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
<최옥선 전승교육사〉
■
전승교육사의 언어로 피어난 산촌의 시학 —
■
문화평론가 박성진
■
<작품의 정황과 언어적 특징>
■
〈최옥선〉은 강원 평창 청옥산 일대의 산촌 언어와 민속적 삶을 그대로 품은 구비 시
(口碑詩)다. 이 시는 기록문학이라기보다 말로 불리고 노래되는 구전의 세계를 지면 위로 옮긴 작품이다.
■
“딱죽이 우거진 청옥산 당신은 / 꼴 베고 나는 나물 뜯고 / 단둘이 가세”라는 첫머리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강원 산촌의 생활 감각이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노동의 노래이다.
이 리듬에는 ‘말의 박자’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운율은 사투리의 억양에서 나오며, 시의 호흡은 흙냄새 나는 구어로 이어진다.
■
두 번째 연에서 “총각 낭군을 만나 보려고 / 머리 곱게 빗은 걸고 / 몹쓸 놈의 돌개바람이 다 헝클어 났네”는 여성 화자의 소박한 연심과 현실적 좌절을 해학적으로 드러낸다.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세상사의 뜻대로 되지 않음과 그럼에도 웃어버리는 산촌 여인의 지혜를 상징한다.
■
세 번째 연의 “두마니 둥둥재 새 조밥 하기 싫거든 내화 방림 세초 거리로 들병 장사 갑시다”는 언어의 리듬과 구체성이 절정에 달한다. 지역어의 질감이 살아 있고, 생활의 냄새가 짙다. 이는 시가 아니라, 하나의 민요이며, 동시에 시적 구비문학이다.
■
마지막 연에서 “영감은 할멈 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 치고…”로 이어지는 대목은 구어 유희의 정점이다.
반복과 대구법, 의성어적 리듬을 통해 웃음과 풍자가 동시에 발생한다. “우리 집 영감은 앞집 과부한테다 곁눈질만 치는구나”라는 마지막 구절은 농촌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적 질투와 해학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
< 생활이 곧 문학이 되는 자리 >
■
〈최옥선〉은 문학과 민속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이다.
‘전승교육사 최옥선’이라는 이름은 개인의 신분을 넘어 ‘생활 언어의 보존자’를 상징한다.
그는 박물관의 설명서가 아닌, 살아 있는 언어의 현장을 지키는 구비 전승자다.
■
이 작품이 가진 핵심적 미학은 “생활의 언어가 시로 변하는 순간”에 있다.
‘꼴 베고 나물 뜯는’ 노동의 현장, ‘돌개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둥둥재’라는 방언의 울림- all of these are 곧 문학이 된다. 최옥선의 언어는 문법보다 리듬을 따른다.
의미보다 감각이 먼저이며, 사유보다 웃음이 앞선다.
그것은 문자 이전의 시, 즉 ‘몸으로 말하는 시’다.
■
또한 이 시는 여성적 서사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여성이 주체로서 등장하고, 자기감정을 농담과 풍자로 표현한다. “영감은 앞집 과부한테다 곁눈질만 치는구나”라는 구절은 억압이 아닌, 유쾌한 자기 방어이자 풍자이다.
여인의 한숨이 아니라, 웃음으로 세계를 이겨내는 지혜이다.
■
문학사적으로 보면, 〈최옥선〉은 전통 민요와 현대 서정시의 경계에 서 있다. 리듬은 민요의 리듬이고, 구성은 시의 형식을 띠며, 내용은 구비문학의 현실 감각을 따른다. 이 구조는 21세기 이후 ‘지역어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즉, 표준어 중심의 문학이 잃어버린 ‘살아 있는 말의 숨결’을 되찾는 일이다.
■
<결론 ― 언어의 산, 청옥산에서 피어난 문학>
■
〈최옥선〉은 단지 한 지역의 구전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말의 생명력’,
‘생활의 품격’,
‘민중의 해학’이 동시에 존재하는 문학적 현장이다.
청옥산의 바람과 곤드레 향, 그리고 그 속을 살아온 사람들의 웃음이 최옥선의 언어를 통해 예술로 바뀌었다.
■
이 작품 결국 묻는 것은
“문학은 어디서 오는가?”
그 답은, 화려한 문단이 아니다.
나물을 뜯는 손끝에서, 흙냄새 나는 입말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전승교육사 최옥선의 말 한마디,
그것이 곧 ‘청옥산의 시’ 요,
민중의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