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김옥녀-강냉이 밥 사절 치기》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강냉이 밥 사절 치기〉


김옥녀 시


강냉이 밥 사절 치기는

오글박작 끓는데,

임자 당신은 어디를 가려는지

신발 단속을 하시네.


허공 중천의 구름은

멀리 타향으로 흘러가고,

우리네 인생은 돌고 돌아

또 어디로 가는가.


우리 집 시어머니,

삼베길쌈 못한다고

앞 남산 광속깽이로

날만 꽝꽝 치더니,

한오백년 못 사시고

북망산천 가셨네.


그리움도 세월도

밥 짓는 냄새처럼 퍼지며

한 세상 돌고 돌아

연기처럼 흩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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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녀 시세계 연구 ― ‘강냉이 밥 사절 치기’의 구술적 시학과 여성 서민 리얼리즘〉


문화평론가 박성진



서론 ― 말의 온도와 삶의 질감


김옥녀의 〈강냉이 밥 사절 치기〉는 문학이 삶으로부터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가를 증명한 작품이다.

이 시의 언어는 단어 이전의 숨결로 존재하며, 부엌의 연기, 가마솥의 끓음, 마당의 바람처럼 생생하다.

그녀는 시를 ‘쓴다’기보다 ‘삶을 말한다’.

따라서 이 시는 기록문학이 아니라 ‘삶의 말문학’으로 읽혀야 한다.

김옥녀의 언어는 사투리, 속담, 구전적 리듬을 통해 ‘생활 시’의 미학을 세운다.

이는 한국 시문학이 엘리트적 문어체에서 벗어나 민중의 음성과 화해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삶의 자리에서 태어난 언어 ― 운문 산문시의 본질


이 작품은 형식상 산문이지만, 정서상 순수한 운문이다.

‘오글박작 끓는 강냉이 밥’은 이미 리듬이 존재한다.

김옥녀는 문장의 구성을 넘어, 소리로서의 시를 쓴다.

이 점에서 그녀의 시는 운문 산문시로 규정된다.


그녀의 운율은 음악적이라기보다 생활적이다.

밥 짓는 소리, 장독대 두드리는 소리, 깽이질의 타격음이 시의 리듬이 된다.

이러한 리듬은 시인이 언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시인의 삶을 이끄는 구조다.

즉, 문장이 리듬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리듬이 문장을 만든다.



구술적 리얼리즘 ― 문학의 가장 오래된 뿌리


〈강냉이 밥 사절 치기〉는 문어가 아닌 말의 문학이다.

그 말에는 억양과 체온이 있다.

‘임자 당신은 어디를 가려는지’라는 구절에는

단순한 호소가 아니라 부부의 세월이 담겨 있다.

그는 떠나려 하고, 그녀는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감정이 한숨이 아닌 생활의 리듬으로 풀린다.


이것이 김옥녀의 시가 지닌 힘이다.

그녀는 한탄하지 않는다. 대신 말한다.

그 말의 힘은 문학을 다시 민중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그녀의 시는 살아 있는 민속이며, 현대의 구비문학이다.



여성적 목소리의 복권 ― 시어머니의 기억을 넘어


이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면은

“삼베질쌈 못한다고 / 앞 남산 광속깽이로 / 날만 꽝꽝 치더니”라는 부분이다.

이것은 단순한 일상의 회고가 아니라 억압된 여성사의 압축이다.

시어머니의 질책과 폭력, 그리고 그것을 감내하며 살아온 며느리의 세대,

그것이 한국 근대 여성의 공통된 기억이다.


그러나 김옥녀는 이를 한(恨)의 서사로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 기억을 해학으로 전환한다.

“한오백년 못 사시고 북망산천 가셨네”라는 대목에서,

그녀는 원망이 아닌 관조로 인생을 바라본다.

이것은 여성적 서사의 성숙이며, 용서의 미학이다.



민요적 리듬과 언어의 생태학


김옥녀의 시에는 민요의 리듬이 살아 있다.

‘강냉이 밥 사절 치기’라는 구절 자체가 이미 후렴구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반복되는 의성어, 의태어는 단조로움이 아니라 생활의 박자이다.

그녀는 일상의 반복을 예술로 변환한다.

이 리듬은 한국 농촌 여성들의 호흡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시의 후반부에서

“허공 중천의 구름은 멀리 타향으로 가는데 / 우리네 인생은 돌고 돌아 어디로 가나”라는 구절은

민요의 사설 후렴처럼 들린다.

삶의 무상함과 순환의 철학이 한 문장 안에 녹아 있다.

그녀는 밥 짓는 일과 살아가는 일을 동일한 행위로 여긴다.

그 행위 속에서 여성의 노동은 곧 시의 리듬이 된다.



언어의 물질성과 정서의 촉감


김옥녀의 언어는 눈으로 읽기보다 손으로 만져야 한다.

‘삼베질쌈’, ‘광속깽이’, ‘강냉이 밥’ — 이 모든 것은

손의 기억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녀의 시는 물질의 촉감으로 이루어진다.

즉, 언어가 아니라 손끝의 체험이다.


이것이 바로 생활언어의 미학이다.

그녀는 화려한 은유나 상징을 쓰지 않는다.

대신,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단어를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그 결과, 시의 언어는 감각적이면서도 사실적이다.

그녀의 언어는 살이며, 그 살 속에서 문학은 숨 쉰다.



여성 민중문학의 계보 속 위치


김옥녀의 시는 김소월의 서정, 신경림의 농민적 리얼리즘,

그리고 김금숙의 구술시학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녀의 세계는 여성의 언어로 쓴 민중문학이다.

이것은 문학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는 사회의 주변부에 선 이들의 언어를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그녀의 시에서 말하는 주체는 배운 여성이 아니라 살아낸 여성이다.

그녀의 문학은 학문적 지식이 아닌 경험의 철학에서 태어났다.



현실 너머의 철학 ― 삶은 밥처럼 돌고 돈다


이 시는 단순한 회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은 돌고 돌아 어디로 가나”는 구절은 인생철학의 핵심이다.

삶의 순환, 덧없음, 그리고 그 속의 수용 속에서

김옥녀는 불교적 윤회의 사유를 생활철학으로 옮겨온다.

인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녀에게 삶은 늘 밥과 같다.

끓었다 식고, 다시 끓으며, 사람을 살린다.

‘강냉이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존재의 은유다.

그 안에는 사랑, 노동, 시간, 그리고 구원의 의미가 함께 있다.



결론 ― 구술로 쓴 문학, 생활로 피운 시학


김옥녀의 〈강냉이 밥 사절 치기〉는 생활 시의 최고점이다.

이 시는 문학이 말보다 먼저 태어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조용하지만 강하게 답한다 — 문학은 말에서 시작된다고.


그녀의 언어는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살아 있다.

그녀의 문장은 단순하지만, 깊다.

그녀의 시는 세련되지 않지만, 진실하다.


결국 김옥녀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문학은 고상한 취미가 아니라 한 세대의 숨결이라는 것을.

그녀의 시는 문학의 어머니로서, 밥처럼 사람을 살린다.

강냉이 밥은 삶의 은유이며,

그 냄새 속에는 한 세대의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이야말로 문학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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