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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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 — 상상 이상의 맛〉
동파육이 익어간다.
신비한 요리가 침샘을 자극한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마음으로 향을 더했다.
권세는 식고,
남은 건 오래된 불빛 하나.
살코기엔 회한이 스며 있고,
기름엔 철학이 스며 있다.
한 점을 입에 넣으니
인생의 맛이 번져왔다.
고난도 오래 끓이면 달듯이,
아 그 시절 동파육을 어디에서 맛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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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위의 철학, 인간의 온도로 익어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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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의 부엌, 불 하나로 세상을 견디다>
■소동파의 부엌은 궁궐의 부엌이 아니었다.
벽은 허물어져 있었고, 창문은 바람에 삐걱거렸다.
그는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황주라는 이름 없는 변방으로 내던져졌다.
그러나 그 추위와 침묵 속에서도 불 하나를 피웠다.
그 불은 단지 돼지고기를 익히는 불이 아니다.
세상을 향한 마지막 저항의 불이었다.
그는 불 앞에서 말을 잃고, 대신 사색을 배웠다.
식어버린 세상 속에서 오직 뜨거운 건 그 불빛뿐이었다.
그 불 위에 냄비를 올리고, 세월을 끓였다.
그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 속엔 눈물의 소금기가 섞였고,
외로움의 향이 천천히 배어 나왔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따뜻함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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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어간다는 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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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이 익어간다.”
짧은 한 줄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시간의 그림자가 들어 있다.
익는다는 건 단지 음식의 상태가 아니다.
그건 인간이 변해가는 과정, 성숙의 은유다.
살다 보면 누구나 불 앞에 선다.
그 불은 때로 시련이고, 때로 인내의 시험이다.
너무 빨리 타오르면 금세 사라지고,
너무 약하면 아무것도 익지 않는다.
삶도 그렇다.
적당한 불로 오래, 천천히 끓일 때 비로소 맛이 든다.
소동파가 유배지에서 배운 것도 바로 그 ‘적당함’이었다.
세상은 그를 내쳤지만, 불은 그를 품었다.
그는 그 불의 온도를 재며 자신의 내면을 달래고,
그 안에서 시를, 철학을, 인간의 향을 익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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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요리, 그 향에 깃든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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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위의 냄비는 작은 우주다.
삶의 모든 향이 거기에서 피어오른다.
소금과 술, 간장과 단맛,
그 모든 재료들이 불의 리듬에 따라 하나로 어우러졌다.
그는 냄비를 바라보며 세상을 보았다.
세상의 욕망도, 인간의 욕정도
불 위에서 익으면 결국 향기로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요리는 신비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먹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요리였기 때문이다.
그 향은 단지 고기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건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내는 내면의 냄새였다.
삶이 고단할수록 향은 짙어진다.
그는 그 향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다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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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마음으로 향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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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불 앞에 앉아 손끝으로 간을 볼 때,
그는 단순히 음식의 짠맛을 조절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삶의 농도를 맞추고 있었다.
세상은 늘 짜거나 싱겁다.
너무 짜면 사람의 말이 독이 되고,
너무 싱거우면 진심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소금으로 현실을 붙잡고,
마음의 향으로 그 현실을 덮었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고난은 썩지 않고 익을 수 있었다.
그의 부엌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인생을 배우는 조용한 도서관이었다.
그는 냄비 속에서 인간의 균형을 배웠다.
짠맛 속에 단맛을 남기고,
뜨거움 속에 부드러움을 품는 법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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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는 식고, 불빛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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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그에게서 모든 걸 빼앗았을 때,
그는 불만 남겼다.
권력은 금방 식는다.
사람의 명성도 식고, 영광도 식는다.
하지만 불빛은 남는다.
그 불빛은 작고 흔들리지만,
그 안에 인간의 온기가 있다.
그 불빛이야말로 그가 마지막까지 지켜낸 세계였다.
