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정근옥 박사-부활의 기도-카투사를 위하여》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부활의 기도 — 카투사를 위하여〉


정 근 옥 시인


해 질 녘 성당의 종소리 낮게 울려 퍼질 때,

소녀의 마음은 돌처럼 차갑고 무거웠다


젊은 날 청춘의 빛은 너무 쉽게 부서졌다,

참다운 사랑이 아닌 욕망의 손끝에서


추억 속 깊이 박힌 그녀의 서늘한 눈빛,

반달처럼 오랫동안 그의 심장을 따라다녔다


법정의 눈빛 속에 지난날의 과거가 깨어나고,

양심 속 눈물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감옥의 창살 너머로 들려오는 찬송 소리,

속죄의 응어리 풀며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눈 덮인 시베리아 대지 위를 만발로 걸으며,

그녀는 하늘에 묻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둠이 깊은 사막 같은 심연 속에서도,

하느님의 눈빛, 별이 되어 하늘로 타오른다


새벽의 종소리 그 가슴에 다시 울려올 때,

검은 죽음의 빛을 물리치고 부활의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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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기도〉


문화평론가 박성진



서론 — 부서진 영혼이 다시 빛을 얻기까지의 긴 순례


근 옥 시인의 〈부활의 기도〉는 단순한 종교시도 아니고, 누군가의 비극을 기록한 서사도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무너진 영혼이 어떤 과정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긴 여정이다. 시의 중심에 서 있는 카투사는 하나의 인물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얼굴이기도 하다.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에는 청춘이 부서지는 경험, 마음이 갈라지는 경험, 죄책감과 후회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시는 바로 이 깊은 상처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정 근 옥 시인은 인간을 교훈이나 심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 영혼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 드러날 때, 그 영혼을 감싸는 시인의 문장은 차갑지 않고 온기가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부활’이라는 종교적 주제라기보다, 인간의 회복과 치유를 노래하는 삶의 이야기로 읽힌다.



해 질 녘 성당의 종소리 — 모든 부활은 어둠에서 시작된다


시의 첫 장면은 해 질 녘이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간은 늘 인간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여기에 성당의 종소리가 겹치자 분위기는 더욱 고요하고 쓸쓸해진다. 그런데 카투사의 마음은 그 고요함 속에서 “돌처럼 차갑고 무거웠다.” 이 표현은 그녀의 절망이 이미 오래된 것임을 보여준다. 사랑이 깨지고 삶이 무너진 사람의 마음은 무게를 가진다. 그 무게는 누구도 대신 들어주지 못한다.


정 근 옥 시인은 카투사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된 묘사로 독자가 더 깊은 고통을 느끼게 한다. 해 질 녘 종소리는 기도와 평화를 상징하지만, 그녀에게는 겨울바람 같은 절망의 울림으로 들렸을 것이다. 부활의 시작은 언제나 희망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가장 어두운 시간,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부서진 청춘과 가려진 사랑 — 욕망의 그림자


카투사의 청춘은 너무도 쉽게 부서졌다. 사랑을 빙자한 욕망의 손끝에서. 이 연은 많은 독자에게 가장 아프게 다가온다. 누구나 한 번쯤은 순수했던 기쁨이 누군가의 이기심이나 욕망 앞에서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시인은 그 비극을 단 한 줄로 정리한다. “참다운 사랑이 아닌 욕망의 손끝에서.”


이 문장 속엔 울분도, 비난도 없다. 그저 사실을 말할 뿐이다. 시인의 절제미는 카투사가 겪은 깊은 상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때부터 그녀의 시간은 멈춰 있었을 것이다. 청춘은 밝고 가볍지만, 그 빛은 종종 너무 쉽게 깨어진다. 이 시는 바로 그 깨어진 자리에서 삶을 다시 조각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추억 속 눈빛 — 기억은 상처보다 오래 남는다


카투사의 서늘한 눈빛은 그녀를 떠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의 심장을 오래 따라다닌다. 시인의 시선은 여기서 독특하게 움직인다. 피해자인 카투사의 눈빛이 오히려 상대의 죄책감을 따라다닌다는 구조는 인간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뒤틀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달이라는 이미지는 완전하지 않은 빛, 어둠과 희망의 경계를 상징한다. 그녀의 눈빛은 완전한 증오도 아니고, 완전한 슬픔도 아니다. 그 눈빛 속엔 흔들림이 있고, 그 흔들림은 반달처럼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기억은 종종 상처보다 오래 남는다. 그리고 상처가 치유된 뒤에도 ‘기억의 그림자’는 오래도록 마음 위에 머문다.



