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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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년
---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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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情 이인애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통증과
언어를 빼앗긴 겨레의 절박함이란
굴욕. 치욕. 능욕의 삼중주가
폐부를 찌르는 암흑기의 고뇌
일제강점기, 시대의 비극에 맞서
몸으로 저항한 고결한 님이시여
님이 그토록 염원한 조국의 독립
해방을 불과 여섯 달 앞두고
천운을 다하지 못한 채
안타까이 꺾인 생때같은 목숨
어찌 눈 인들 감을 수 있을까요
아흐, 광복을 고작 반년 남기고서
우리말을 접근금지 당한 채
눈물로 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대한국민의 가슴속을 휘젓는 서시
슬픈 역사 비추는 참회록 구리거울
후쿠오카 창살 사이로 별을 그리다
스스로 밝게 빛나는 별이 된 이름
칠천만 동포의 마음과 마음속에
영원불멸, 숭고한 젊음의 표상으로
28세 청년으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이르러
눈물 나게 눈물 나게 그리운 별 하나
오늘 밤 그 별이 바람에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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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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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혼과 역사적 사유, 별빛의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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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별빛으로 남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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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짧은 생애와 단 한 권의 시집으로 한국 근대문학사의 상징이 되었다. 그의 삶은 짧았으나, 그가 남긴 언어는 깊고 장엄하다. 이인애 시인은 그를 '영원한 청년'이라 부른다. 이는 단순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비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윤동주는 오늘날까지 청년적 기개, 순수, 열망, 그리고 불굴의 윤리를 잃지 않은 존재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별빛’이라는 은유는 바로 그 영원성을 집약한다. 시인은 꺼지지 않는 등불, 사라지지 않는 별, 영원히 청춘의 언덕 위에 서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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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민족의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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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첫머리에서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통증'이 언급된다. 이는 윤동주 문학의 출발점이다. 그는 망명지 만주 명동촌에서 태어나, 조국 상실을 출생의 조건으로 짊어졌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웃음을 배우기 전, 그는 이미 ‘민족’이라는 단어를 뼈에 새기며 자랐다. 일제의 폭압은 단순한 영토 상실이 아니라, 언어와 정신, 역사와 정체성의 강탈이었다. 윤동주가 느낀 통증은 개인의 고독이 아닌, 집단적 상흔이었다. 시가 그의 생애에서 필연이 된 것은 바로 이 ‘민족적 상처’를 기록하고 치유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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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빼앗긴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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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인은 '언어를 빼앗긴 겨레의 절박함'이라 했다. 윤동주는 일본어만 강요되던 교실에서, 조국 어를 몰래 쓰고 몰래 기록하며 우리말의 가치를 지켰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한 민족의 정체성과 영혼이다. 언어를 잃으면 정신도 소멸한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조차 일본어로 시를 쓰지 않았다. 끝내 우리말을 고수했고, 그 고집은 저항이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한국어로 남긴 최후의 기념비, 민족어를 지키기 위한 불멸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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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주의 고통과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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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 치욕, 능욕의 삼중주'라는 표현은 일제가 가한 억압의 다층적 성격을 압축한다. 굴욕은 국권 상실, 치욕은 강압적 동화정책, 능욕은 인간적 존엄의 파괴다. 윤동주는 이 고통을 육체와 영혼으로 체험했다. 그러나 그는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다. 대신 시를 무기로 삼았다. 시 속의 언어는 부드러웠으나, 그 속에 담긴 저항의 의지는 강철 같았다. 이인애 시인의 시는 그 저항을 다시 소환하며, ‘몸으로 저항한 고결한 님’이라는 구절로 윤동주를 불멸의 저항 시인으로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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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반년 앞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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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죽음은 민족사와 절묘하게 엇갈린다. 해방을 불과 여섯 달 앞두고, 그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여덟 나이로 생을 마쳤다. ‘천운을 다하지 못한 채 꺾인 목숨’이라는 구절은 이 참담한 아이러니를 상징한다. 만약 그가 광복을 맞았다면, 한국 문학사는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부재가 윤동주를 영원히 현재에 남게 했다. 그는 미완의 시인으로 죽었으나, 영원의 시인으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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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구리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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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은 윤동주의 내면을 가장 깊이 드러내는 시다. 그는 ‘생활의 지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을 뉘우쳤다. 그러나 이 참회는 단순한 개인의 양심 고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족 전체가 지닌 죄책감과 절망을 반영한 구리거울이었다. 거울은 자신을 비추지만, 그 속에는 시대와 민족이 함께 비친다. 윤동주는 개인의 회개를 통해 공동체의 죄를 비추고, 스스로를 희생양처럼 드러내며 민족의 양심을 대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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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 너머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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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형무소의 차가운 창살 너머, 윤동주는 별을 올려다보았다. 감옥은 인간을 가둘 수 있지만, 별빛은 가둘 수 없다. 별은 자유였다. 별은 영원이었다. 육체가 쇠사슬에 묶일수록, 영혼은 더욱 높이 날았다. 