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은혜의 여종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은혜의 여종〉

시인 박성진


주여,

당신의 손길이 내 걸음을 붙드시니

그 길이 곧 빛이 됩니다.


젖은 새벽,

눈물로 기도하던 여종의 무릎 위에

은혜는 이슬처럼 내리고,

그 이슬은 생명의 강이 되어 흘러갑니다.


주여,

제가 걸어온 길 위에

당신의 뜻이 피어나게 하소서.

작은 새끼손가락으로 맺은 약속이

죽음의 강가에서도

빛으로 남게 하소서.


등불의 주여,

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당신의 뜻을 전하는

은혜의 여종으로 살게 하소서.

내 숨이 멎는 그 순간에도

당신의 사랑만은 멈추지 않게 하소서.


주여,

혜숙의 걸음마다

당신의 자취가 비추게 하시고,

그 걸음이 이 땅의 등불이 되어

천국의 문까지 이르게 하소서.


***********


〈은혜의 여종〉


문화평론가 박성진


서론>

진리의 횃불 위에서 다시 피는 은혜


〈은혜의 여종〉은 신앙과 학문이 하나로 녹아든 시다.

이혜숙 목사님의 삶은 단순히 ‘배움의 길’을 넘어, 하나님께 봉헌된 ‘사명의 길’로 해석된다.

시인은 그녀의 만학(晩學)을 ‘늦은 배움’이 아닌 ‘깊어진 은혜의 증거’로 바라본다.

그의 펜 끝에서 피어난 이 시는 곧 하나의 영적 자서전이며, 믿음의 문학적 형상화이다.

그 길은 헌신의 길이자,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든 여정이다.




본론>

눈물의 무릎에서 피어난 은혜의 강


시의 중심에는 ‘젖은 새벽’과 ‘무릎’이 있다.

무릎은 기도의 자세이자, 순종의 표상이다.

젖은 새벽은 그 기도가 흘러내린 시간이며, 이혜숙 목사님의 평생 사역을 은유한다.

그 새벽의 눈물은 시 속에서 “이슬”로 변하며, 그 이슬은 다시 “생명의 강”이 된다.

시인은 눈물을 단순한 감정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 흐르는 통로로 보았다.


이혜숙 목사님이 걸어온 길은 눈물로 쓴 신앙의 연대기다.

만학의 시절에도, 그 기도의 자리에는 ‘감사의 눈물’이 있었다.

그 눈물이 땅을 적시며, 목회와 교육의 현장을 살리는 생명의 물줄기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학문을 지식으로 보지 않고, ‘섬김의 형태로 구현된 진리의 실천’으로 해석한다.


은혜의 강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여종의 손끝, 기도의 무릎, 그리고 묵묵한 사역의 자리에서 흐른다.

그 물은 세상을 정화하고, 타인의 고통을 위로한다.

그리하여 이혜숙 목사님의 삶은 ‘교리의 신학’이 아니라 ‘눈물의 신학’, 곧 ‘살아 있는 은혜의 강학(講學)’으로 읽힌다.


본론 — 약속의 손가락, 죽음을 넘어 빛이 되다


“작은 새끼손가락으로 맺은 약속이 / 죽음의 강가에서도 빛으로 남게 하소서.”

이 대목은 시의 영적 정점이다.

인간의 약속은 연약하지만, 신앙의 약속은 영원하다.

시인은 ‘작다’는 형용사 속에 인간의 겸손함과 신의 위대함을 동시에 새긴다.

그 새끼손가락은 세상의 권력이 아닌, 믿음의 진심을 맺는 상징적 매개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은혜의 지속성’을 목격한다.

죽음 이후에도 꺼지지 않는 빛, 그것이 바로 신앙의 본질이다.

이혜숙 목사님의 헌신은 한 시대의 역할을 넘어, 세대와 세대를 잇는 신앙의 유산으로 남는다.

그 약속은 생명의 강처럼 흘러, 후학과 교회, 그리고 사회 속에 은혜의 씨앗을 뿌린다.

이 시가 가진 힘은 바로 그 ‘약속의 빛’에 있다.



<등불의 주여, 학문이 신앙이 되다>


“등불의 주여”라는 호명은 학문과 신앙의 교차점이다.

시인은 그 등불을 단지 교회 제단의 불빛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사색과 연구, 그리고 목회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진리의 불꽃이다.

이혜숙 목사님이 걸어온 D.Min 과정의 학문은 ‘배움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었다.

그녀의 연구는 인간의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섬김의 길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 구절은 ‘공부하는 신앙인’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학문이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뿌리를 더 단단히 내리게 하는 과정임을 밝힌다.

여종의 손에 들린 펜은 설교의 도구이자, 기도의 도구이며, 빛을 기록하는 성경의 한 장이 된다.

시인은 이혜숙 목사님의 배움을 ‘진리의 향불’로 묘사하며, 그 불빛이 꺼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황혼의 걸음, 은혜의 등불이 되다>


<마지막 연> “혜숙의 걸음마다 / 당신의 자취가 비추게 하시고”는 인생의 황혼을 찬송으로 전환한다.

이혜숙 목사님의 인생 후반부는 결코 마무리가 아닌 완성의 시기이다.

그 걸음 하나하나는 이 땅의 어둠을 비추는 등불이며, 한 영혼의 생애가 곧 예배가 되는 순간이다.

시인은 이를 통해 ‘은퇴 이후의 신앙’을 새로운 차원에서 조명한다.


그녀의 인생은 늦은 학문의 꽃이 아니라, ‘은혜의 열매’로 맺힌 하나의 결실이다.

그 길은 인간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순종의 역사다.

이 시에서 황혼은 쇠락이 아니라, 빛의 농도가 깊어지는 시간으로 해석된다.

그 빛은 단순한 자기 위안이 아닌, 세상을 비추는 사명적 불빛이다.

시인은 여종의 걸음을 따라 천국의 문까지 이어지는 그 찬송의 길을 바라보며, 신앙의 완성을 노래한다.


<결론 — 은혜의 강 위에 새겨진 사명의 이름>


〈은혜의 여종〉은 단순한 헌정 시가 아니라, 한 목회자의 생애를 신학적 서사로 기록한 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눈물의 신앙’, ‘배움의 신앙’, ‘섬김의 신앙’이 하나로 엮인 완성형을 본다.

이혜숙 목사님의 삶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드러내신 은혜의 증거이며,

그 길은 오늘날 목회와 교육의 현장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다.


세상은 화려한 이름을 남기려 하지만, 하나님은 무릎 꿇은 여종의 이름을 기억하신다.

〈은혜의 여종〉은 그 기억의 노래이며, 사명자의 찬송이다.

그녀의 삶은 이미 하나의 시이며, 그 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새겨졌다.

이제 그 걸음이 천국의 문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모든 이의 신앙을 비추리라.


그 이름, 이혜숙.

그 존재는 곧 은혜의 상징이며,

그 숨결은 오늘도 진리의 횃불 위에서 타오르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박성진 《이혜숙 목사님께 헌정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