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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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쓰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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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시인
사랑이란
고요 속에서만 흐르는 강
침묵 속에서만 들리는
바람의 언어
나는 나를 비운다
순수함으로 한 겹 벗겨내고
고요함으로 한 겹 살포시 접는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이를 마음에 새기면
그는 오월의 꽃잎이 되어
햇살의 숨결을 고요히 풀어내고
가족을 마음에 깃들이면
그들은 갈바람의 현이 되어
자연의 선율로 흐른다
친구를 마음에 들이면
그는 추억의 새가 되어
휘파람처럼 맑게 퍼져간다
만약
마음속에 침묵을 이루는
순수함, 고요함이 없을 때
나는 무슨 힘으로
그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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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침묵은 사랑의 가장 오래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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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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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속에서 태어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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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시인의 〈침묵이 쓰는 시〉는 한 줄의 시보다 오래 머무는 숨결이다.
“사랑이란 고요 속에서만 흐르는 강.”
그는 세상의 요란한 고백을 버리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택했다.
그 강은 말이 없지만,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적신다.
사랑이란 결국 말로 증명할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이며,
그 침묵 속에서만 진실이 스며든다는 사실을 시인은 알고 있다.
그의 시는 사랑을 ‘행동’보다 ‘존재의 상태’로 제시한다.
사랑은 흘러가는 물과 같고, 물은 흐르면서도 부드럽고,
끝내 바다로 나아가 모든 것을 품는다.
이 시의 첫 연은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선언이다.
‘사랑이란 고요 속에서만 흐른다’는 말은
우리 시대의 소란한 감정과 언어에 대한 부드러운 저항이다.
시인은 말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침묵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사랑은 소유가 아닌 이해로, 표현이 아닌 공감으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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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철학 마음의 층을 걷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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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비운다 / 순수함으로 한 겹 벗겨내고 / 고요함으로 한 겹 살포시 접는다.”
이 세 줄은 시 전체의 심장이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비우는 이 구절은,
마치 수행자의 기도처럼 들린다.
사랑이란 채우는 일이 아니라 비워내는 일이라는 깨달음,
그것이 이 시의 철학이다.
‘벗겨내고 접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질서를 바로잡는 인간적 결심이다.
벗겨냄은 욕망의 탈피이고, 접음은 사유의 정리다.
그는 말한다. “비워야 들을 수 있다.”
고요함은 침묵의 조건이며, 침묵은 사랑의 그릇이다.
박진우 시인의 시적 사유는 종교와 철학을 초월해
‘마음의 깨끗함이 곧 사랑의 힘’이라는 진리를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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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확장 개인에서 공동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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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흐름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시작해
연인, 가족, 친구로 점차 확대된다.
이 구조는 사랑이 감정에서 관계로, 관계에서 생명으로 확장되는
자연의 순환 구조를 닮았다.
연인을 향한 사랑은 “오월의 꽃잎”처럼 부드럽다.
그는 사랑을 소유하지 않는다. 다만 바라보며, 빛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햇살의 숨결’로 상대를 풀어내며,
그 과정 자체를 사랑의 증거로 남긴다.
가족에 대한 구절은 더욱 음악적이다.
“그들은 갈바람의 현이 되어 / 자연의 선율로 흐른다.”
이 부분에서 가족의 사랑은 악기처럼 울리고,
바람처럼 흐른다.
그 현(絃)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사라지지만,
그 안에 있는 리듬은 언제나 따뜻하다.
그리고 친구는 “추억의 새”로 변한다.
그 새는 휘파람처럼 맑게 퍼져나가며,
시인의 기억 속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이 구절은 인간관계의 가장 투명한 형태 아픔 없는 그리움을 보여준다.
그의 사랑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다.
시간 속에서 길러진 이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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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라는 언어, 말보다 깊은 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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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만 들리는 바람의 언어.”
이 한 줄은 이 시의 미학적 정점이다.
박진우에게 바람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와 존재를 잇는 매개이며,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마음의 파동이다.
그는 말한다. “사랑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다.”
이 구절은 현대 시의 감각적 언어를 넘어,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감응을 노래한다.
