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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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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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광스님
우리네 인생길,
저마다의 추억을 담아 걷는 길이옵니다.
똑같은 길은 하나도 없기에
인생길은 곡예사의 줄 위와도 같지요.
사는 동안
아무도 해킹할 수 없는
나만의 특허 같은 길,
그 위를 묵묵히 걸어갑니다.
사랑에 아파하고,
그리움에 젖으며,
끝내 미소로 답한다면
그 또한 성공한 인생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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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광스님 〈인생길〉 — 고통과 미소의 변증법, 불멸의 수행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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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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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수행의 길로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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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은 단순한 회고나 인생철학이 아니다. 수행의 언어로 써진 ‘길의 시학(詩學)’이다.
스님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인간의 길이란 곧 깨달음의 여정이며, 그 길은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만의 법(法)’이라 선언한다.
“우리네 인생길, 저마다의 추억을 담아 걷는 길이옵니다.”라는 첫 구절은 자비의 목소리이자, 일체중생의 길을 동일한 존엄으로 보는 불교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그 말속에는
내 길과 그대의 길이 다르지 않다는 연기(緣起)의 원리가 숨어 있다.
모든 존재의 인생길은 고통과 희망, 집착과 비움의 연속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수행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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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예사의 줄 위’ — 긴장과 생존의 은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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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똑같은 길은 하나도 없기에 / 인생길은 곡예사의 줄 위와도 같지요.”라 노래한다.
이 구절은 단 한 줄의 인생론이면서, 동시에 불교의 ‘중도(中道)’ 철학을 시적으로 구현한 문장이다.
곡예사는 줄 위를 걸을 때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
그 불안과 공포 속에서 그는 균형을 잡고, 중심을 세운다.
삶이란 곡예사의 긴장처럼, 늘 위태로움과 깨어 있음의 경계에 존재한다.
스님은 바로 그 지점을 수행의 현장이라 본다.
인생이 평탄하다면 깨달음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삶의 흔들림과 아픔은 오히려 깨달음의 촉매이다.
그 줄 위에서 우리는 존재의 본질을 자각한다.
그렇게 인생은 단순한 여정이 아니다. ‘넘어짐과 일어섬의 반복’이며, 그것이 바로 불성(佛性)의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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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할 수 없는 길” 현대어 속의 불법(佛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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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 아무도 해킹할 수 없는 / 나만의 특허 같은 길.”
이 부분은 시 전체의 중심 축이다.
‘해킹’이라는 현대 정보기술의 언어를 불교적 사유로 옮긴 이 절묘한 비유는, 스님의 세속과 초월의 감각이 얼마나 현대적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킹은 곧 외부의 침입, 타인의 간섭, 세속의 욕망을 상징한다.
그런데 “아무도 해킹할 수 없는 길”이란, 결국 내면의 ‘청정한 법신(法身)’을 의미한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진리, 자기만의 수행의 법칙.
스님은 그것을 ‘특허’라 부른다.
이 ‘특허’는 세속적 독점이 아니다.
삶의 진실을 자기 안에서 발견한 자의 영적 독립선언이다.
세상은 카피와 모방으로 넘쳐나지만, 수행자는 오직 자신의 길을 걷는다.
그 길 위에서 그는 외부의 평가나 세속적 경쟁을 초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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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심연 사랑과 그리움의 불교적 의미>
“사랑에 아파하고, 그리움에 젖으며”라는 구절에서 시는 수행자의 길에서 인간의 길로 내려온다.
스님은 인간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사랑과 그리움은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번뇌의 근원일 수 있다.
하지만 스님은 그것을 고통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본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서 연민과 이해를 키워내는 것이 진정한 자비(慈悲)이다.
사랑이 아픔으로 끝나도, 그리움이 상처로 남아도, 그것을 “미소로 답한다면” 그 길은 이미 해탈의 문턱에 닿는다.
즉, 이 시에서 ‘사랑’은 세속의 감정이 아니라 수행의 거울이다.
사랑을 통해 자신을 보고, 그리움을 통해 자신을 비우는 것.
그것이 곧 혜광스님의 인생길이자, 시적 사유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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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로 답한다면” --- 열반의 조용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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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마지막 행은 수행자의 고요한 결론이다.
