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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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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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
그날, 바다는 조용히 갈라지고
바람은 길을 내주었다.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스치는 숨결을 느꼈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 이어지고,
물안개 속에는 믿음의 노래가 번졌다.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어린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겨
하늘이 여신 길 위를 걸었다.
하나님은 소리 없이 일하셨다.
명령도 외침도 없이,
그저 사랑으로 바다를 가르셨다.
그 인자하심이 바람처럼 흘러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다.
오늘, 나 또한 그 바다 앞에 선다.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내 안의 작은 믿음을 꺼내어 놓는다.
하나님은 여전히 내 삶 속에서
막힌 길을 여시고
눈물의 강 위에 다리를 놓으신다.
홍해는 옛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리고 있는 은혜의 문이다.
그분의 사랑이 내 안에 흐른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히 내 삶을 인도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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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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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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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홍해’라는 이름의 거룩한 알레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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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의 산문시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는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한 장면을 모티프로 삼되, 단순한 신앙의 회상에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고대의 서사에 ‘오늘의 인간’을 불러들인다.
그날의 바다는 이스라엘의 바다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두려움과 좌절이 닿는 현실의 바다이다. “그날, 바다는 조용히 갈라지고 / 바람은 길을 내주었다”는 시구는, 초자연적 사건의 묘사라기보다 ‘불가능 속에서 가능이 열리는 순간’에 대한 내적 체험이다. 이 시는 인간의 무력함이 곧 신의 힘을 드러내는 자리라는 것을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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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서사와 현대인의 신앙적 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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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놀라운 점은, 기적을 바라보는 시선이 감각적이기보다 사유적이라는 데 있다. 바다의 갈라짐은 시각적 장관이 아니라, 믿음의 내적 진동이다.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 하나님의 손길이 스치는 숨결을 느꼈다”는 대목은 인간의 감각이 아니라 영적 촉각으로 신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이는 출애굽기의 모세 서사보다 훨씬 내면화된 묘사로, 신의 능력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숨결로 ‘느끼는’ 경건의 체험을 보여준다.
시인은 여기서 ‘신의 개입’을 외부적 폭력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은밀한 ‘감응’으로,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의 내면을 적시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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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의 핵심 ‘노예에서 신앙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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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의 홍해 사건은 이스라엘이 노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모한 전환점이다. 박성진 시인은 이를 시적으로 압축해 “모래 위에 발자국이 이어지고, / 물안개 속에는 믿음의 노래가 번졌다”라고 표현한다.
이 구절은 해방의 행렬이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예배의 시작’ 임을 암시한다.
물안개 속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는 단순한 환호가 아니라 신앙의 새 언어이다.
그 발자국은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영적 소속의 표시다.
인간의 구원은 탈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 안으로의 귀환’ 임을 시인은 통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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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어린아이’의 이미지, 세대를 초월한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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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 어린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겨”라는 시구는 한 장면으로 구속사의 세대적 연속성을 압축한다. 구원은 특정 세대의 사건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사랑의 유산이다.
지팡이는 경험과 신앙의 상징이며, 품은 보호와 전승의 상징이다. 바다 위를 걷는 이미지와 노인의 느린 발, 아이의 잠든 얼굴 속에는 신앙의 시간성이 응축되어 있다. 홍해는 세대를 나누는 벽이 아니라, 세대를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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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없는 일하심’ 침묵의 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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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소리 없이 일하셨다”는 문장은 이 시의 심장이다. 시인은 신앙의 역사를 외침이 아닌 ‘침묵의 섭리’로 본다. 이는 시편 46편의 구절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라”와 통한다.
박성진 시인의 해석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은 명령이 아니라 사랑이다. “명령도 외침도 없이, / 그저 사랑으로 바다를 가르셨다.” 신은 권력의 신이 아니라 관계의 신이다. 그분의 기적은 강요가 아니다. 사랑의 흐름으로 인간의 심장을 건넌다.
이 구절은 기독교 신학의 핵심인 ‘아가페’(Agape)를 시적 언어로 구현한다.
홍해의 갈라짐은 곧 ‘사랑의 분수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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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현재화 ‘오늘’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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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구원의 사건을 과거로 두지 않는다. “오늘, 나 또한 그 바다 앞에 선다.” 이 한 줄이 바로 시간의 벽을 무너뜨린다. 홍해는 더 이상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지금 내 앞의 현실이 된다.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 내 안의 작은 믿음을 꺼내어 놓는다’는 고백은 인간 실존의 내밀한 장면이다. 신앙은 거대한 전율이 아니다. 작지만 진실한 ‘내면의 행위’로 존재한다.
시인은 과거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오늘의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그 자리에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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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강 위에 놓인 다리와 인간 구원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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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길을 여시고 / 눈물의 강 위에 다리를 놓으신다.”
이 구절은 구원의 구조를 감각적으로 재현한다.
시인은 바다를 단순한 장애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슬픔이 응집된 ‘눈물의 강’이다.
신은 그 위에 다리를 놓으신다.
즉, 신앙의 구원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을 건너는 다리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신앙의 성숙이며, 사랑의 기적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없애지 않으신다.
그 눈물 위에 ‘길’을 놓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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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는 옛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와 존재의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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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마지막 연은 선언적이다. “홍해는 옛이야기가 아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열리고 있는 은혜의 문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이는 시간의 신학이다.
시인은 역사와 현재를 병치시키며,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한다.
신앙은 과거의 증거가 아니다. 현재의 체험이다. 구약의 홍해 사건이 신약의 십자가로 이어지고, 그 십자가의 은혜가 지금 나의 하루 속에서 다시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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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하심의 윤리 — 사랑의 실천학으로서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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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자하심이, / 영원히 내 삶을 인도하리니.”
이 마지막 구절은 단순한 감사의 언어를 넘어, 신앙의 윤리적 완성을 드러낸다. 인자함은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속성이다. ‘언약적 사랑’과 ‘자비의 지속성’을 의미한다.
박성진 시인은 이를 일상적 언어로 번역해, 인간이 하나님처럼 ‘인자함으로 행할 것’을 요청한다. 감사의 신앙은 고백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 흘러가야 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개인의 기도이자 사회적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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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형상 산문시의 미학과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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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산문시지만 명백한 리듬과 구조적 절제를 갖춘다.
각 연은 서사와 명상, 이미지와 묵상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바다-바람–발자국–사랑–눈물–은혜’라는 일련의 이미지들은 성경적 연쇄성을 따라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언어는 단정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시적 감탄 대신 ‘침묵의 은유’를 사용한다.
이는 종교적 고백의 언어를 문학적 품격으로 승화시킨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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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바다를 가르신 이는 지금도 일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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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는 한 편의 기적 서사이자, 동시에 신앙의 내 면학이다. 시인은 기적의 순간을 바라보는 방관자가 아니라, 지금 그 바다 앞에 선 ‘동행자’이다.
시인은 외친다.
“홍해는 옛이야기가 아니다.”
이 말속에 모든 시대의 구원이 응축되어 있다. 우리의 삶의 여정은 여전히 절망 속에 길이 안 보이고 바다물결이 거세어져도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으로
영원히 우리의 삶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총평>
박성진 평론가의 산문시는 신학적 명상과 시적 미학의 완벽한 접점 위에 서 있다.
홍해는 역사이자 현재이다. 신앙은 과거의 찬송이 아니라 오늘의 숨결이다.
인간의 절망이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조용히 일하신다.
그러므로 감사란, 기적이 끝난 뒤의 노래가 아니다. 기적이 시작되기 전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