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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양귀희 시인-흰머리》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흰머리〉

양귀희 시인


벌써 육십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

까만

머리카락

사이사이

요리조리

살펴서-

염색할까

말까.


겨우 잡은

하얀 색깔에

머리카락

한 올


하나는

십원이요

두 개에

이십 원이요


고사리

손으로

흰 머리카락

뽑았던

부모님의

머리


내 머리

흰 머리카락

즐비한 나이….

바라보는 예순

날 만들어도

세월이

너무 빠르다.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네!

옛날 옛적

어머님의

모습으로


*************


문화평론가 박성진


<첫 장>

작은 사물에서 시작되는 시간의 서사


이 시는 ‘흰머리’라는 사소한 존재에서 출발하지만,

그 사소함이 곧 시인의 생애 전체를 데려오는 통로가 된다.

흰머리는 단순한 신체 변화가 아니라

그동안의 시간, 지나온 삶, 잃은 것과 얻은 것을

고요하게 보여주는 기호가 된다.

작고 평범한 사물 하나가

인생 전체의 서사로 확장되는 방식이

이 시의 가장 큰 미학적 힘이다.


<육십을 바라보는 태도의 담백함>


첫 연의 “벌써 육십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어떤 장식도, 비애도 없이 담담하게 쓰였다.

이 담백함은 오히려 시인의 내면을 더 진실하게 드러낸다.

자기 나이를 인정하는 태도는

나이 듦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삶을 관조하는 눈이다.

그 시선 안에는

젊음과 노년을 동시에 끌어안으려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셋째 장 — ‘염색할까 말까’의 일상 속 갈등


염색을 할까 말까 하는 망설임은

겉으로는 가벼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나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잘 담고 있다.

아직 젊음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

자연스러운 흐름을 인정하고 싶은 마음

이 두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순간은

모든 사람의 경험과 닮아 있다.

시인은 그 흔들림을 소리 없이 건져 올린다.



<가격표처럼 등장하는 ‘십 원, 이십 원’의 기억>


“하나는 십원이요 / 두 개에 이십 원이요”

이 표현이 등장하는 순간,

시의 분위기는 갑자기 따뜻해진다.

이 가격표는

아이였던 시인이 흰머리를 뽑아드리며

장난처럼 불렀던 말이다.

그 안에는

부모의 머리카락에 손을 얹던 어린 시절의

명랑하고 소박한 사랑이 들어 있다.

짧고 가벼운 표현이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은 깊다.



< 고사리손과 부모의 머리, 세대의 교차점>


“고사리 손으로 / 흰 머리카락 뽑았던 / 부모님의 머리”

이 부분은 시 전체 중 가장 울림이 큰 장면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지금의 현실이

한 줄에서 맞부딪힌다.

어릴 때 부모님의 흰머리를 보던 내가

이제는 자신의 흰머리를 세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세월의 흐름은 직선이 아니라

되돌아오는 순환이라는 것을

시인은 조용히 보여준다.


< “즐비한 나이”라고 부르는 용기>


흰머리가 ‘즐비하다’는 표현은

나이 듦을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는 태도에서 나온다.

흰머리 한 올 한 올이

삶의 켜를 이루고,

경험과 감정이 줄을 맞추듯 쌓였다는 뜻이 된다.

시인은 자신의 현 상태를

애써 꾸미거나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 솔직함이 시의 격을 높인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말의 진심>


이 문장은 누구나 한 번쯤 말해보았지만

이 시에서는 특별한 울림을 갖는다.

그 속에는

후회와 회상이 뒤섞여 있지만,

무겁지 않다.

살아온 시간이 충분했고,

또 그만큼 지나갔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자기 인생에 정직한 사람만이

이런 결론을 말할 수 있다.


<거울 속에서 만나는 옛 어머니>


시의 마지막은 깊고 조용한 감정으로 마무리된다.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떠올린다는 것은

외모의 닮음이 아니라

세월의 닮음이다.

삶의 결이 겹쳐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조금씩 부모를 닮아간다.

그 닮아감 속에는

사랑도, 그리움도, 시간이 남긴 상처도 다 들어 있다.



<절제된 언어, 과장 없는 감정>


이 시의 언어는 모두 짧고 간결하다.

길고 화려한 설명 없이

짧은 행과 숨 같은 문장들로

감정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절제 속에서 묻어 나오는 감정은

더 강하고 더 오래 남는다.

이 시는 그런 강한 울림을 갖고 있다.


<이 시가 남기는 생의 의미>


〈흰머리〉는

나이 듦을 쇠퇴가 아니라

삶의 차곡차곡

쌓이는 완성으로 바라본다.

흰머리 하나하나에 담긴 시간,

그 시간과 연결된 부모의 얼굴,

거울 앞에 앉아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다.

모든 것이 한 줄 한 줄에 걸쳐 있다.

양귀희 시인의 시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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