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정근옥 문학박사 -"카츄샤 2, 평론"》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부활의 기도 카투사를 위하여〉


정 근 옥 시인


해 질 녘 성당의 종소리 낮게 울려 퍼질 때

소녀의 마음은 돌처럼 차갑고 무거웠다


젊은 날 청춘의 빛은 너무 쉽게 부서졌다

참다운 사랑이 아닌 욕망의 손끝에서


추억 속 깊이 박힌 그녀의 서늘한 눈빛

반달처럼 오랫동안 그의 심장을 따라다녔다


법정의 눈빛 속에 지난날의 과거가 깨어나고

양심 속 눈물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감옥의 창살 너머로 들려오는 찬송 소리

속죄의 응어리 풀며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눈 덮인 시베리아 대지 위를 맨발로 걸으며

그녀는 하늘에 묻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둠이 깊은 사막 같은 심연 속에서도

하느님의 눈빛, 별이 되어 하늘로 타오른다


새벽의 종소리 그 가슴에 다시 울려올 때

검은 죽음의 빛을 물리치고 부활의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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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기도〉


문화평론가 박성진




<저녁의 종소리: 러시아적 황혼, 부활의 서막이 열리는 시각>


톨스토이가 《부활》에서 가장 중시한 시간은 언제인가?

바로 저녁, 해가 지는 순간이다.


러시아 문학에서 저녁은

단순한 하루의 끝이 아니다. 영혼의 내밀한 개방을 의미한다.

낮 동안 숨기고 감추고 미루었던 감정들이

빛이 약해질 때 고요히 떠오른다.


정근옥 시인의 시는 이 러시아적 시간감각을 정확히 짚는다.


해 질 녘 종소리는

단지 교회의 신호가 아니라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죄책과 기억을 흔드는 음향적 충격이다.

러시아 정교의 종소리에는

경고와 위로, 심판과 용서, 부름과 회귀가 동시에 들어 있다.

그 소리는 공기를 울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울린다.

카투사의 마음이 돌처럼 식은 채로 남아 있지만

해 질 녘의 종소리가 스며들면서

그 돌 표면에 미세한 금이 생기기 시작한다.

톨스토이 세계에서 부활은

거대한 기적이 아닌 아주 작은 금에서 시작된다.

그 금이 바로 이 시에서의 첫 장면이다.



<돌처럼 굳은 마음: 제정 러시아 하층 여성의 ‘감정의 결빙’>


“돌처럼 차갑고 무거웠다”는 표현은

그냥 비유가 아니라 시대의 기록이다.


러시아 제국 말기의 여성,

특히 카투사 같은 고아이자 하층 출신 여성은

가부장제, 경제적 억압, 귀족 남성의 욕망,

그리고 법적·사회적 방치 속에서

인간의 감정을 결빙시키며 살아야 했다.

감정이 굳는다는 것은

사랑할 능력을 잃는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다.

카투사의 마음이 돌이 된 까닭은

그녀가 냉혹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받은 상처가 너무 깊고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정근옥 시인은

이 ‘돌의 마음’을 통해

러시아 역사 전체의 냉기를 압축한다.

그 냉기 위에서 부활이 꽃피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

이 시의 큰 구조이다.



<욕망의 손끝 러시아 귀족 계급 붕괴의 미묘한 상징>


톨스토이의 《부활》은

네흘류도프라는 귀족 남성의 도덕적 실패에서 출발한다.


정근옥 시인은

그 복잡한 죄의 계보를

“욕망의 손끝”이라는 단 한 이미지로 정교하게 바꾸어 놓았다.


손끝은 항상 러시아 문학에서

신체 중 가장 도덕적으로 중요한 부위였다.


나쁜 손끝은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고,

착한 손끝은 절망을 일으켜 세운다.

네흘류도프의 손끝은

카투사의 청춘을 부서뜨린 최초의 폭력이었고,

그 이후 카투사의 삶 전체가 파문처럼 흔들렸다.


《부활》에서 귀족 계급은

그 책임을 회피하고 부정하고 잊어버린다.

그들이 잊어버린 죄를

정근옥 시인은

“추억 속 깊이 박힌 서늘한 눈빛”으로 되살려 놓는다. 이 눈빛은 잊힌 죄의 부활이며,

네흘류도프의 양심을 다시 깨우는 불씨다.


<반달의 눈빛 꺼지지 않은 영혼의 잔불>


정근옥 시인의 “반달”이라는 표현은

러시아 상징주의와 맞닿아 있다.

러시아 문학에서 반달은

완전한 구원도, 완전한 절망도 아닌

영혼의 경계 상태를 상징한다.

반달은 빛의 절반을 잃었지만

어둠의 완성을 거부한다.


카투사의 눈빛이 반달이라면

그녀의 영혼은 완전히 타락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절망 속에 빠져 있지도 않은 상태다.

