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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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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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천득 선생님께 헌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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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청자연적 물빛 안에
생각이 고요히 번져
난초 향처럼 은근하고
학의 걸음처럼 맑다
사람 발길 드문 숲길,
그 위로 마음이 걷는다
정열의 불길은 멀고
차 향기만 남은 자리
비둘기빛, 진주빛처럼
잔잔한 빛이 흐르네
조용한 미소 속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네
청자의 빛 고요하고
푸른 사파이어 닮아
깊이 스며든 그 색깔,
마음에 잔향이 된다
그 빛이 남은 자리엔
오직 고요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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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보석수집가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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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고요의 빛으로 다시 쓰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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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의 빛〉은 피천득 선생님의 문학정신에 대한 헌정이자,
수필의 고요를 시조의 언어로 다시 새긴 영혼의 변주곡이다.
피천득의 수필이 향기라면, 이 시조는 빛이 되었다.
향기는 감각의 흔적이지만, 빛은 마음의 잔상이다.
그 잔상 속에서 예술은 사라지지 않고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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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피천득의 온아(溫雅)한 문장과
청초(淸楚)한 품격을 계승하면서,
자신의 언어로 빛의 결을 재단한다.
그에게 청자는 인간의 내면을 담는 그릇이자
영혼의 가장 맑은 거울이다.
그 고요한 표면에 비친 사유의 흔적이
바로 이 시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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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수집가로서 시인에게
진정한 빛은 외부의 반사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결 속에서 스스로 피어나는 것이다.
그 빛의 미학이 곧 피천득 선생님의 정신이며,
박성진 시인의 미학적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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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와 보석 비움과 반사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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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는 비워져야 그릇이 된다.
그 비움 속에서 빛은 깊어지고,
시간은 색으로 변한다.
보석 역시 내부의 결이 투명할수록
더 강한 빛을 품는다.
두 세계는 ‘비움의 미학’으로 만난다.
피천득 선생님은 군더더기를 버린 언어로
품격을 쌓아 올렸고,
박성진 시인은 그 언어를 정제된 리듬으로 옮긴다.
그의 시조는 보석의 절면처럼 정교하며,
각 행마다 미묘한 빛의 반사각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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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빛은 인간의 정신을 닮는다.
루비는 열정, 에메랄드는 회복,
사파이어는 지성, 진주는 인내를 상징한다.
그 가운데 청자는 사파이어의 우아함과
진주의 따뜻함을 함께 품는다.
이 시는 그 두 빛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바로 예술의 품격이 탄생하는 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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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 물빛의 사유와 난초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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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연적 물빛 안에 / 생각이 고요히 번져.”
시의 첫 행은 이미 철학이다.
물은 감정의 표면, 빛은 정신의 언어이다.
시인은 그 두 층을 포개어 사유의 깊이를 만든다.
“난초 향처럼 은근하고 / 학의 걸음처럼 맑다.”
이 부분에서 예술은 자연의 미로 승화된다.
난초의 향기는 절제의 은유,
학의 걸음은 품격의 상징이다.
그것은 곧 피천득 선생의 문장적 인격을 가리킨다.
시인은 그 정신을 시조의 어법으로 계승하였다.
언어는 화려하지 않으나,
빛처럼 단단하고 고요하게 선다.
보석처럼, 그 언어는 읽을수록 새로운 각면을 드러낸다.
그 다면성이 곧 박성진 시인 문학의 미학적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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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예술가의 순례와 내면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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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발길 드문 숲길, 그 위로 마음이 걷는다.”
숲길은 세속과 단절된 공간이다.
그곳은 오로지 사유의 발자국만이 남는 길이다.
시인은 그 길 위에서 자신을 닦고,
세계의 소음을 밀어낸다.
보석수집가의 눈으로 보면
숲은 수많은 빛의 조각이 모인 결정의 숲이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각도마다
서로 다른 색의 사유가 반짝인다.
예술은 그 모든 차이를 읽어내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이 숲길에서 박성진은
‘피천득 선생의 고요’라는 정신의 좌표를 찾아낸다.
예술은 세상의 길이 아니다.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이다.
그 고독이야말로 가장 고요한 사치이자,
예술가의 본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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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연, 정열에서 향기로, 향기에서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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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의 불길은 멀고 / 차 향기만 남은 자리.”
뜨거움은 사라지고, 향기만 남는다.
그 향기는 세월의 여운이며,
삶을 다 태운 뒤 남는 고요한 온도다.
피천득 선생의 글 또한 그 향기 속에서 태어났다.
“비둘기빛, 진주빛처럼 / 잔잔한 빛이 흐르네.”
이 한 줄은 예술의 궁극적 상태를 보여준다.
화려함이 가라앉고, 빛이 은근해진 세계.
비둘기의 빛은 평화의 정서,
진주의 빛은 시간의 인내를 상징한다.
