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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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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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안 혜 초
소동파의 부엌은 궁궐의 부엌이 아니었다.
벽은 허물어져 있었고, 창문은 바람에 삐걱거렸다.
그는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황주라는 이름 없는 변방으로 내던져졌다.
그러나 그 추의 와 침묵 속에서도 불 하나를 피웠다.
그 불은 단지 돼지고기를 익히는 불이 아니었다.
세상을 향한 마지막 저항의 불이었다.
그 불 위에 냄비를 올리고, 세월을 끓였다.
그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 속엔 눈물의 소금기가 섞였고,
외로움의 향이 천천히 배어 나왔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따뜻함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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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 서정평론 “고통 속에서 피어오른 불빛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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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의 부엌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한 인간의 마지막 자리였다.
궁궐의 화려함은 이미 사라지고, 남은 것은 허물어진 벽과 삐걱대는 창문뿐이었다.
그러나 그 황량한 부엌에서, 한 사람의 마음이 다시 불을 피웠다.
그 불은 단지 돼지고기를 익히는 불이 아니었다. 시인은 말한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마지막 저항의 불’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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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버겁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종종 냉소와 체념 속에 자신을 던진다.
그러나 소동파는 그 반대편에서 서 있었다.
그는 외로움과 절망의 중심에 불을 피웠다.
그 불은 따뜻하지도, 밝지도 않았지만, 꺼지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불빛, 존엄의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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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냄비를 올리고 세월을 끓였다고 썼다.
얼마나 깊은 문장인가.
그 냄비 속에는 고기보다도 더 진한 인생이 들어 있었다.
끓어오르는 김은 시간의 숨결이 되었고,
그 안에는 눈물의 짠맛과 외로움의 향이 섞여 있었다.
인간의 인생이란 어쩌면 바로 그 냄비 속에서 끓는 국물일지도 모른다.
눈물이 증발한 자리에 향기가 남고,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따뜻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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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혜 초 시인의 이 작품은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인간의 가장 높은 철학을 끌어올린 시다.
그가 그리고 있는 부엌은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영혼이 다시 빛나는 자리다.
불행 속에서도 인간은 온기를 만들 수 있다는,
그 오래된 진리를 시인은 다정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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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단지 요리의 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식지 않도록 지켜주는 희망의 불씨다.
삶이 차가워질수록, 우리는 그 불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그 불이야말로 인간이 세상을 향해 마지막으로 드는 빛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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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을 읽고 나면,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불을 피우고 있는가?”
누군가는 분노의 불을, 누군가는 사랑의 불을,
또 누군가는 살아 있음 그 자체의 불을 지핀다.
그 불은 작고 흔들리지만, 그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인간은 여전히 인간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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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의 부엌은 궁궐보다 따뜻했다.
그의 냄비에서 끓던 국물은 단지 음식이 아니다.
세월과 철학,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끓이는 시의 연금로였다.
그 불 위에 놓인 냄비에서 오늘의 우리 또한 배운다
고통이 있어도 괜찮다고,
그 속에서도 따뜻함을 지켜낼 수 있다고.
동파육,
"삶이 식어도 불은 남는다.
그 불 위에 마음을 올려라.
그러면 다시 향기가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