“끝내 미소로 답한다면— / 그 또한 성공한 인생길이겠지요.”
여기서 ‘미소’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열반의 표정이다.
불교의 수행자들이 임종의 순간에 미소를 머금는 것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해탈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성공’을 세속의 기준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에게 성공은 권력이나 명예가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내면의 평화이다.
그 미소 속에는 사랑의 용서, 고통의 수용, 삶 전체에 대한 감사가 깃들어 있다.
따라서 이 시의 마지막 행은, 인간의 끝이 아니다. ‘깨달음의 시작’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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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단단한 수행 담백함 속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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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의 언어는 짧고 단단하다.
스님은 어떤 장식도 하지 않는다.
시인의 시는 마치 목탁소리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울린다.
‘곡예사’, ‘해킹’, ‘특허’, ‘미소’ 등 낯익은 단어들이 수행의 언어로 변모하는 순간, 시는 세속과 종교, 일상과 초월의 경계를 허문다.
그 담백함 속에서 진리의 투명성이 빛난다.
진정한 불교 시는 화려한 법문이 아니다.
한 줄의 호흡과 한 순간의 자각에서 태어난다.
혜광스님의 시는 그 자각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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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생애와 수행의 궤적
시의 내적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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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광스님은 삶의 고비마다 수행으로 방향을 틀어왔다.
요식업으로 번 돈이 마음의 평화를 주지 못했을 때, 그는 세속의 성공 대신 깨달음의 길을 선택했다.
그가 시에서 “나만의 특허 같은 길”이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세속의 욕망을 내려놓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단순한 관조가 아니다. ‘체험의 문학’이다.
그는 돈과 명예, 관계의 실패 속에서도 자신을 해킹하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바로 이 시가 담고 있는 윤리적, 영적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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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시학의 현대적 진화>
〈인생길〉은 전통적인 불교 게송의 형식을 벗어나, 현대시의 언어로 불법의 진리를 전한다.
불교 시가 종종 교리 중심으로 흐를 때, 이 작품은 인간의 체험 속에 법(法)을 녹인다.
‘곡예사’, ‘특허’, ‘해킹’ 등은 불교에서 보기 드문 비유이지만, 스님은 이를 통해 불법의 보편성을 입증한다.
진리는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발화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법이다.
그 점에서 혜광스님의 시는 불교시의 현대화, 그리고 서정의 영적 확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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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정점> 나만의 길, 모두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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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핵심은 “나만의 길”이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길은 이기적 자기완성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길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길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불교적 깨달음의 본질이다.
“나만의 특허 같은 길”은 동시에 “모두의 고유한 길”이다.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순간, 세계는 다툼 대신 화해로 향한다.
즉, 혜광스님의 인생길은 개인의 길을 넘어 공존의 길, 연기의 길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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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 마지막 미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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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생과 사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는다.
‘끝내 미소로 답한다면’은 죽음을 암시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조차 수행의 일부, 인생길의 한 구간으로 본다.
이 평화로운 인식은 스님의 체득된 불이(不二) 사상, 즉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깨달음의 증거이다.
인생길의 마지막에서 남는 것은 ‘한 줄 미소’이다.
그것이 바로 불멸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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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길이 곧 깨달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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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은 혜광스님 자신의 생애와 수행의 궤적을 시적 언어로 압축한 진혼과도 같다.
그는 세속의 상처를 수행의 지혜로 전환했다.
그가 걸은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스님은 자신의 존재를 ‘사랑으로, 미소로’ 증명했다.
결국 이 시는 인간 누구나 걸어야 할 내면의 순례를 노래한다.
누군가는 부와 명예로, 누군가는 믿음과 자비로 걷는다.
그러나 진정한 수행자는 고통을 통과한 자이며, 그 길 끝에서 세상을 향해 조용히 미소 짓는 자이다.
그 미소 한 줄이 바로 혜광스님의 불멸의 서명이며, 오늘 우리가 다시 걸어야 할 인생길의 불빛이다.
인생길은 아슬아슬한 곡예사의 긴장처럼 다가오지만 나만의
특허받은 단 하나의 길이기에 한 줄의
미소를 남기기 위해 수행자의 삶이란
보석같이 빛나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