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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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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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민정
단풍이 단풍을 닮아갈 때
그 붉음은 시간의 깊이를 안다.
아침마다 빛을 바꾸는 산허리에서
잎 하나가 자기의 마지막을 고백한다.
바람에 흔들리며
저마다의 생을 또박또박 불태우는
그 침묵의 언어는
가을이 남긴 가장 뜨거운 전언이다.
단풍이 단풍을 불러 세우고
빛이 빛을 건네주는 순간,
우리는 저 붉은 잎 위에서
한 생의 온도를 다시 배운다.
〈단풍 단풍〉
문화평론가 박성진
단풍은 언제나 ‘붉음’보다 깊다. 그 붉음 속에는 한 계절의 마지막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 태워 한 번 더 생을 완성하려는 ‘내면의 철학’이 숨어 있다. 김민정 시인의 〈단풍 단풍〉은 단풍이라는 이미지를 자연의 표면에서 읽지 않고, 존재의 가장 깊은 층, 곧 ‘마지막이 비로소 처음을 드러내는 자리’에서 바라본 작품이다. 이 시의 첫 줄부터 독자는 이미 알게 된다. 단풍은 자연의 색이 아니라, 한 존재의 생을 붓으로 그린 붉은 기록이라는 사실을.
시의 첫 행 *“단풍이 단풍을 닮아갈 때”*라는 표현은 단풍이 외부의 무언가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에 있는 시간이 자기 모습을 꺼내 보이는 순간을 말한다.
붉은 잎이 붉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내재된 생의 불꽃이 가장 깊은 결정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보석의 세계로 비유하자면, 원석이 압축과 시간을 거쳐 보석의 빛을 드러내는 것처럼, 단풍의 붉음도 ‘자기 시간의 결정체’다. 그래서 이 단풍은 화려함이 아니라, 정직한 고백이다.
두 번째 연에서 시인은 “저마다의 생을 또박또박 불태우는”이라는 문장으로 단풍의 존재미학을 분명히 한다. ‘불타오르는 색’이 아니라 ‘불태우는 생’이라고 말한 데에 시인의 시학이 숨어 있다. 여기서 단풍은 스스로 타오르는 촛불이 아니라, 자기 생을 남김없이 ‘산화’시키는 한 존재의 수행자다. 이때의 붉음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스스로 꺼뜨리고 스스로 밝히는 불꽃이다. 자기의 마지막을 스스로 점화하는 존재. 이것이 단풍의 진짜 철학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은 흔들림 자체보다 “말하지 않는 언어”를 강조한다.
단풍의 흔들림은 불안이 아니라 마지막을 지키는 ‘태도의 흔들림’이다. 인간이 삶의 끝자락에서 찾아가는 침묵과도 닮았다. 그래서 시인은 바람의 움직임조차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뜨거운 전언”이라는 말로 정적 속에 응축된 생의 온도를 보여준다.
이것은 불꽃보다 뜨겁고 고요보다 깊은, 존재의 마지막 온도다.
세 번째 연의 “단풍이 단풍을 불러 세운다”는 표현은 이 시의 백미다. 단풍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붉음 자체가 서로를 깨우고 서로를 비춘다. 마치 영롱한 보석이 다른 보석을 비추며 서로의 광채를 돋보이게 하듯, 생의 깊이는 생의 깊이를 알아보고, 시간의 진실은 시간의 진실만이 이해한다.
단풍 하나의 붉음이 다른 단풍의 붉음을 깨우는 그 순간, 그 산허리는 하나의 큰 존재가 된다. 단풍이 아니라 생의 합창이며, 색이 아니라 시간의 중첩이다.
마지막 구절의 “한 생의 온도를 다시 배운다”는 말은 이 시가 단풍의 미학을 넘어 인간의 삶으로 돌아오는 통로이다. 인간은 늘 뜨겁게 살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로는 ‘삶의 온도’를 잃고 살아간다. 욕망과 피로 속에서 생의 온도는 쉽게 식어버린다. 그러나 단풍은 말없이 가르친다. 사람의 마지막이 사람의 진짜 온도라는 것,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무엇을 얻는 때가 아니라 무엇을 태워 보내는 때라는 것을.
여기에서 시는 보석의 미학으로 완성된다.
단풍의 붉음은 루비의 광채와 닮았지만, 루비처럼 ‘빛을 받는 보석’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빛을 만드는 내적 불꽃, 그 불꽃이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꺼지지 않는 존재의 의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시의 단풍은 자연의 보석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보석이며 철학이 연마한 보석’이다.
단풍 하나하나가 한 생의 결정이 되었고, 그 결정이 모여 산을 이룰 때 비로소 가을은 완성이 된다.
단풍은 떨어지기 위해 붉어지지만, 그 떨어짐은 소멸이 아니라 귀환이다.
자신이 온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생의 불꽃을 가장 뜨겁게 사용하는 순간이 바로 단풍의 절정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단풍의 미학이 아니라 생의 일생을 깊게 성찰한 철학적 시학이다.
김민정 시인은 이 짧은 시 안에서 ‘자연의 색채미’를 넘어 ‘존재의 본질미’를 끌어올린다. 단풍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결코 외부의 빛이 아니다.
내부를 밝히는 ‘철학적 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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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단풍 단풍〉은 붉음의 시가 절정에 이르면서 생의 온도와 존재의 마지막이 보여주는 ‘시간의 보석학’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 보석은 화려하지 않고, 번쩍이지 않는다. 오직 깊다. 그리고 조용히 타오른다.
단풍을 바라보는 일은 곧 나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일이며, 단풍의 산화는 곧 인간의 성찰이다. 이 시는 그렇게 가을을 넘어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