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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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금관과
인간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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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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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금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나라의 정신이 황금빛으로 응결된 예술이었고,
인간이 하늘을 향해 올린 가장 순결한 기도였다.
경주의 흙 속에서 되살아난 금빛은
천 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도 숨을 쉰다.
그 빛은 부의 상징이 아니라 신성의 언어이며,
권력의 표식이 아니라 믿음의 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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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의 세움 장식은 하늘로 뻗은 나무의 가지를 닮았다.
그 가지는 생명을 상징하고, 사슴뿔은 부활을 뜻한다.
신라인은 이 두 형상에 하늘과 땅,
인간과 신의 조화를 새겨 넣었다.
곡옥과 달재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햇살은 그것을 감싸며 빛으로 노래했다.
그 떨림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기도의 숨결이었고, 영혼의 진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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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에게 금은 단순한 광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금을 하늘의 색으로 여겼다.
은을 섞은 금합금을 사용한 이유는
빛의 질감을 더 깊고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금빛은 찬란하지만 차갑지 않았고,
견고하지만 온기가 있었다.
왕은 그 빛을 머리에 이고 나라를 다스렸으며,
그 빛을 통해 하늘의 뜻을 들었다.
그에게 금관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신의 목소리를 담는 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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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움 장식의 끝에는 작은 고리와 금잎이 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면 금관은 노래했다.
빛과 바람이 어우러져 생명을 품었고,
왕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금관은
하늘의 숨결처럼 미세하게 흔들렸다.
신라인은 그 떨림을 ‘살아 있는 예배’로 보았다.
금관은 정지된 조형물이 아니라
빛과 소리가 머무는 성스러운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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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금관은 찬란하지만 절제되어 있다.
화려하지만 탐욕스럽지 않고,
그 속에는 깊은 침묵과 품격이 깃들어 있다.
신라인은 황금 속에서도 겸손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금관을 부의 장식으로 쓰지 않았고,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전하는 상징으로 이해했다.
그 빛은 인간의 욕망이 아니라
하늘의 질서를 닮은 빛이었다.
그 빛을 머리에 이고 산다는 것은
세속을 넘어선 마음의 중심을 지닌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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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그 금관 앞에 선다.
그 옛날의 장인들은 무엇을 꿈꾸며
그 얇은 금판을 오리고, 구부리고, 달았을까.
그들은 왕의 머리를 장식한 것이 아니라
신의 빛을 인간의 세상에 옮겨 심은 것이었다.
신라의 금관은 지금도 조용히 묻는다.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빛이 머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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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음은 오래된 금속의 반짝임 속에서 들려오지만,
그 뜻은 여전히 새롭다.
그것은 신라의 장인들이 남긴 마지막 시이며,
하늘을 향한 인간의 가장 맑은 목소리다.
신라의 금관은 오늘도 빛난다.
그 빛은 신앙과 예술, 권위와 겸허함이 하나로 어우러진
인간 정신의 최고 형상이다.
하늘의 빛을 머리에 이고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마음이 오늘 우리 안에도 여전히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