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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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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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희
영원한 것은 없다기에
사랑스러운 너의 모습
시간 속에 가두어 놓으니,
때로는 창백하고
가끔은 본연의 아름다움
추억처럼 다가와
향기를 뿜고
잊었던 순간을 소환한다
축하와 기쁨 속에
안겨진 꽃다발
지난해의 설렘과 영광이
신경통 증상처럼
전해져 온다
작년, 각종 상과 꽃다발이
주어진 문학잔치 송년회
마른 꽃 한 다발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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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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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순간, 오래된 꽃다발을 들여다볼 때 특유의 말 없는 정적이 먼저 다가온다.
이미 생기를 잃었지만 형태만은 남아 있는 그 마른 꽃이, 오히려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는 바로 그 조용한 시간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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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에서 촉발된 시인의 감정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 가깝다. 사랑스러웠던 모습을 ‘시간 속에 가두어 놓는다’는 표현은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한 마음의 몸짓이다. 흔들리는 삶의 결을 붙잡기 위해 추억을 고정시키려는 시인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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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꽃은 생기를 잃어 창백하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본래의 선명한 모습이 되살아난다. 아름다움은 사라진 듯하지만, 추억 속에서는 오히려 향기를 뿜으며 잊었던 순간들을 다시 깨워낸다. 여기서 꽃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시간의 저장고이며 기억을 환기하는 매개체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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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대목은 기쁨이 기쁨으로만 되살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경통처럼 전해져 온다”는 표현에는 묘한 솔직함이 깃들어 있다. 한때 영광이던 순간조차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통증으로 변하기도 한다. 기쁨과 통증이 묘하게 겹쳐진 이 표현은 시의 진폭을 넓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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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문학잔치의 축하와 꽃다발, 그 환한 밤이 지나고 남은 것은 말없이 말하는 마른 꽃 한 다발이다.
시인은 그 꽃을 내려다보지 않는다.
오히려 꽃이 시인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의 자세다. 화사했던 순간이 시간이 흐르며 조용한 성찰의 공간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시의 힘은 과장 없는 담담함에 있다. 화려했던 순간을 억지로 붙잡지도 않고, 그렇다고 쉽게 보내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시간의 흐름을, 마른 꽃이라는 상징에 가만히 걸어두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시의 여운은 길고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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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른 꽃은 시인의 지난 시간과 마음을 담은 또 하나의 거울이다.
시든 것은 꽃이지만, 그 꽃을 바라보는 마음은 오히려 더 살아 움직인다. 시간이 가져간 것과 남겨둔 것의 경계가 이 시에서 아름답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