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이인애 시인-발끝의 자비》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발끝의 자비〉


다정 이인애


작은 미생물도

내 발에 밟히지 말아라

그대 또한 생명이라,

부처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돌부리 하나에도

옛 성현의 손자국이 남아 있고

바람 한 줄기에도

눈물의 법문이 실려 있다


나는 오늘도 천천히 걷는다

발끝마다 경전을 새기며

한 걸음이 곧 기도요,

멈춤이 곧 사랑이다

내 발에 밟히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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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발끝의 자비, 한 걸음에 깃든 우주의 숨결》


<서론>

한 걸음의 윤리, 발끝의 철학


다정 이인애 시인의 〈발끝의 자비〉는 짧은 행간 속에서 우주적 사유를 펼치는 작품이다. 시는 “작은 미생물도 내 발에 밟히지 말아라”로 시작하지만, 그 한 구절 안에는 인간과 자연, 생명과 죽음, 존재와 무(無)가 맞닿는다.

‘밟히지 말라’는 명령은 단순한 물리적 행위의 경계가 아니라, 존재의 존엄성에 대한 영혼의 약속이다.

시인은 스님처럼 낮은 곳으로 시선을 내리고, 발끝에서부터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이것은 곧 ‘존재를 향한 경배의 시학’이다.

그리하여 시는 자비를 설파하는 설교가 아니라, 걷는 자의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생활 속 불교’로 확장되었다.



< “작은 미생물도”에서 시작되는 생명 존중의 근원 >


“작은 미생물도 내 발에 밟히지 말아라”는 시구는 불살생의 교리보다 더 근본적인 깨달음의 언어다.

보이지 않는 생명조차 부처의 숨결로 본다는 것은 인간 중심의 오만한 인식 구조를 해체하고, 모든 존재의 평등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마치 *법구경*의 모든 생명은 고통을 두려워하니, 남에게 고통 주지 말라”는 구절을 현대어로 옮긴 듯하다.

이 시의 ‘발’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신체이지만, 동시에 자비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윤회의 경계선이다.

시인은 자신의 발끝에서부터 생명을 감각하며, 매 순간을 깨달음의 순간으로 전환한다.



< ‘돌부리’와 ‘바람’의 시학, 사물에 깃든 성현의 흔적 >


“돌부리 하나에도 옛 성현의 손자국이 남아 있고”라는 구절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다.

돌부리는 시공을 초월한 기억의 매개체이며, 인간의 발자취가 응고된 상징물이다.

이 구절 속에는 “모든 것은 연기(緣起)로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적 시간관이 숨어 있다.

이인애 시인의 시는 사물을 단순히 관찰하지 않는다. 돌 하나, 바람 한 줄기까지도 인간과 동일한 ‘삶의 파동’을 가진 존재로 본다.

또한 “바람 한 줄기에도 눈물의 법문이 실려 있다”는 문장은 섬세한 감각의 절정이다.

여기서 ‘눈물’은 인간의 고통, ‘법문’은 그 고통 속에서 피어난 깨달음이다.

즉, 시인은 세상의 슬픔을 법으로 읽는다. 눈물조차 부처의 설법이 되는 세계 그것이 바로 ‘발끝의 자비’가 도달한 차원이다.



<천천히 걷는 수행의 의미>


“나는 오늘도 천천히 걷는다”는 문장은 서정시의 리듬을 넘어, 수행자의 일기처럼 들린다.

이 구절의 힘은 속도에 대한 반항에서 온다.

현대 문명은 달리고, 경쟁하고, 쫓긴다. 그러나 시인은 멈추고, 숨 쉬고, 천천히 걷는다.

그 걷기는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시간의 고요를 회복하는 명상이다.

‘천천히’는 시 속에서 명상적 호흡을 만들어내며, 시 전체의 리듬을 안정시킨다.

걷는다는 것은 세상을 밟는 행위지만, 이 시에서는 밟지 않기 위한 걷기다.

‘발끝의 자비’란, 발로 세계를 정복하지 않고, 발끝으로 세계를 어루만지는 자세다.

이 구절은 니체의 ‘춤추는 인간’이 아니다. 자비로 춤추는 인간의 초상이다.


< “발끝마다 경전을 새기며”의 은유 >


“발끝마다 경전을 새긴다”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 ‘삶의 성문화(聖文化)’를 선언한다.

즉, 걷는 행위 그 자체가 경전이 되는 세계이다.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면, 시인은 그 깨달음을 일상의 발걸음 속에서 되풀이한다.

발끝에 새겨지는 경전은 ‘진리의 글자’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이다.

그것은 종교적 문자의 신성함을 넘어, 인간의 행위가 곧 경전이 될 수 있다는 ‘생활의 성화’이다.

이 구절은 또한, 시가 종교를 대체할 수 있는 이유를 보여준다.

진리는 책 속에 있지 않고, 걸음 속에 있다.

매일의 발자국이 곧 경전이 되었다 일상의 숨결도 곧 기도가 된다.

