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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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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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情 이인애
보이스피싱 연애빙자사기
태자단지 망고단지 사기단지
국경을 뛰어넘는 상상초월 함정
억 억 억 소리 쇳소리 단지는
애당초 꿀단지가 아닙니다
단물 다 빨리고 용도폐기 당한 채
끽소리도 못 내는 망자의 넋
원한 원망 원성이 담긴
나락으로 가는 황천행 티켓
이 단지는 바로 유골단지입니다
피에 굶주린 맹수들이 득시글 대며
기업형 연결 고리로 유착된
마약 카르텔, 연기 없는 산업화 공장
24시간 강제 수탈한 피와 눈물을
동력으로 풀가동 하는 악의 소굴
암호화폐 해독에 기울인 불면의 밤
폭풍 전야의 고요함인가 묵묵부답
고장 난 스피커 CNN BBC 트위터
천만 번 외쳐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덫, 메타버스의 함정
문턱을 조심하라
낮을수록 걸려 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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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의 덫〉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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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환상의 유골단지, 그리고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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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차가운 화면 속에서 들려오는 인간의 울음이다.
화려한 단어들, 기술의 언어들 사이에서 시인은 아주 오래된 질문을 꺼낸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이 물음 하나로 시작된 시는, 인간이 만든 환상의 세계가 결국 인간 자신을 삼키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 목소리는 고발이 아니다. 체념도 아니다.
그저 슬프고, 슬프기에 진실하다.
첫 연의 “보이스피싱 연애빙자사기 / 태자단지 망고단지 사기단지”는 언어의 비명처럼 들린다.
단어마다 세상의 거짓이 묻어 있고, 리듬마다 욕망의 박동이 튄다.
달콤한 이름으로 포장된 모든 함정들이 드러났다.
그 속에서 사람의 온기와 순수한 믿음은 하나씩 벗겨져 나간다.
시인은 말한다. “애당초 꿀단지가 아닙니다.”
이 한 줄이 시 전체를 꿰뚫는 진실이다.
우리가 믿어왔던 달콤함은 이미 누군가의 피로 만들어진 유혹이었다.
그 껍질을 벗겨낸 자리에는 죽음의 잿빛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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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연의 ‘망자의 넋’은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단물 다 빨리고 용도폐기 된 채 / 끽소리도 못 내는 망자의 넋.”
시인은 죽은 이를 말하지 않는다.
살아 있으나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들,
자신의 감정과 시간을 스스로 내주며 가상의 사막을 떠도는 현대인이다.
그들은 더 이상 항의하지 않는다.
끽소리조차 낼 수 없는 침묵의 존재가 된다.
이 단지는 바로 유골단지라는 말은,
현대 문명의 알리바이처럼 들린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소비하고, 타인의 희생을 모른 체하며,
그 위에 가상의 천국을 세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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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연에 이르면 시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삶의 내부로 파고드는 철의 소음이 들린다.
‘피에 굶주린 맹수들’, ‘연기 없는 산업화 공장등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현실의 초상이다.
메타버스, 암호화폐, 기업의 시스템,
그 안에서 인간은 노동의 부품이 되어버렸다.
감정조차 상품이 되고, 관계조차 계약이 되었다.
‘연기 없는 산업화 공장’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고통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의미한다.
불타지도, 연기 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시인은 그 침묵의 잿빛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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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연의 “암호화폐 해독에 기울인 불면의 밤”은
한 시대의 자화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니터 불빛 아래에서 깨어 있다.
그들의 손끝은 기도하듯 떨리고, 눈은 숫자에 매달려 있다.
그들의 잠은 깨어 있음이 아니다.
그것은 불안과 탐욕의 불면이다.
시인은 묻는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인가.”
그 질문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이 시대의 밤이 얼마나 고요한 절망으로 가득한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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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에서 시는 더욱 고요해진다.
“고장 난 스피커 CNN BBC 트위터 / 천만 번 외쳐도 들리지 않는 / 침묵의 덫.”
이 부분은 현대인의 언어가 무너진 자리다.
소통은 넘치지만, 이해는 없다.
연결은 빠르지만, 마음은 멀다.
말은 홍수처럼 쏟아지지만, 진심은 한 방울도 남지 않는다.
시인은 그 침묵의 풍경을 담담히 바라본다.
‘묵묵부답’이라는 말보다 더 정확한 현실 묘사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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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문턱을 조심하라. 낮을수록 걸려 넘어진다.”
이 한 줄은 마치 인간의 유언 같다.
시인은 세상을 향해 훈계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경고한다.
가장 낮은 문턱, 가장 작은 유혹,
그곳에서 인간은 가장 자주 넘어지기 때문이다.
거대한 악은 멀리 있지만,
진짜 함정은 늘 일상의 문턱 앞에 있다.
하찮은 욕심 하나, 작은 거짓말 하나가
한 사람의 양심을, 한 사회의 도덕을 넘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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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더 깊은 곳, 인간의 내면을 비춘다.
〈메타버스의 덫〉은 결국 인간학의 시다.
시인은 냉소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다.
대신 슬퍼한다.
그리고 그 슬픔 속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느 문턱에 서 있는가.”
유골단지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그릇이다.
우리가 잊고 지나친 이름들,
사라진 얼굴들, 꺼져버린 양심의 재가 그 안에 있다.
시인은 그것을 꺼내 보이며 말한다.
이것은 죽음이 아니다.
망각의 이야기다.
기술의 불빛이 아무리 밝아도,
인간이 서로의 얼굴을 잊는 순간,
그 단지는 곧 우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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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의 덫〉은 그래서 경고문이 아니라 거울이다.
우리의 시대를 비추는 잿빛 거울.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얼굴을 본다.
누구는 탐욕의 그림자를, 누구는 슬픔의 흔적을,
그리고 누구는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눈빛을 본다.
시가 끝난 자리에서,
침묵이 시작된다.
그 침묵은 비난이 아니라 참회의 시간이다.
이 시를 읽는 우리는 결국 모두 같은 문턱 앞에 서 있다.
낮은 문턱, 그러나 가장 위험한 문턱.
그 앞에서 이 시는 말없이 우리를 바라본다.
“넘어지지 마라.”
그 짧은 한마디가, 이 시대 가장 깊은 시의 울림이자 경고의 선언문의 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