윤동주는 별을 바라보며 별이 되었고, 이제 그는 우리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 하나가 되었다. 이 장면은 역사적 사실이자 신화적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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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의 영원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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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는 그의 시학적 자서전이자 윤리적 선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기도는, 시대의 비극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존엄을 드러낸다. 윤동주는 민족적 저항을 노래했으면서도, 먼저 자기 내면의 도덕을 지키려 했다. 이 겸허한 태도야말로 그의 시가 영원히 가슴을 울리는 까닭이다. 이인애 시인이 말한 '가슴속을 휘젓는 서시'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민족적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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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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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고시집 제목은 단순한 네 단어가 아니라, 세계 해석의 틀이다. 하늘은 초월과 신, 바람은 역사와 운명, 별은 이상과 영원, 시는 기록과 증언이다. 이 네 요소가 결합해 윤동주의 시적 우주를 이루었다. 이 조합은 한국 시학의 한 정점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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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고뇌와 인간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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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는 민족적 울분에 뿌리를 두었지만, 인간 보편의 고독을 껴안았다. 그는 단순한 ‘민족시인’이 아니라, ‘보편시인’이었다. 그의 시를 읽는 외국인들 또한 인간의 고통과 희망을 함께 느낀다. 민족을 넘어 인류 전체의 심연을 건드렸기에, 윤동주는 세계적 시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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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문학의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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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문학은 기독교적 신앙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그의 시는 고백 시이자 기도 시였다. 하늘은 하나님, 별은 성도의 은유, 바람은 성령의 표징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교리적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신앙은 곧 윤리였고, 문학은 신앙의 언어였다. 이 종교적 내면성이 윤동주의 시를 더욱 보편적이고 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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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성의 영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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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스물일곱에서 멈췄다. 그러나 바로 그 멈춤이 청년성을 영원히 보존했다. 청년은 미완의 가능성, 순결, 열정을 상징한다. 죽음은 청년성을 고정시켰고, 그로 인해 그는 ‘영원한 청년’으로 남았다. 세월이 흘러도 윤동주는 늙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청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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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의 은유와 현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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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은 그의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별은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 어둠 속의 희망, 그리고 영원성의 상징이다. 이인애 시가 '오늘 밤 그 별이 바람에 스칩니다'라 한 것은, 윤동주의 별빛이 여전히 우리의 삶을 비추고 있음을 뜻한다. 별빛은 과거의 은유가 아니라 현재의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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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의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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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은 윤동주의 부재 속에서 도래했다. 그는 해방을 보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광복의 기억과 더 강하게 결합했다. 민족은 그의 부재를 통해 그를 더욱 깊이 기억했다. 그는 살아남은 자들보다 더 강렬한 존재가 되었고, 역사적 상징으로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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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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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그의 시는 상징과 서정, 종교와 민족, 개인과 집단을 결합했다. 그는 ‘맑고 슬픈 서정’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한국 시의 기원을 열었다. 후대 시인들이 그를 ‘별빛 시인’이라 부르며 자신들의 정신적 뿌리로 삼은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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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윤리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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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윤동주의 시는 단순한 추모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살아 있는 윤리적 지침이다. 부패와 혼돈이 만연한 시대에,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향한 그의 기도는 더욱 절실하다. 그는 과거의 시인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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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인문학>
윤동주의 별빛은 단순한 시적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세계, 역사와 신앙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상징이다.
별빛은 시인의 내면에서 출발했으나,
민족의 영혼과 인류의 미래까지 밝힌다.
윤동주는 별빛 인문학의 시조로 불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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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영원한 청년 윤동주!
결국 윤동주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
그는 스물일곱 청년으로 남아, 별빛이 되어
세대를 넘어 비춘다.
이인애 시인이 부른 영원한 청년은 역사적
시인의 호칭이자, 오늘의 독자에게 전하는
다짐이다. 오늘 밤 우리가 올려다보는
별빛은 단순한 천체의 빛이 아니라 윤동주의
영혼이다. 그는 민족과 인류의 영원한
청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