그는 세상을 향한 분노를 버리고,
불빛 하나를 붙잡고 산 사람이다.
그 불빛은 타인에게 전해져 오늘까지 이어진다.
소동파의 시와 요리는 그 불빛의 다른 형태였다.
이 한 줄은 “권세는 식고, 남은 건 오래된 불빛 하나.”
그것이 그의 인생을 가장 잘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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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코기엔 회한이, 기름엔 철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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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 앞에서 자신을 해부했다.
살코기는 현실이었다.
그 속에는 상처와 후회, 실패와 부끄러움이 스며 있었다.
기름은 사유였다.
그것은 고통을 덮고, 삶의 진심을 감싸는 따뜻한 층이었다.
그는 삶의 모든 맛을 다 느끼며 말했다.
“회한 없는 인생은 철학이 자라지 않는다.”
고통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향기로 남는다.
그의 철학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건 불 앞에서 흘러나온 땀방울 속에 있었다.
기름이 끓을 때마다 철학이 함께 끓었다.
그 철학은 냉철한 논리가 아니라,
살아낸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따뜻한 이해의 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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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의 고기, 한 입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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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점의 고기를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모든 소리가 멈췄다.
뜨거운 고기가 입안을 적시고,
그 향이 천천히 코끝으로 번졌다.
그건 단순히 맛이 아니었다.
그건 세월의 농도였다.
달지도, 짜지도 않은 그 맛 속에
기다림과 체념, 사랑과 용서가 함께 섞여 있었다.
그는 그 한 점에서 삶의 모든 맛을 느꼈다.
그 맛은 ‘살아있음’의 증거였다.
먹는다는 건 견딘다는 것이고,
견딘다는 건 여전히 세상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는 그 깨달음을 삼키었다.
그의 철학은 입안의 온도처럼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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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도 오래 끓이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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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처음엔 누구에게나 쓰다.
그러나 오래 끓이면 그 쓴맛이 부드러워진다.
시간이란 불은 잔혹하지만,
그 불이 없으면 인간은 깊어지지 않는다.
그는 불의 세기를 알고 있었다.
조금씩 온도를 낮추고,
천천히 삶을 끓였다.
그 과정이 바로 인간의 숙성이다.
끓는 동안 많은 것이 증발하고,
결국 남는 것은 향과 온기뿐이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배 속에서도 불을 끄지 않았다.
그 불이 그의 인생을 익혔다.
그의 불은 세상을 태우지 않고,
세상을 이해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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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시절 동파육을 어디에서 맛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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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줄은 그리움이 아니라, 시대에 대한 애도다.
그 시절엔 사람이 불을 천천히 피웠고,
음식에는 정성이, 시간에는 여유가 있었다.
오늘의 세상은 너무 빠르다.
불은 세지만 맛은 없다.
기술은 발달했지만, 마음은 식어버렸다.
그 시절의 동파육은 단지 한 접시의 음식이 아니다.
한 사람의 정신이 담긴 온기였다.
그 느린 불과 깊은 향,
그건 단순한 조리의 과정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을 돌아보던 시간이었다.
시인은 묻는다.
지금 우리의 불은 무엇을 익히고 있는가.
그 불 위에 정말 인간의 마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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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인간은 불 위에서 다시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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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 — 상상 이상의 맛〉은 한 편의 요리 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을 조리하는 이야기다.
불은 고난이고, 냄비는 마음이며,
그 안에서 익는 것은 삶이다.
소동파가 남긴 것은 조리법이 아니라 태도다.
끓는 동안 화내지 않고,
식는 동안 원망하지 않는 태도.
그는 불 위에서 인간의 품위를 배웠다.
오늘 우리는 다시 그 불을 떠올려야 한다.
그 불이야말로 우리 안의 가장 인간적인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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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너무 세면 인생이 타고,
너무 약하면 아무 향도 나지 않는다.
삶은 그 사이에서 천천히 익는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