이것이 이 시의 미학적 위대함이다. 진리를 행동으로 새긴다.



“한 걸음이 곧 기도요, 멈춤이 곧 사랑이다”


이 한 줄은 시의 핵심이자 결론이다.

‘한 걸음’과 ‘멈춤’은 서로 반대의 동사지만, 시인은 이를 기도와 사랑이라는 두 명사로 승화시킨다.

걷는 것은 세상을 향한 움직임이다. 멈춤은 자신을 향한 성찰이다.

기도는 외향의 사랑이며, 사랑은 내향의 기도다.

이 구절에서 시인은 동사와 명사의 경계를 허문다.

행위는 사유가 되고, 사유는 곧 사랑이 된다.

이 대목은 동양적 명상과 서양적 휴머니즘이 조우하는 지점이다.

‘걷기’가 곧 ‘사랑의 행위’라는 깨달음은, 곧 인류 보편의 종교적 통찰이다.

세상을 밟지 않으려는 자비는 결국 세상을 품으려는 사랑으로 변한다.




반복구 “내 발에 밟히지 말아라”


이 시는 시작과 끝이 같은 문장으로 닫힌다.

이 반복은 선문(禪文)의 구조처럼 순환적이며, 깨달음의 윤회를 상징한다.

‘처음의 자비’가 ‘끝의 자비’로 이어지며, 시는 원형의 호흡을 완성한다.

이 구절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부처의 음성으로 들린다.

“내 발에 밟히지 말라”는 말은 곧 “내 마음에 상처 주지 말라”는 내면의 울림이다.

시인은 이 반복을 통해 자비의 완성을 보여준다 시의 구조가 곧 깨달음의 형식이 된다.



<언어의 미학 절제된 표현 속의 법음(法音)>


〈발끝의 자비〉는 불필요한 수식이나 장식이 없다.

이인애 시인의 언어는 불교의 ‘공(空)’ 사상처럼 비워진 언어다.

그러나 그 비움 속에는 여운이 있다.

그 여운은 마치 절집의 종소리처럼 오래 울린다.

그의 시어는 맑고 투명하며, 한 줄 한 줄이 명상처럼 느리게 읽힌다.

이 절제된 언어는 바로 ‘선문답의 미학’이며, 말보다 더 깊은 침묵의 울림을 남긴다.


철학적 맥락 인간 중심주의의 해체와 생명 평등의 복원


시인은 인간이 ‘지배자’가 아니라 ‘공존자’ 임을 말한다.

‘밟히지 말라’는 말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반성적 경고이자, 문명 비판의 은유다.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인간의 신발 밑에 깔려 죽어가는 수많은 미생물과 풀잎, 곤충들을 향하여

시인은 그들을 대신해 말한다.

“그대 또한 생명이라, 부처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이 구절은 생명의 철학적 선언문이다.

불교적 자비가 현대 생태윤리와 만나는 지점이며,

‘존재의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사상적 깊이를 갖는다.



종교를 초월한 보편 윤리, 사랑의 공명


이 시의 자비는 불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독교의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는 구절과도 닮아 있다.

유교의 ‘인(仁)’이

이 한 시구 안에서 만난다.

그리하여 이 시는 종교를 넘어선 보편윤리의 시가 된다.

자비는 종교적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태도라는 것을 일깨운다.




걷는다는 것, 기도한다는 것


〈발끝의 자비〉는 “걷기”를 통해 “깨달음”에 도달하는 시다.

그 걷기는 수행이며, 예배이며, 동시에 예술이다.

시인은 ‘발끝의 자비’를 통해 인간의 행위와 영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우리는 날마다 걸으며 수많은 생명 위를 지나간다.

그러나 시인은 그 모든 걸음마다 기도문을 새긴다.

“내 발에 밟히지 말아라.”

그 기도는 결국 자신에게 향한다 남을 밟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을 밟지 않는 일이다.

이인애 시인의 이 시는 불교의 언어로 쓰였지만, 그 근원은 인간 보편의 사랑에 있다.

그의 자비는 부처의 미소이자, 인간의 눈물이다.

문화평론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 시는 ‘걷는 자의 시학(詩學)’이다.

동시에 ‘멈춤의 철학’이다.

삶의 모든 발자국 위에, 경전이 새겨지는 순간

그것이 바로 이 시가 말하는 존재의 존엄, 자비의 완성, 그리고 시의 궁극적 기도이다.



총평

〈발끝의 자비〉는 인간의 발아래 숨 쉬는 세계를 일깨운 시다.

보이지 않는 생명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하여,

결국은 인간 자신을 향한 반성과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에서부터 나온다.

시인의 거미, 개미, 지네의 관찰, 발끝의 관찰에서 나오는 시인은 내 발에 밟히지 말라는 선언문의 반복어를 본다.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관찰은 무형의 자산이다.

시와 삶의 출발 노선을 정하는 접점에서

우리는 지혜가 떠오르는 영적 순환체임을 인식하면서도 놓치는 경향이 있는데

시인은 절묘한 순간을 포착하는 시의

사냥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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