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동파육-상상 이상의 맛》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동파육 — 상상 이상의 맛〉


동파육이 익어간다.

신비한 요리가 침샘을 자극한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마음으로 향을 더했다.


권세는 식고,

남은 건 오래된 불빛 하나.

살코기엔 회한이 스며 있고,

기름엔 철학이 스며 있다.


한 점을 입에 넣으니

인생의 맛이 번져왔다.

고난도 오래 끓이면 달듯이,

아 그 시절 동파육을 어디에서 맛보려나.


**********


불 위의 철학, 인간의 온도로 익어가는 삶



<유배의 부엌, 불 하나로 세상을 견디다>


■소동파의 부엌은 궁궐의 부엌이 아니었다.

벽은 허물어져 있었고, 창문은 바람에 삐걱거렸다.

그는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황주라는 이름 없는 변방으로 내던져졌다.

그러나 그 추위와 침묵 속에서도 불 하나를 피웠다.

그 불은 단지 돼지고기를 익히는 불이 아니다.

세상을 향한 마지막 저항의 불이었다.

그는 불 앞에서 말을 잃고, 대신 사색을 배웠다.

식어버린 세상 속에서 오직 뜨거운 건 그 불빛뿐이었다.

그 불 위에 냄비를 올리고, 세월을 끓였다.

그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 속엔 눈물의 소금기가 섞였고,

외로움의 향이 천천히 배어 나왔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따뜻함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익어간다는 말의 의미>


“동파육이 익어간다.”

짧은 한 줄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시간의 그림자가 들어 있다.

익는다는 건 단지 음식의 상태가 아니다.

그건 인간이 변해가는 과정, 성숙의 은유다.

살다 보면 누구나 불 앞에 선다.

그 불은 때로 시련이고, 때로 인내의 시험이다.

너무 빨리 타오르면 금세 사라지고,

너무 약하면 아무것도 익지 않는다.

삶도 그렇다.

적당한 불로 오래, 천천히 끓일 때 비로소 맛이 든다.

소동파가 유배지에서 배운 것도 바로 그 ‘적당함’이었다.

세상은 그를 내쳤지만, 불은 그를 품었다.

그는 그 불의 온도를 재며 자신의 내면을 달래고,

그 안에서 시를, 철학을, 인간의 향을 익혀내었다.



<신비한 요리, 그 향에 깃든 철학>


불 위의 냄비는 작은 우주다.

삶의 모든 향이 거기에서 피어오른다.

소금과 술, 간장과 단맛,

그 모든 재료들이 불의 리듬에 따라 하나로 어우러졌다.

그는 냄비를 바라보며 세상을 보았다.

세상의 욕망도, 인간의 욕정도

불 위에서 익으면 결국 향기로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요리는 신비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먹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요리였기 때문이다.

그 향은 단지 고기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건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내는 내면의 냄새였다.

삶이 고단할수록 향은 짙어진다.

그는 그 향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다시 세웠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마음으로 향을 더했다>


그가 불 앞에 앉아 손끝으로 간을 볼 때,

그는 단순히 음식의 짠맛을 조절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삶의 농도를 맞추고 있었다.

세상은 늘 짜거나 싱겁다.

너무 짜면 사람의 말이 독이 되고,

너무 싱거우면 진심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소금으로 현실을 붙잡고,

마음의 향으로 그 현실을 덮었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고난은 썩지 않고 익을 수 있었다.

그의 부엌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인생을 배우는 조용한 도서관이었다.

그는 냄비 속에서 인간의 균형을 배웠다.

짠맛 속에 단맛을 남기고,

뜨거움 속에 부드러움을 품는 법을 알았다.



<권세는 식고, 불빛은 남는다>


세상이 그에게서 모든 걸 빼앗았을 때,

그는 불만 남겼다.

권력은 금방 식는다.

사람의 명성도 식고, 영광도 식는다.

하지만 불빛은 남는다.

그 불빛은 작고 흔들리지만,

그 안에 인간의 온기가 있다.

그 불빛이야말로 그가 마지막까지 지켜낸 세계였다.

