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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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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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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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은 대로
이리저리
모래성 같은
내적 갈등이
수두룩
여기저기
잣대를
들이대어도
고민고민
들었다 놨다
망설여도
일단 시작이
반 마음먹은
대로 풍덩
빠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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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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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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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 ‘마음’이라는 실체 없는 실체를 붙잡는 시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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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수 시인의 이 시는 거대한 철학을 말하는 대신, 삶을 움직이는 가장 일상적이고도 근본적인 힘인 ‘마음먹기’를 붙든다.
마음은 형태가 없지만, 인간의 행동과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시인은 이 모호한 ‘마음’의 실체를 아주 간결한 언어로 붙잡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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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행마다 멈추어 선 호흡은 마음의 움직임을 쫓는 리듬을 만들어내고,
독자는 시인의 숨결을 따라 ‘결심’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내면의 현장을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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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성 같은 내적 갈등이라는 이미지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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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같은 내적 갈등”이라는 표현은 이 시를 단단히 지탱하는 중심 이미지다.
모래성은 정성을 들여 쌓지만, 바람 한 번, 물결 한 번이면 쉽게 무너진다.
결심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순간 단단해 보여도, 사소한 의심이나 한숨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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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내적 갈등을 탓하지 않는다.
그저 ‘수두룩’하다고 말하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마음의 풍경을 담담히 드러낼 뿐이다.
이 솔직함이 이 시의 따뜻한 울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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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검열의 잣대, 그리고 인간의 망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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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 잣대를 / 들이대어도”
이 구절은 인간이 얼마나 스스로를 검열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 선택 앞에서 반드시 ‘기준’을 들이댄다.
옳은지, 맞는지, 손해는 없는지.
이 잣대는 때로 이성의 옷을 입고 나타나지만,
실은 우리를 가장 오래 붙잡아두는 내면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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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그 잣대를 한 번만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대본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반복되는 망설임, 불안, 인간의 습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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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었다 놨다’라는 생활어가 보여주는 솔직한 인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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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수 시인의 매력은 일상어를 시의 중심 감각으로 끌어올린 데 있다.
“들었다 놨다 / 망설여도”라는 생활어는
도무지 결심하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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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수사 대신 솔직한 구어(口語)를 택한 선택은
결심의 본질이 화려한 철학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과정’ 임을 다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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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시작’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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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결론은 짧고 명료하다.
“일단 시작이 반
마음먹은
대로 풍덩
빠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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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흔한 속담 같지만, 단순한 메시지를 넘어서 ‘행동의 철학’을 담고 있다.
결심은 생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작게라도 시작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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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풍덩’이라는 단어가 빛난다.
조심스레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삶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태도.
이 시는 그 용기가 바로 인간을 앞으로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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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전체의 구조와 리듬이 보여주는 결심의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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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전부 짧은 행과 짧은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형태 자체가 결심의 과정을 시각화한다.
*짧은 결단
*짧은 숨
*짧은 망설임
*짧은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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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구조 자체가 인간의 마음 움직임을 닮아 있다.
이런 형식적 선택은 시인의 의식적인 구성으로 보이며,
정서의 밀도를 더욱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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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독자들에게 주는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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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흔들린다.
모래성을 쌓고, 기준을 들이대고, 망설인다.
이 시는 그런 사람들에게 ‘너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해 준다.
그 공감의 힘이 시의 가장 큰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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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속에 담긴 실존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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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은 인간 실존의 핵심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고, 선택의 책임 속에서 살아간다.
이 시는 그 실존의 무게를 부담스럽게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볍고 명랑한 어조로
“한 번쯤은 뛰어들어도 괜찮다”라고
손 내밀어 준다.
이 시가 가진 존재론적 따뜻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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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의 마음 풍경을 반영한 짧은 철학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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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는 더욱 쉽게 흔들리고, 더욱 자주 망설인다.
〈마음먹은 대로〉는
그 흔들리는 시대의 마음을 정확하게 그려낸 ‘짧은 철학 시’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깊고,
일상적이면서도 존재론적이며,
간결하면서도 풍부하다.
시인은 결심이 거창한 다짐이 아니다.
“풍덩 한 번” 뛰어들어보는 용기에서 시작됨을
가볍게, 그러나 깊게 말해준다.
마음먹은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