침묵은 단절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존재를 이어주는 다리다.
소리가 사라질 때, 마음은 비로소 상대에게 닿는다.
그는 이 ‘비어 있음’의 미학을 통해
사랑의 근원을 새롭게 발견한다.
말이 없어도 통하는 그 이해의 순간,
그것은 바로 인간이 인간에게 도달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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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온기 노자와 장자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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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시인의 시에는 동양 사유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노자의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장자의 “참된 앎은 말로 전할 수 없다”는 말처럼
그의 침묵은 존재의 충만함으로 이어진다.
그에게 사랑은 설명될 때 오히려 약해지고,
말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이 시는 사랑의 본질을 묻는 동시에,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의 침묵은 소리의 부재가 아니다.
감정이 가장 맑게 가라앉은 순간이다.
박진우는 이 고요함을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 변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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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울림 침묵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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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의 질문,
“나는 무슨 힘으로 / 그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 구절은 절망이 아니라 기도에 가깝다.
그는 사랑을 인간의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
사랑은 하늘이 잠시 인간에게 허락한 은총이며,
그 은총을 받기 위해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의 침묵은 기도의 자세이고,
그의 고요는 사랑의 믿음이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존재의 따뜻함이다.
그것이 이 시가 가진 종교적 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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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질서 여백이 만든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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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절제되어 있다.
수식이 거의 없고, 문장이 간결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시를 풍요롭게 한다.
행과 행 사이의 여백에는
시인의 숨과 시간의 정적이 흐른다.
그 여백이 바로 사랑의 온도이다.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감정이 쉼을 얻는 자리다.
그의 언어는 물처럼 투명하고,
그 투명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비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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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학적 통찰 사랑은 자신을 잃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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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시인의 시에서 사랑은
타인을 얻는 일이 아니라, 나를 잃는 일이다.
그는 사랑을 통해 확장되지 않고, 오히려 작아진다.
그러나 그 작아짐 속에 진실이 있다.
그는 나를 비워 타인을 채우고,
말을 멈추어 마음을 연다.
이 시의 침묵은 바로 그 겸허한 용기의 이름이다.
사랑이란 결국 자기 존재를 낮춤으로써 완성되는 윤리이며,
그 비움이야말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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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속에서, 침묵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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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너무 많은 소리를 듣는다.
정치의 언어, 미디어의 언어, 욕망의 언어가
우리의 귀를 막고 있다.
그 속에서 진심은 점점 들리지 않는다.
박진우의 시는 이런 시대에 건네는
조용한 윤리적 선언문이다.
그의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책임이며,
무관심이 아니다. 존재의 존중이다.
그는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태도’로 정의한다.
그 침묵 속에서 인간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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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의 강, 사랑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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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쓰는 시〉는 말보다 마음이 앞서고,
감정보다 존재가 먼저인 사랑의 시학이다.
이 시는 소리를 없앰으로써 더 많은 것을 들리게 하고,
말을 줄임으로써 더 큰 진실을 남긴다.
침묵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는 가장 오래된 언어라는 사실을,
박진우 시인의 짧은 시 속에 고요히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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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는 오늘의 세상과 대비된다.
사람들은 말하고, 외치고, 증명하려 한다.
사랑조차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소모되고,
고요는 오해받는다.
그러나 시인은 알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보여주는 행위가 아니라,
묵묵히 머무는 마음의 상태다.
그 머무름의 시간 속에서,
사랑은 소리 없이 익어가고,
침묵은 말보다 깊은 울림으로 변한다.
박진우 시인의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다리다.
그 다리는 사람과 사람, 존재와 존재를 이어준다.
그는 사랑을 고백의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바람의 숨결과 햇살의 고요함으로 전한다.
그의 시 속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윤리가 된다.
침묵 속의 강이 바로 그것이다
말은 멈추어도 흐름은 이어지고,
소리는 사라져도 온기는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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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덮고 나면, 우리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사랑이란 결국 누군가를 위해 잠잠해지는 일이라는 것.
말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용기,
침묵 속에서 타인의 온도를
느껴 주고받는 온기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