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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권희수 시인-마음먹은 대로》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마음먹은 대로


권희수 시인


마음먹은 대로


이리저리

모래성 같은

내적 갈등이

수두룩


여기저기

잣대를

들이대어도


고민고민

들었다 놨다

망설여도


일단 시작이

반 마음먹은

대로 풍덩

빠지는 거야


************


마음먹은 대로


문화평론가 박성진



<첫 장> ‘마음’이라는 실체 없는 실체를 붙잡는 시인의 태도


권희수 시인의 이 시는 거대한 철학을 말하는 대신, 삶을 움직이는 가장 일상적이고도 근본적인 힘인 ‘마음먹기’를 붙든다.

마음은 형태가 없지만, 인간의 행동과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시인은 이 모호한 ‘마음’의 실체를 아주 간결한 언어로 붙잡아낸다.


짧은 행마다 멈추어 선 호흡은 마음의 움직임을 쫓는 리듬을 만들어내고,

독자는 시인의 숨결을 따라 ‘결심’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내면의 현장을 들여다보게 된다.


< 모래성 같은 내적 갈등이라는 이미지의 힘 >


“모래성 같은 내적 갈등”이라는 표현은 이 시를 단단히 지탱하는 중심 이미지다.

모래성은 정성을 들여 쌓지만, 바람 한 번, 물결 한 번이면 쉽게 무너진다.

결심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순간 단단해 보여도, 사소한 의심이나 한숨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린다.


시인은 내적 갈등을 탓하지 않는다.

그저 ‘수두룩’하다고 말하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마음의 풍경을 담담히 드러낼 뿐이다.

이 솔직함이 이 시의 따뜻한 울림을 만든다.


<자기 검열의 잣대, 그리고 인간의 망설임>


“여기저기 / 잣대를 / 들이대어도”

이 구절은 인간이 얼마나 스스로를 검열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 선택 앞에서 반드시 ‘기준’을 들이댄다.

옳은지, 맞는지, 손해는 없는지.

이 잣대는 때로 이성의 옷을 입고 나타나지만,

실은 우리를 가장 오래 붙잡아두는 내면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 잣대를 한 번만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대본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반복되는 망설임, 불안, 인간의 습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들었다 놨다’라는 생활어가 보여주는 솔직한 인간성>


권희수 시인의 매력은 일상어를 시의 중심 감각으로 끌어올린 데 있다.

“들었다 놨다 / 망설여도”라는 생활어는

도무지 결심하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문학적 수사 대신 솔직한 구어(口語)를 택한 선택은

결심의 본질이 화려한 철학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과정’ 임을 다시 일깨운다.


< 결국 ‘시작’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힘>


시의 결론은 짧고 명료하다.

“일단 시작이 반

마음먹은

대로 풍덩

빠지는 거야”


이 구절은 흔한 속담 같지만, 단순한 메시지를 넘어서 ‘행동의 철학’을 담고 있다.

결심은 생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작게라도 시작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여기서 ‘풍덩’이라는 단어가 빛난다.

조심스레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삶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태도.

이 시는 그 용기가 바로 인간을 앞으로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한다.


<시 전체의 구조와 리듬이 보여주는 결심의 형식>


이 시는 전부 짧은 행과 짧은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형태 자체가 결심의 과정을 시각화한다.


*짧은 결단

*짧은 숨

*짧은 망설임

*짧은 행동


시의 구조 자체가 인간의 마음 움직임을 닮아 있다.

이런 형식적 선택은 시인의 의식적인 구성으로 보이며,

정서의 밀도를 더욱 높인다.


<이 시가 독자들에게 주는 위안>


모든 인간은 흔들린다.

모래성을 쌓고, 기준을 들이대고, 망설인다.

이 시는 그런 사람들에게 ‘너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해 준다.

그 공감의 힘이 시의 가장 큰 가치다.


<짧은 시 속에 담긴 실존적 의미>


결심은 인간 실존의 핵심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고, 선택의 책임 속에서 살아간다.

이 시는 그 실존의 무게를 부담스럽게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볍고 명랑한 어조로

“한 번쯤은 뛰어들어도 괜찮다”라고

손 내밀어 준다.

이 시가 가진 존재론적 따뜻함이다.



< 현대인의 마음 풍경을 반영한 짧은 철학 시>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는 더욱 쉽게 흔들리고, 더욱 자주 망설인다.

〈마음먹은 대로〉는

그 흔들리는 시대의 마음을 정확하게 그려낸 ‘짧은 철학 시’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깊고,

일상적이면서도 존재론적이며,

간결하면서도 풍부하다.

시인은 결심이 거창한 다짐이 아니다.

“풍덩 한 번” 뛰어들어보는 용기에서 시작됨을

가볍게, 그러나 깊게 말해준다.

마음먹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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