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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박진우 시인-이별 아닌 이별》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이별 아닌 이별〉


박진우 시인


나와 내가 이별한 그는

가물거리는 등불 아래

여전히 숨을 쉰다

폐는 바람을 삼키고

심장은 고요히

초침의 미세한 떨림만 남긴다

그 영혼의 창은

낡은 필름처럼 빛을 잃어가지만

상실의 깊은 골짜기 속에도

봄과 여름은

어딘가 숨어 있다


기억을 한 줌씩

땅에 묻는 이유도 모른 채

조용히 치르는 장례처럼

살아 있음이 껍데기뿐이어도

잃은 것이 전부는 아님을

가끔 떠오르는

잔물결 같은 미소와 눈물이

섞여 번지는 순간

낯설지 않은 맑은 눈으로

세상을 처음 보듯

그를 바라본다


바람은 귓가를 스치며

아무 말 없이 속삭인다

이별 아닌 이별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걷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흐려질 뿐이라 한다

그 소리가 벽에 닿아

나에게로 되돌아오고

그의 침묵은

나지막한 죽음의 언어가 된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이마는 아직 햇살을 기억하지만

죽음이라 부르기 어려운 떠남은

영혼이 비어버린

서글픈 빈자리다


“이것을 살아온 세월 속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집을 나가면

찾을 수 있지만

이것이 집을 떠나면

다시는 찾을 수 없다 합니다

혹여 찾게 해 주신다면

제 남은 생을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


〈이별 아닌 이별〉


치매라는 현재형 비극을 비로소 ‘말이 되는 언어’로 옮겨 놓은 시

문화평론가 박성진



서론> 이별이라는 말이 붙잡지 못하는 비극


치매를 다룬 많은 글이 있다.

하지만 그 글들은 대개 ‘기억을 잃는다’ 거나 ‘노년의 질병’ 같은 설명에 머문다.

설명은 할 수 있지만, 치매가 만드는 삶의 균열과 존재의 붕괴를 설명만으로는 담지 못한다.

박진우 시인의 〈이별 아닌 이별〉은

설명이 아니라 심장을 조용히 건드리는 체험의 언어다.

가족이 치매 속에서 하루하루 겪는 ‘정말 말하기 어려운 감정’을

억지로 울리지도 않고, 차갑게 멀어지지도 않은 채

가장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무엇보다 시 속 고백처럼,

“이 말은 절실한 현재형이 된다.”


치매는 어제의 상처가 아니라,

오늘 누군가의 방 안에서 여전히 일어나는

지금 이 순간의 사건이다.


존재가 흔들리는 장면, “나와 내가 이별한 그는”


이 첫 문장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치매는 타인과의 이별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이별’로 시작된다.

몸은 살아 있다.

심장은 뛰고, 폐는 숨을 들이쉰다.

그러나

‘그 영혼의 창’이

낡은 필름처럼 희미해져 간다.

치매는 죽음도 아니고 삶도 아닌,

그 사이에 떠 있는 ‘서글픈 상태’를 만든다.

이 시는 바로 그 경계의 풍경을 포착한다.

그리고 시인은 말한다.

“상실의 깊은 골짜기 속에도 봄과 여름은 숨어 있다.”


치매는 모든 것을 빼앗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작은 온기,

표정 속 반짝임,

손의 따스함 같은 것들.

시인은 절망만을 보지 않고

그 “숨은 봄과 여름”을 확인한다.

이것이 이 시가 가진 인간적 품격이다.


기억을 묻는 장례 ---치매 가족의 무의식적 애도


두 번째 흐름에서 시인은

기억을 잃어 가는 장면을

‘작은 장례식’으로 그린다.

기억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조금씩 상실을 겪고

조금씩 이별을 경험하는 사람의 마음.

그러나 치매는

단지 비극만을 남기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가 미소와 눈물로 보여주는 아주 작은 반응 하나가

마치 세상을 처음 보는 아이의 눈빛처럼 깨끗해 보일 때가 있다.

그 순간,

남아 있는 존재의 잔결이 있다.

비록 기억은 떠났어도,

인간의 가장 깊은 감각과 사랑의 흔적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흐릿해지는 존재 —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흐려지는 것’


시인은 말한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흐려질 뿐”

치매는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희미한 흔적이 남았다 사라지고,

또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시인은 바람의 목소리를 빌려 말한다.

이별 속에서도 우리는 걷고 있다고.

치매는 존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윤곽이 흐려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흐림 속에서

“그의 침묵은 죽음의 언어가 된다.”

이 말은 냉혹하지만 진실하다.

이제 말 대신 침묵이 남아 있고,

그 침묵 속에서

미약한 생의 흔적이 꺼지지 않으려는 마지막 기운이 느껴진다.


살아 있음과 죽음 사이, 손의 온기와 영혼의 빈자리


손은 따뜻하다.

이마는 햇살을 기억한다.

그러나 영혼의 자리가 비어 있다.

그 빈자리가 가족에게 얼마나 큰 슬픔이 되는지

시인은 말없이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치매가 만드는

‘죽지도 않았는데 죽음을 경험하는’

가장 잔인한 현실이다.


마지막 절규 치매 가족이 실제로 하는 말


마지막 인용문은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현실의 절규다.

“사람이 집을 나가면

찾을 수 있지만

이것이 집을 떠나면

찾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이것”은

기억, 존재, 정체성, 마음, 이름, 나의 역사다.

그리고 시인은 이 말을 덧붙인다.

“제 남은 생을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이것은 상징이 아니다.

수많은 치매 가족이

오늘도 절박하게 이야기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 문장은

지금도 숨 쉬는 현실이다.

이 말은 절실한 현재형이다.


결론 — 치매는 사라짐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남음


〈이별 아닌 이별〉은

치매를 단순히 비극으로 그리지 않는다.

흐려지고 사라지는 와중에도 남아 있는 것들,

손의 온기, 눈빛의 잔결,

아주 작은 미소와 한숨 사이에 자리한 마지막 인간성. 이 시는

‘이별 아닌 이별’을 겪는 이들에게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말을 건다.

그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박진우 시인의 이 시는

치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깊은 증언의 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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