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최옥선-전승교육사>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최옥선 전승교육사〉


전승교육사의 언어로 피어난 산촌의 시학 —

문화평론가 박성진



<작품의 정황과 언어적 특징>


〈최옥선〉은 강원 평창 청옥산 일대의 산촌 언어와 민속적 삶을 그대로 품은 구비 시

(口碑詩)다. 이 시는 기록문학이라기보다 말로 불리고 노래되는 구전의 세계를 지면 위로 옮긴 작품이다.


“딱죽이 우거진 청옥산 당신은 / 꼴 베고 나는 나물 뜯고 / 단둘이 가세”라는 첫머리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강원 산촌의 생활 감각이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노동의 노래이다.

이 리듬에는 ‘말의 박자’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운율은 사투리의 억양에서 나오며, 시의 호흡은 흙냄새 나는 구어로 이어진다.


두 번째 연에서 “총각 낭군을 만나 보려고 / 머리 곱게 빗은 걸고 / 몹쓸 놈의 돌개바람이 다 헝클어 났네”는 여성 화자의 소박한 연심과 현실적 좌절을 해학적으로 드러낸다.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세상사의 뜻대로 되지 않음과 그럼에도 웃어버리는 산촌 여인의 지혜를 상징한다.


세 번째 연의 “두마니 둥둥재 새 조밥 하기 싫거든 내화 방림 세초 거리로 들병 장사 갑시다”는 언어의 리듬과 구체성이 절정에 달한다. 지역어의 질감이 살아 있고, 생활의 냄새가 짙다. 이는 시가 아니라, 하나의 민요이며, 동시에 시적 구비문학이다.


마지막 연에서 “영감은 할멈 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 치고…”로 이어지는 대목은 구어 유희의 정점이다.

반복과 대구법, 의성어적 리듬을 통해 웃음과 풍자가 동시에 발생한다. “우리 집 영감은 앞집 과부한테다 곁눈질만 치는구나”라는 마지막 구절은 농촌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적 질투와 해학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 생활이 곧 문학이 되는 자리 >


〈최옥선〉은 문학과 민속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이다.

‘전승교육사 최옥선’이라는 이름은 개인의 신분을 넘어 ‘생활 언어의 보존자’를 상징한다.

그는 박물관의 설명서가 아닌, 살아 있는 언어의 현장을 지키는 구비 전승자다.


이 작품이 가진 핵심적 미학은 “생활의 언어가 시로 변하는 순간”에 있다.

‘꼴 베고 나물 뜯는’ 노동의 현장, ‘돌개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둥둥재’라는 방언의 울림- all of these are 곧 문학이 된다. 최옥선의 언어는 문법보다 리듬을 따른다.

의미보다 감각이 먼저이며, 사유보다 웃음이 앞선다.

그것은 문자 이전의 시, 즉 ‘몸으로 말하는 시’다.


또한 이 시는 여성적 서사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여성이 주체로서 등장하고, 자기감정을 농담과 풍자로 표현한다. “영감은 앞집 과부한테다 곁눈질만 치는구나”라는 구절은 억압이 아닌, 유쾌한 자기 방어이자 풍자이다.

여인의 한숨이 아니라, 웃음으로 세계를 이겨내는 지혜이다.


문학사적으로 보면, 〈최옥선〉은 전통 민요와 현대 서정시의 경계에 서 있다. 리듬은 민요의 리듬이고, 구성은 시의 형식을 띠며, 내용은 구비문학의 현실 감각을 따른다. 이 구조는 21세기 이후 ‘지역어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즉, 표준어 중심의 문학이 잃어버린 ‘살아 있는 말의 숨결’을 되찾는 일이다.



<결론 ― 언어의 산, 청옥산에서 피어난 문학>


〈최옥선〉은 단지 한 지역의 구전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말의 생명력’,

‘생활의 품격’,

‘민중의 해학’이 동시에 존재하는 문학적 현장이다.

청옥산의 바람과 곤드레 향, 그리고 그 속을 살아온 사람들의 웃음이 최옥선의 언어를 통해 예술로 바뀌었다.


이 작품 결국 묻는 것은

“문학은 어디서 오는가?”

그 답은, 화려한 문단이 아니다.

나물을 뜯는 손끝에서, 흙냄새 나는 입말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전승교육사 최옥선의 말 한마디,

그것이 곧 ‘청옥산의 시’ 요,

민중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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