태우며 자신을 소진시키는 그의 시선은, 성자의 초연함이 아닌 현대인의 윤회적 노동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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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헛된 욕망 태우며 또 태우며”---불의 반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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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시의 중심축이다. “태우며 또 태우며”라는 반복은 수행과 속죄, 그리고 미련의 반복성을 드러낸다.
단 한 번의 소각이 아닌, 끝없이 자신을 태워야 하는 ‘윤리적 루프’ 속 인간의 운명을 말한다. ‘욕망’은 단순히 물질적 탐욕을 넘어, 인간 존재 그 자체의 동력이다.
시인은 그 욕망을 억누르거나 부정하지 않고, “태우며 또 태우며”라는 행위를 통해 자기 정화의 불로 전환한다.
이때의 ‘불’은 파괴가 아니라 승화의 상징이다. 시적 주체는 스스로의 욕망을 불태우며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윤리적 연소체가 된다. 여기에는 불교의 ‘소욕지족’ 정신, 기독교의 ‘속죄의 불길’, 그리고 스토아 철학의 ‘내적 절제’가 겹겹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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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깊숙이’ 감정의 심층으로 들어가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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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행의
‘가슴 깊숙이’는 이전의 사회적·윤리적 언어를 내면의 심연으로 돌린다. 시의 시선이 외부 세계에서 자기 내면의 심층심리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가슴 깊숙이’라는 말은 인간의 정서적 심장, 즉 양심의 자리를 가리킨다. 이 지점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초자아의 내면화된 목소리가 울려 나오는 곳이다. 시인은 바로 그 자리에서 ‘회환의 빛 물’을 본다. 그것은 눈물이자, 윤리의 결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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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회한의 빛 물”---시간과 구원의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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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의 “흐르는 회한의 빛 물”은 이 시의 정점이다.
‘회한’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회심(悔心)과 환생(換生)의 중의적 언어이다.
시인은 자신이 살아오며 반복한 욕망과 실패를 돌아보며, 그 모든 것을 빛으로 전환한다.
“빛 물”이라는 단어는 아름답다.
물은 정화의 상징이고, 빛은 구원의 상징이다.
두 상징이 결합하면서, 시인은 “눈물로 씻어낸 빛의 인간학”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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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물’은 어둠 속에서도 흐르는 존재의 증거다. 그것은 인간이 완벽하게 구원받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선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의 흔적이다.
신위식 시인의 시에서 인간은 구원된 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구원을 시도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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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절제미 불필요한 수식의 완전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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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형식은 절제의 극치이다.
불필요한 형용사나 장 식어 없이, 명사와 동사만으로 의미를 구축한다.
이 언어의 절제는 오히려 시의 울림을 극대화하였다.
‘석양’이라는 제목조차 시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시인은 그 단어를 언어 밖의 빛으로 남긴다.
독자는 시를 읽으며 자연스레 석양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태워 사라지는 인간의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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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철학 붉음에서 빛 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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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색은 붉음이다.
그러나 신위식 시인의 붉음은 단순한 노을빛이 아니라 욕망의 불길이 식으며 남긴 여운의 붉음이다.
이 붉음이 식은 뒤 남는 것이 바로
‘빛 물’이다. 불에서 물로, 뜨거움에서 차가움으로, 욕망에서 회한으로의 전환은 색채의 철학적 순환을 의미한다.
시인은 불과 물, 붉음과 투명함을 연결하며 존재의 변증법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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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시간성 유한 속의 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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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은 하루의 끝이자 새로운 밤의 시작이다. 시적 시간으로 보면 ‘죽음과 탄생이 교차하는 경계의 순간’이다.
신위식 시인은 그 경계에서 인간의 내면을 비춘다.
이 시간성은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인간은 죽음을 의식할 때 비로소 자신답게 존재한다.
시인은 ‘욕망을 태우며’ 자신의 죽음성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회한의 빛 물’을 조명한다. 그것이 바로 존재의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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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해석 불교와 기독교의 융합적 상징>
불을 통한 정화는 불교적 수행의 상징이자, 기독교의 성화의 과정과도 닮아 있다. 신위식 시인의 시는 두 사상의 경계를 허문다. ‘태우며 또 태우며’는 불교의 소멸적 수행을, ‘빛 물’은 기독교의 눈물과 세례의 이미지를 품는다.
이 시는 종교를 초월한 보편적 구원의 시학이다.
시인은 종교적 언어를 빌리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속죄와 구원, 윤리와 사랑의 가능성을 동시에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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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차원 “사회를 위하여”의 윤리적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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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위식 시인의 시가 특별한 이유는, 개인의 회한을 사회적 윤리로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시가 지나치게 자기 서정에 갇혀 있을 때, 그는 사회를 향해 첫 행을 던진다. 그것은 시대의 시인으로서의 책임 선언이다.
그의 ‘석양’은 곧 퇴근길의 석양, 노동자의 석양, 시민의 석양이다.
사회를 위해 자신을 태우며 살아온 모든 이들의 초상이다. 이 시의 ‘불’은 시인의 것만이 아니다.
시대 전체의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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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윤리, 회한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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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은 짧지만 완결된 우주를 품은 시다. 시인은 ‘태움’과 ‘회한’, ‘불’과 ‘빛 물’을 통해 인간 존재의 윤리적 서사를 세 줄 안에 새긴다.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정화의 소멸, 죽음이 아니라 구원의 황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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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세계에서 석양은 더 이상 하루의 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도덕적 연소, 영혼의 정화, 그리고 남은 빛의 철학이다.
신위식 시인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불꽃으로서, “사는 것 자체가 이미 시”임을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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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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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은 ‘사회적 윤리’와 ‘개인적 회한’을 연결하는 현대의 짧은 대서사시다.
자연 숲 속의 풀잎 같은 잔향이 나는 시인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서, 빛 물처럼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