시인은 그것을 시조의 언어로 번역한다.
그에게 빛은 감정의 온도이며,
예술은 색이 숙성되는 시간의 연금술이다.
보석수집가로서 자연의 산물인 천연보석은 최소 몇만 년에서 40억 년의 세월이 지나야 성숙한 보석 원석을 얻게 된다.
시간이 깎고 다듬은 광택만이 영롱한 빛이
되는 것처럼
예술 또한 그렇게, 오래 깎여서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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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미학 나의 삶을 돌아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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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미소 속에서 / 나의 삶을 돌아보네.”
이 구절은 인간의 내면이 고요히 자신을 비추는 순간이다.
예술은 자기 성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박성진 시인도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한다.
그의 미소는 만족의 표정이 아니라,
감사의 태도이며 겸허의 얼굴이다.
보석의 광택은 거친 손길의 결과다.
삶을 닦고 다듬는 일 또한 다르지 않다.
피천득 선생님이 인생을 문장으로 닦았다면,
박성진 시인, 수집가는 그 삶을 시의 호흡으로 연마하였다.
그에게 돌아봄은 반성의 행위가 아니다.
빛을 다시 닦아내는 행위다.
그 조용한 회상 속에서
예술은 인간을, 인간은 다시 예술을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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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연,
청자의 빛, 사파이어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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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의 빛 고요하고 / 푸른 사파이어 닮아.”
이 한 행에서 시는 완전히 시각적 차원을 넘어선다.
청자의 푸름은 동양적 평정의 미,
사파이어의 푸름은 서양적 지성의 미로 간주된다.
박성진은 이 두 세계를 하나의 빛으로 묶는다.
빛이란 어느 한 방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비워진 중심에서 사방으로 퍼진다는 것을.
그 중심은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그곳에서 예술의 빛은 가장 투명하게 빛난다.
이 구절은 곧 시인의 세계관이다.
그에게 예술은 동양의 고요와 서양의 이성이 만나는 자리,
즉 ‘빛의 윤리’가 실현되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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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귀결 침묵 속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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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이 남은 자리엔 / 오직 고요만 흐른다.”
모든 예술은 결국 침묵으로 돌아간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고요가 피어나고,
그 고요는 더 큰 울림으로 세상을 비춘다.
피천득 선생님의 문장은 언제나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수많은 영혼이 위로를 받았다.
박성진은 그 침묵의 품격을 이어받는다.
시인의 시조는 단아하고, 온화하며,
한 줄 한 줄이 빛의 숨결로 고요히 흘러간다.
보석의 가장 깊은 순간은
광채가 사라지기 직전의 정적이다.
그 마지막의 침묵이야말로 예술의 완성이다.
그 고요한 숨을 붙잡아
한 편의 시로 빚어 올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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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의 청자, 박성진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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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의 빛〉은 수필의 향기가 시의 리듬으로 전이된
문학적 계승의 결정체이다.
피천득의 청자는 마음의 그릇,
수집가의 빛은 그 마음이 품은 영혼의 광채다.
그에게 청자는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다.
한 시대의 정신이 결정으로 응고된 상징이다.
그 표면 위에 새겨진 빛의 결은
인간의 내면이 남긴 품격의 흔적이다.
수집가는 그 청자를 ‘빛’으로 다시 세공한다.
그 빛은 외부의 반사가 아니라,
내면의 윤리에서 우러나오는 정신의 광택이다.
문학은 그 빛을 언어로, 예술은 그 빛을 존재로 전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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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이 수필로 ‘고요의 향기’를 남겼다면,
박성진은 시조로 ‘고요의 빛’을 새긴다.
향기와 빛, 두 감각이 만나는 그 자리에
예술의 윤리가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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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수집가로서 그는 세상 모든 돌에서
빛의 조각을 발견하듯,
인간의 내면에서도 찬란한 광채를 찾아내었다.
그에게 예술이란 사라지는 것들을
다시 빛으로 되돌리는 구원의 행위다.
그러므로 〈청자의 빛〉은 헌정 시를 넘어
‘존재의 미학’이자 ‘빛의 윤리학’이다.
청자는 과거의 예술이고,
빛은 현재의 생명이며,
그 둘을 이어주는 손이 바로 시인이다.
그는 말없이 이렇게 증명한다.
“고요 속에서도 인간은 빛난다.”
그 빛은 피천득의 미소처럼 온화하고,
수집가의 사파이어처럼 깊고 투명하다.
그 푸르름은 오늘도 흐른다.
예술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마음속의 푸르름으로 계속된다.
계절이 바뀌어 푸른 신록이 찾아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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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품격, 빛의 인간학은
청자의 빛, 문학, 철학, 미학이 한 자리에 머무는 작품이다.
수필의 향기와 시조의 운율이 교차하는
수필, 청자의 고요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