그 미묘한 빛이

네흘류도프를 따라다니며

그를 다시 인간으로 만드는 힘이 된다.

이 반달은 부활의 첫 번째 빛이다.



<법정:외적 심판이 아닌 내적 심판이 시작되는 공간>


톨스토이는 러시아 제국의 법정을

정의가 실종된 공간으로 그린다.

서류는 방대하지만 진실은 실종되어 있으며

법률은 존재하지만 법의 정신은 죽어 있다.

정근옥 시인은 이 법정의 부패를

“양심 속 눈물이 거울이 되었다”로 바꾸어놓는다.


국가가 인간을 심판할 수 없다면

인간은 스스로를 심판해야 한다.

이 심판이 바로 부활의 시작이다.

네흘류도프가 거울을 보듯

카투사도 자신의 상처를 직면한다.

이 거울은 국가의 법이 아닌 영혼의 법이 작동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감옥의 찬송 러시아 정교의 은총이 스며드는 균열>


러시아 문학에서 감옥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혼의 회복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베리아 유형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톨스토이는 감옥의 민중 속에서

인간 본연의 선함을 보았다.


정근옥 시인의 시에서

“창살 너머 들려오는 찬송”은

바로 이 정교회의 은총을 상징한다.

찬송은 자유를 주지 못하지만

구원을 향한 내면의 문을 연다.

카투사의 부활은 법도, 제도도 아닌

이 작은 찬송의 울림에서 시작된다.


<깊은 한숨 러시아 영혼의 가장 깊은 표현>


러시아 문학에서

한숨은 눈물보다 더 깊은 감정이다.

눈물은 밖으로 흐르지만

한숨은 내면에서 피어난다.

카투사의 한숨은

죄의 무게를 이겨내려는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이며

동시에 부활 직전의 가장 맑은 호흡이다.


정근옥 시인은

이 한숨을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정화의 과정,

영혼이 다시 태어나기 위한

침묵 속의 호흡으로 그린다.


<시베리아 설원 죄인의 무덤이자 성자의 고


시베리아는 러시아 문학에서

단순한 유형지가 아니라

영혼의 도가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에서 부활했고,

톨스토이는 시베리아를

러시아 민중의 뿌리를 품은 땅으로 묘사했다.

정근옥 시인의

“만발로 걸으며”는

벌을 받는 걸음이 아니라

순례자의 걸음이다.

설원은 인간의 거짓을 모두 벗겨내고

진실만 남기는

거대한 정화의 공간이다.


<사랑의 질문 절망 속에서 다시 던져지는 인간의 본질>


카투사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순간,

부활은 이미 시작되었다.

0 사랑을 묻는다는 것은

아직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사랑을 묻는 영혼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카투사의 이 질문은

그녀가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순간이며

그녀의 영혼이 새롭게 깨어난 순간이다.


<어둠의 심연 러시아 영혼이 가장 깊어지는 자리>


러시아의 어둠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빛을 준비하는 전(前) 빛의 상태다.

카투사가 빠진 심연은

그녀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이며

동시에 다시 올라가기 위한

가장 낮은 발판이다.

심연에서 별이 타오른다는 것은

부활의 빛이

바로 그 밑바닥에서 피어난다는 의미다.


<별의 상징 러시아 정교의 빛, 톨스토이의 양심>


러시아 정교에서 별은

신의 눈빛이자

영혼을 인도하는 불멸의 빛이다.

정근옥 시인은

“별이 되어 타오른다”로

카투사의 영혼이

하느님의 시선과 연결되는 순간을 그린다.

이 별은

죄에서 벗어났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기 진실을 직면한 인간에게만 켜지는 빛이다.


<새벽의 종소리 부활의 완전한 도래>


저녁의 종소리가 회개의 시작이라면

새벽의 종소리는

부활의 완성이다.

러시아 정교에서 새벽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는 시간”이다.

카투사의 가슴에 울린 새벽 종소리는

그녀의 영혼이 새 생명을 얻었음을 알리는

가장 조용한 선언이다.

그녀는

“죽음의 빛”을 물리치고

“부활의 꽃”을 피운다.

이 꽃은

고통과 죄책을 통과한 영혼에게만 피어나는

역설적 생명의 꽃이다.



<결론>

부활은 인간이 인간에게 돌아가는 여정이다


정근옥 시인의 〈부활의 기도〉는

톨스토이의 《부활》을 단순 인용하지 않는다.

그 정신을 다시 불러와

카투사라는 이름을 빌려

인간 존재의 영혼사(靈魂史)를 새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부활은 기적이 아니라 과정이며

신의 명령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진실이 깨어나는 시간이 되었다.

카투사의 부활의 과정을 잘 보여준 사례의

시적 선언문이다.


러시아 톨스토이 부활의 문학을 깊이 통찰하지 않고서는 부활의 기도 카투사를 위한 시를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톨스토이 부활의 정수 카투사 시를 위하여 애써주신 정 근 옥 시인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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