그는 세상을 향한 분노를 버리고,

불빛 하나를 붙잡고 산 사람이다.

그 불빛은 타인에게 전해져 오늘까지 이어진다.

소동파의 시와 요리는 그 불빛의 다른 형태였다.

이 한 줄은 “권세는 식고, 남은 건 오래된 불빛 하나.”

그것이 그의 인생을 가장 잘 설명한다.



<살코기엔 회한이, 기름엔 철학이>


그는 불 앞에서 자신을 해부했다.

살코기는 현실이었다.

그 속에는 상처와 후회, 실패와 부끄러움이 스며 있었다.

기름은 사유였다.

그것은 고통을 덮고, 삶의 진심을 감싸는 따뜻한 층이었다.

그는 삶의 모든 맛을 다 느끼며 말했다.

“회한 없는 인생은 철학이 자라지 않는다.”

고통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향기로 남는다.

그의 철학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건 불 앞에서 흘러나온 땀방울 속에 있었다.

기름이 끓을 때마다 철학이 함께 끓었다.

그 철학은 냉철한 논리가 아니라,

살아낸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따뜻한 이해의 철학이었다.


<한 점의 고기, 한 입의 깨달음>


그는 한 점의 고기를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모든 소리가 멈췄다.

뜨거운 고기가 입안을 적시고,

그 향이 천천히 코끝으로 번졌다.

그건 단순히 맛이 아니었다.

그건 세월의 농도였다.

달지도, 짜지도 않은 그 맛 속에

기다림과 체념, 사랑과 용서가 함께 섞여 있었다.

그는 그 한 점에서 삶의 모든 맛을 느꼈다.

그 맛은 ‘살아있음’의 증거였다.

먹는다는 건 견딘다는 것이고,

견딘다는 건 여전히 세상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는 그 깨달음을 삼키었다.

그의 철학은 입안의 온도처럼 조용했다.


<고난도 오래 끓이면 달다>


고난은 처음엔 누구에게나 쓰다.

그러나 오래 끓이면 그 쓴맛이 부드러워진다.

시간이란 불은 잔혹하지만,

그 불이 없으면 인간은 깊어지지 않는다.

그는 불의 세기를 알고 있었다.

조금씩 온도를 낮추고,

천천히 삶을 끓였다.

그 과정이 바로 인간의 숙성이다.

끓는 동안 많은 것이 증발하고,

결국 남는 것은 향과 온기뿐이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배 속에서도 불을 끄지 않았다.

그 불이 그의 인생을 익혔다.

그의 불은 세상을 태우지 않고,

세상을 이해하게 하였다.


<“아, 그 시절 동파육을 어디에서 맛보려나.”>



마지막 한 줄은 그리움이 아니라, 시대에 대한 애도다.

그 시절엔 사람이 불을 천천히 피웠고,

음식에는 정성이, 시간에는 여유가 있었다.

오늘의 세상은 너무 빠르다.

불은 세지만 맛은 없다.

기술은 발달했지만, 마음은 식어버렸다.

그 시절의 동파육은 단지 한 접시의 음식이 아니다.

한 사람의 정신이 담긴 온기였다.

그 느린 불과 깊은 향,

그건 단순한 조리의 과정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을 돌아보던 시간이었다.

시인은 묻는다.

지금 우리의 불은 무엇을 익히고 있는가.

그 불 위에 정말 인간의 마음이 있는가.


결론 ― 인간은 불 위에서 다시 익는다


〈동파육 — 상상 이상의 맛〉은 한 편의 요리 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을 조리하는 이야기다.

불은 고난이고, 냄비는 마음이며,

그 안에서 익는 것은 삶이다.

소동파가 남긴 것은 조리법이 아니라 태도다.

끓는 동안 화내지 않고,

식는 동안 원망하지 않는 태도.

그는 불 위에서 인간의 품위를 배웠다.

오늘 우리는 다시 그 불을 떠올려야 한다.

그 불이야말로 우리 안의 가장 인간적인 등불이다.


불이 너무 세면 인생이 타고,

너무 약하면 아무 향도 나지 않는다.

삶은 그 사이에서 천천히 익는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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