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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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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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말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와라/
그래야 말도/
꽃같이 하리라/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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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향기가 되어야 한다” 황금찬 시인의 마지막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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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한 편에 담긴 백 년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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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 입이 꽃처럼 고아라 / 그래야 말도 / 꽃같이 하리라 /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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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섯 줄짜리 시를 처음 읽으면, 참 짧구나 싶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감고 곱씹어 보면,
이 짧은 시 안에 한 시인의 일생이, 한 인간의 양심이 다 들어 있다.
황금찬 시인은 1918년에 태어나 거의 한 세기를 살았다.
전쟁을 겪고, 세상의 변화를 다 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마지막까지 남긴 말이 바로 ‘말’이었다는 게, 묘하게 울림이 있다.
세상이 변해도 사람의 말만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이 시의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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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늘 사람을 불렀다 “사람아”라는 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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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첫 줄과 마지막 줄이 똑같이 “사람아”로 되어 있다.
이건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그는 인간 전체를 부르고 있다.
‘너 하나’를 넘어서, ‘인류 전체’에게 던지는 목소리다.
“사람아”라는 말은 꾸짖는 말이 아니다.
속이 상해서, 사랑하니까 부르는 말이다.
어린 자식을 다그치는 어머니의 말투,
세상에 실망하면서도 여전히 믿고 싶은 마음.
그게 이 부름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짧지만, 기도처럼 읽힌다.
“사람아, 부디 사람답게 살아라.”
그 한마디 속에 백 년의 기도와 눈물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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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꽃처럼 고아라” 말의 근원을 묻는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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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고와라’는 말은, 결국 ‘마음이 고와라’는 말이다.
입은 단지 마음의 통로일 뿐이니까.
사람의 입이 거칠다는 건, 마음이 이미 상처 입었다는 뜻이다.
‘꽃처럼’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면서, 이 시는 갑자기 부드러워진다.
꽃은 누구를 미워하지 않는다.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면서도 원망이 없다.
그 자연스러운 순환이 곧 ‘고움’이다.
황금찬 시인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다.
“너의 입도, 너의 말도, 그런 꽃처럼 자연스럽고 따뜻하길 바란다.”
이 말은 단지 예쁜 말의 권유가 아니다.
인간의 언어가 다시 생명의 언어로 회복되길 바라는 시인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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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야 말도 꽃같이 하리라’ 마음과 말의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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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중심은 바로 여기다.
입이 고와야 말이 고와진다.
결국 마음이 고와야, 그 마음이 흘러나오는 말도 고와진다.
이건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다.
‘그래야’라는 말에는, 삶의 태도와 시간의 순서가 담겨 있다.
먼저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내 말부터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세상은 말이 너무 많다.
정치인도, 방송도, 인터넷도.
하지만 말의 양이 많다고 해서
진실의 양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황금찬 시인은 이 혼란스러운 세대 속에서,
오히려 단 한 줄로 이렇게 말한다.
“입이 꽃처럼 고와야 한다.”
그 한 문장이 모든 시끄러운 말을 잠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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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상징 향기로 피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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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 시에서 ‘꽃’은 자주 등장한다.
그에게 꽃은 단순히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순수와 생명,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정신을 상징한다.
꽃은 피어 있을 때도, 질 때도 아름답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향기로 세상을 감싼다.
이 시의 ‘꽃의 말’은 바로 그 ‘향기 나는 침묵’이다.
시인은 말보다 향기가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입이 꽃처럼 고와라”는 말을 통해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향기를 남기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그게 시인의 미학이자, 인생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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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윤리 ‘말’이 곧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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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 시인은 평생 언어의 무게를 고민했다.
그에게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말은 인격이었다.
입이 거친 사람은 결국 삶도 거칠다.
말이 따뜻한 사람은 결국 마음도 따뜻하다.
그래서 그는 ‘말의 품격’을 사람의 품격과 똑같이 보았다.
요즘은 말이 싸졌다.
익명 댓글, 험한 비난, 조롱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럴수록 이 시는 점점 더 빛난다.
“입이 꽃처럼 고와라.”
이건 고전이 아니라, 지금 시대의 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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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의 두 번째 울림, 인간에 대한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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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마지막 행 ‘사람아…’는 처음보다 훨씬 슬프다.
왜냐면 첫 번째는 ‘부름’이지만,
마지막은 ‘탄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희망’이 있다.
시인은 인간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다시 ‘꽃처럼’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시는 우리를 꾸짖지 않는다.
그저 손을 잡고 말한다.
“그래도, 사람아… 넌 다시 고와질 수 있다.”
그 믿음이 이 시를 슬프게도, 동시에 따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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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울림 말은 곧 예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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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 시인은 기독교적 신앙을 가진 시인이었다.
그의 시에는 늘 ‘빛’, ‘자비’, ‘사랑’ 같은 단어가 따라다녔다.
〈꽃의 말〉도 신학적으로 보면 ‘언어의 성화(聖化)’를 말한다.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었다.
황금찬은 이 진리를 시로 옮긴 것이다.
‘입이 꽃처럼 고와라’는 건,
하나님이 주신 언어를 더럽히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말이 예배가 되고, 입이 성전이 되는 순간
그것이 이 시의 영적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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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철학 단순함 속의 위대함>
꽃의 말 황금찬 시인의 시는 짧았다.
하지만 그 짧음은 단순함이 아니라,
모든 군더더기를 걷어낸 후의 ‘맑은 사유’였다.
〈꽃의 말〉은 시이자 설교이며, 동시에 윤리학이다.
요즘 젊은 시인들이 장황한 이미지와 기교로 세상을 묘사할 때,
황금찬은 단 한 줄로 모든 것을 요약했다.
“입이 꽃처럼 고와라.”
그 단순한 문장은,
수십 년의 시 경험이 깎이고 닳아서 남은 마지막 빛이었다.
그의 시는 언제나 ‘짧지만 오래 남는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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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자에게 ‘말의 책임’을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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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경고다.
우린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상처 준다.
그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망치기도 한다.
황금찬 시인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부탁한다.
“사람아, 네 입을 고와라.”
그건 단순히 예의 바르게 말하라는 뜻이 아니다.
“네 말이 세상을 치유하게 하라”는 뜻이다.
말은 향기가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그 선택은 언제나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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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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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이 곧 사람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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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말〉은 짧지만, 시대를 넘어선 진리의 시다.
그는 우리에게 ‘예쁜 말’을 요구한 게 아니라,
‘진심의 말’을 요구하였다.
입이 꽃처럼 고와질 때,
그 사람의 인생도 향기로 피어난다.
황금찬 시인은 인간의 입속에 ‘하나의 세계’를 보았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이 피어나는 자리가 되었으니까.
이 시는 이제 시인의 유언처럼 남았다.
“사람아, 너의 말이 곱게 피어나길.”
그 한마디가 오늘도 귀에 맴돈다.
그것은 시가 아니다.
한 세대를 향한 마지막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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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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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찬 시인의 〈꽃의 말〉은
‘말’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소재 속에
‘인간의 구원’을 담아낸 시다.
그는 말의 시대에 침묵을 가르치고,
소음의 시대에 향기를 전했다.
그의 시는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남는다.
왜냐면 그는 말보다 사람이 먼저였고,
사람보다 마음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이 한 편의 시는 결국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인다.
너의 말이 너의 얼굴이다.
너의 입이 네 영혼의 빛이다.
사람아, 꽃처럼 고운 입으로 세상을 밝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