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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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에 담긴 의미--가는 금관 오는 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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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情 이인애
속담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지만
금관 선물 사은품이
야구몽둥이라니요,
“트통형 이 금관 받으세요!
지금이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얻다 대고 관세 폭탄 제왕놀음인가요?”
“힘자랑에 이웃이야 죽든 말든
혼자만 배 불리면 다 인가요?
형이면 형답게 마음보 좀 곱게 쓰세요
언젠가는 이웃을 향하던 그 폭탄,
형님 발등에 떨어질 날도 있으리니요…”
“옜다, 받아라! 셰셰 하고 셰셰셰 하며
총도 칼도 두렵지 않다기에,
돌려줄 거라곤 야구빠따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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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평론 ― 금관의 정치학, 방망이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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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인의 〈선물에 담긴 의미〉는 웃음으로 시작해 양심으로 끝난다.
처음엔 농담처럼 읽히지만,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시 속의 ‘금관’은 더 이상 찬란한 영광이 아니라 부패한 권위의 은닉처다.
그리고 ‘방망이’는 폭력이 아닌 자각의 상징으로 변모한다.
이 둘은 마치 서로를 비추는 두 거울처럼, 인간의 탐욕과 양심의 균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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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지만 / 금관 선물 사은품이 / 야구몽둥이라니요,”
짧은 세 줄이 세계정치의 단면을 드러낸다.
금관은 부와 명예의 상징이지만, 이 시에서는 그 무게가 죄책감으로 변한다.
선물이라 불리지만 사실은 거래이고, 사은품이라 하지만 실은 회유다.
주고받음의 행위 속에서 인간의 순수한 의도가 사라지고, 대신 이익의 냄새만 남는다.
시인은 그 냄새를 맡는다.
그래서 웃음 뒤에 경고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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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방망이”는 단순한 복수의 도구가 아니다.
시인은 그것을 윤리의 법칙으로 되살린다.
남을 향하던 폭탄은 결국 자기 발등으로 떨어진다.
세상은 그렇게 순환한다.
시인은 법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진실을 보여준다.
“형님 발등에 떨어질 날도 있으리니요.”
이 한 줄의 말투엔 경험이 있다.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 아니다.
인간 전체를 향한 경고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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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언어의 결투다.
‘금관’이라는 권위의 언어와 ‘야구빠따’라는 서민의 언어가 한 문장 안에서 부딪친다.
그 충돌의 순간, 문학은 위계에서 벗어나 살아 움직인다.
언어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솟구치는 순간이다.
이인애 시인의 시는 그 언어의 민주화를 실현한다.
권력의 말을 해체하고, 민중의 말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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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통형 이 금관 받으세요!”
시의 첫 대사는 풍자를 연극처럼 바꾼다.
유머로 시작하지만, 그 밑에는 피로와 냉소,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흐른다.
“셰셰 하고 셰셰셰 하며” 짧은소리의 반복 속에 미, 중 패권의 기묘한 균형이 숨어 있다.
웃음소리가 세계정치의 언어가 되고,
그 속에서 시인은 인간의 허망한 욕망을 바라본다.
그는 웃으면서도 울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히 세상을 비웃지 않는다.
풍자의 본질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을 이 시는 다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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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면 형답게 마음보 좀 곱게 쓰세요.”
이건 꾸짖음이 아니라 부탁이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한 인간의 진심 어린 충고다.
다정(多情)이라는 이름은 이 시인의 정체성이자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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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은 왕관이면서 동시에 관(棺)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이 시의 금빛은 곧 부패의 광택이자 문명의 사후(死後)다.
이인애 시인은 그 광채 위에 흙을 덮는다.
그 흙은 풍자의 언어로, 그 속엔 애도의 온기가 있다.
그의 웃음은 조롱이 아니라 마지막 기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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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도 칼도 두렵지 않다기에, 돌려줄 거라곤 야구빠따뿐이로다.”
이 마지막 연은 시의 결론이자 선언이다.
그 방망이는 피를 내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양심을 두드린다.
시인은 폭력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각성’이라는 이름의 방망이를 든다.
그것이 시인의 무기이며, 문학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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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금관 오는 방망이〉는 풍자이자 윤리이며, 유머 속의 철학이다.
권력의 금관을 벗겨내고, 인간의 이마 위에 양심의 방망이를 살포시 얹는다.
그 충격은 아프지 않다. 다만 오래 울린다.
웃음이 사라진 뒤 남는 정적 속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금관을 쓰고 있는가.
그리고 내 손의 방망이는, 누구를 향해 들려 있는가.
이인애 시의 웃음은 조롱이 아니라 각성이다.
그는 세상을 꾸짖지 않고, 다만 비춘다.
그 빛이 따뜻해서 더욱 서늘하다.
웃음 끝의 정적, 그 순간 시는 다시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