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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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하루 15달러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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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낡은 집에 살고 20년 된 트럭을 직접 몰며, 존재를 나누는 마지막 카우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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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95세의 사내, 아직도 ‘삶’을 연출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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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의 속도를 늦추고, 몸의 틀어짐을 달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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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다르다.
그는 95세의 나이에도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 여전히 능동적이다.
그의 하루는 느리고 단조롭지만, 그 안에는
늙어가는 인간의 비애가 아니라 시간을 존중하는 품격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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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의 그는 여전히 일어날 때 침대 기둥을 붙잡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도 않는다.
사람들의 조언이나 보호를 구하기도 않는다.
그는 자신이 아직도 “쓰러지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쓰러지지 않고 살아가는 행동 자체로 증명한다.
그의 삶은 한 편의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다.
총소리도, 말발굽 소리도 없는 노년의 고요 속에서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장면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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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
이스트우드는 ‘늙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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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 한 채 — 그는 왜 화려한 저택을 떠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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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스타들이 사는 동네를 떠올리면
넓은 정원, 흰 대리석 현관, 자동 게이트, 카펫까지 깔린 드레스룸이 상상된다.
그러나 이스트우드의 집은 그 모든 상징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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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는 집은 30년 넘은 목조 주택이다.
특별히 관리가 잘된 것도 아니고,
비가 오면 나무 틈에서 가벼운 삐걱거림이 들릴 정도의 평범한 집이다.
마당엔 오래된 나무들이 자라 있고,
그가 매일 타고 다니는 트럭의 바퀴 자국이 흙길 위에 깊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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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말했다.
“집은 나를 자랑하는 공간이 아니야.
그냥 방 하나만 따뜻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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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이스트우드의 노년 철학을 그대로 드러낸다.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은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대저택을 떠난 뒤
지금의 소박한 집에서 훨씬 더 편안하다고 말한다.
아무도 그의 집에 기대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과시할 필요가 없다.
아무의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이 집은 나를 오래 살게 해주는 집”이라며
잔잔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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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된 픽업트럭 — 95세에도 그는 직접 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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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가
20년 넘은 오래된 트럭을 직접 운전한다는 사실은
할리우드를 아는 사람들에겐 거의 믿기 어려운 풍경이다.
그는 기사나 수행원을 두지 않는다.
촬영장에 갈 때도, 시장에 갈 때도,
그는 늘 그 오래된 트럭의 운전석에 앉는다.
사람들은 그 차량을 보고 말한다.
“저건 이제 박물관에나 들어갈 차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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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스트우드는 그런 말에 웃는다.
“나는 이 트럭이 매끈하지 않아서 좋아.
나처럼 조금씩 삐걱거리며 오래 살아왔으니까.”
그에게 트럭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세월을 함께 견뎌온 친구이자
자유의 마지막 상징이다.
그는 느린 속도로 도로를 달리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조율한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그의 일상 속에서
오래된 트럭은
그의 스스로의 리듬을 회복하는 공간이다.
95세에도 그대로 운전대를 잡는다는 사실은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그의 조용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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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달러의 이유 — 절제의 미학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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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하루 지출은 15달러.
할리우드에서 바라보면 거의 초현실적인 검소함이다.
그는 사치를 경멸하지는 않는다.
단지 본인이 그런 삶을 원하지 않을 뿐이다.
그는 말한다.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더 이상 물건이 필요 없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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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의 이 말은 너무나 솔직하다.
젊은 시절에는 소유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소유가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의 하루는 단순하다.
아침에 직접 만든 오트밀
점심에 샌드위치나 수프 한 그릇
저녁에 가벼운 파스타
옷은 몇 년째 같은 스타일
새 가구는 거의 사지 않는다
불필요한 전자제품도 없다
그래서 그의 지출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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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절제는 가난이 아니라 자유의 형식이다.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기 위해
무엇도 많이 갖지 않으려 한다.
그는 욕망을 줄임으로써
시간을 풍부하게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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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영광보다 더 오래 간 ‘고독의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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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우드가 이렇게 단순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젊은 시절부터
고독과 침묵을 다루는 능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말보다 침묵이 많은 배우”라고 불렀다.
그는 실제로도 말이 적다.
그러나 그 침묵은 비어 있지 않고,
내면의 힘이 쌓여 있는 침묵이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사람이 많아지는 것보다
사람이 떠나는 일에 익숙해졌다.
성이 아닌 골짜기 같은 성격 덕분에
자신의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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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의 현재,
그는 그 고독의 힘으로
세상과 과도하게 엮이지 않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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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라는 두 번째 인생 — 70대, 80대, 90대까지 창작하는 힘
대부분의 감독들은
60~70대가 되면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스트우드는
70대에 명작을 만들었고,
80대에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며,
90대에도 여전히 현장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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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의 지금,
그는 여전히 새로운 시나리오를 읽는다.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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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 멈추는 순간, 나는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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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영화는
직업이 아니라 삶을 유지하는 장치이다.
현장에서 감독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는 순간
그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더 깊게 느낀다.
노년의 창작은 고통이 아니다.
오히려 회복의 리듬이 된다.
그래서 그는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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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산 기부 — 남기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 나누는 삶 이스트우드는 재산을
“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돈은
인생을 장식하는 장신구가 아니라
흘러야 하는 물과 같다.
그래서 그는
수십 년 동안 조용히 기부해 왔다.
가난한 학생들의 장학금
노숙인 지원 환경보호 활동
영화예술 보호 프로젝트
그리고 최근에는
본인의 재산 대부분을
생전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즉, 죽기 전에 나누는 존재산 기부를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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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우드는 말한다.
“돈은 금고에 있으면 죽고,
사람이 쓰면 살아.”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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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관계 — 약속을 지키는 사내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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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우드를 오래 본 사람들은
그를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이스트우드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늦지 않고,
불필요한 화도 내지 않고,
배우에게 과한 요구도 하지 않는다.
95세가 된 지금도 그는
약속한 시간에 직접 운전해서 나타난다.
오래된 트럭에서 내리는 그의 모습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걸어온 한 인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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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있어서도 그는 단순하다.
마음에 없으면 말하지 않는다.
마음에 있으면 끝까지 지킨다.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다.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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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간적 품격은
할리우드에서 더 크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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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의 하루 루틴 — 단순함 속의 정신적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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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이스트우드의 하루는
실제로 보면 놀랄 만큼 질서가 있다.
아침은 6시 전후로 일어나고,
가벼운 운동을 한다.
스트레칭과 산책이 전부지만
그는 그것들을 논리보다 감각으로 한다.
그의 하루 일정은
거의 변함이 없다.
아침: 직접 끓인 오트밀
오전: 책 읽기 혹은 시나리오 검토
오후: 트럭 운전 후 간단한 외출
저녁: 조용한 식사, 재즈 음악
밤: 피아노 연주, 하루의 정리
그리고 그는 잠들기 전에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은 쓸데없는 욕심 없이 살았는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
그의 삶 전체가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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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늙지 않는 자의 정신: “나는 아직 끝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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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많은 것이 끝나야 할 나이지만
이스트우드는
“나는 아직 끝내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는 허세가 없다.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끝까지 정직하게 사용하겠다는 의지다.
낡은 집에 살고,
20년 된 트럭을 몰고,
하루 15달러를 쓰며,
재산을 생전에 나누고,
95세의 몸으로도 여전히 배우고,
또한 조용히 삶으로부터 후회 없는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