법정의 순간 — 외부의 심판보다 더 깊은 내면의 심판


법정은 단순히 잘못을 가리는 공간이 아니다. 인간은 법의 심판보다 자기 양심의 심판을 더 깊이 느끼며 산다. 시인은 법정에서 깨어난 것은 ‘과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깨어난 것은 카투사의 내면 깊숙한 죄책감과 상처다.


“양심 속 눈물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이 구절은 이 시의 심장 같은 문장이다. 인간은 자신을 마주할 때 가장 아픈 순간을 경험한다. 카투사는 죄를 씻고 싶어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마침내 거울 앞에 선 듯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오래 홀로 고통을 견뎌왔는지를 알게 된다.



감옥의 창살 너머 들리는 찬송 — 슬픔의 무게가 기도로 변할 때


감옥은 외로움과 고통의 상징이지만, 때로는 인간이 가장 솔직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창살 너머 들려오는 찬송 소리는 그녀의 영혼을 깊게 흔든다. 그 소리는 죄인을 정죄하는 소리가 아니라, 슬픔을 품어주는 소리다. 찬송은 위로이고, 하느님은 벌하는 존재가 아니라 돌아오길 기다리는 존재다.


여기서 카투사가 내뱉는 깊은 한숨은 절망의 소리가 아니다. 오랫동안 묶여 있던 속죄의 응어리가 비로소 풀리기 시작하는 소리다. 인간은 울 때보다 한숨을 쉬는 순간에 더 많은 것을 내려놓는다. 그 한숨 속에는 지난 삶 전체가 담겨 있다.


시베리아 눈 위의 발자국 — 고통의 광야에서 일어나는 독백


시인은 시베리아를 선택했다. 시베리아는 단순한 장소를 넘어서, 인간의 고통과 외로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눈 덮인 대지 위를 맨발로 걷는다는 표현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 영혼의 자백을 상징한다.

그녀는 걷고 또 걷는다.

그 걷는 행위가 바로 기도이고 속죄이다.

그리고 그녀는 묻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절망의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움트는 자리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남은 내면의 불씨가 깨어나며 던지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다.


심연의 사막 — 어둠 속에서만 보이는 별빛


“어둠이 깊은 사막 같은 심연 속에서도

하느님의 눈빛, 별이 되어 하늘로 타오른다”


사막은 절망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별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인간은 가장 낮은 곳에서 빛을 보게 된다. 카투사가 본 별빛은 우주의 빛이 아니라 영혼이 발견하는 빛이다. 그것은 꾸짖는 빛이 아니라, 용서하는 빛이다. 그녀는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의 삶이 완전히 어둠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늘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눈빛이 있었다는 것을.


새벽의 종소리 — 마침내 이루어진 영혼의 부활


새벽은 부활의 시간이다. 이 시는 해 질 녘 종소리로 시작해 새벽 종소리로 끝난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무너짐에서 다시 세움으로 이동한 것이다.

부활의 꽃은 기적처럼 펑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 꽃은 쉼 없이 이어진 고통과 침묵, 자기 성찰의 시간 끝에서 피어난다.

카투사의 부활은 완벽한 삶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걷기 시작한 ‘영혼의 회복’이다.


결론 — 이 시가 우리에게 남기는 한 줄의 진실


〈부활의 기도〉는 한 사람의 죄와 속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언젠가 지나가야 하는 내면의 순례길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은 누구나 부서지며 산다.

하지만 그 부서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꽃이 있다.

그 꽃의 이름이 바로 부활이다.

정 근 옥 시인은 감정의 소란을 피하고, 절제된 언어로 그 길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이 시는 종교를 넘어 인간 전체를 위로하는 시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 종소리는 카투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시를 읽는 모든 이에게 들려온다.

마음을 무너뜨리는 시인의 깊은 시심 속에서

독자의 고민도 함께 타오른다.


정근옥 시인의 본 시는

톨스토이의 부활을 모티브로 쓴 기도문의 시이다

귀족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과거죄로

타락한 카츄사를 다시 만나 깊은 양심이

깨어난다. 그녀의 속죄 여정을 따라가며

자신도 도덕적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 과정이 양심의 부활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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