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
〈백세의 철학, 인간을 향한 마지막 증언〉
■
박성진 문화평론가
■
김형석 교수의 강의는 철학 강의라기보다
‘한 인간이 자기 생애로 증명한 영혼의 기록’에 더 가깝다.
그의 말투는 노년의 느린 떨림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끝내 부드러움으로 바꿔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투명한 울림을 지닌다.
11월 17일 용인시청 강의 기사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97세에 ‘한국 정신문화의 중심인물’로 선정되었고
99세에 직접 칼럼을 묶어 책을 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자랑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한눈팔지 않고 제자와 사회를 위한 봉사만 해왔던 것이
지금까지의 보람”이라 말한다.
이 짧은 문장 속에는
그가 평생 붙들어온 철학의 핵심이
담겨 있다.
철학이란 결국,
‘삶을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라는 것.
■ 윤동주와 함께 학교를 다닌 청년의 마음,
■
백 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도 빛나다
■
그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윤동주 시인과 함께 평북 용정의 중학교를 다녔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단순한 ‘학적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윤동주는 시대의 고통을 견디며
자신에게 끊임없이 도덕적 물음을 던졌던 청년이었다.
김형석 교수의 사유 깊이는
이 청년 시절의 정신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평생의 철학적 화두는
윤동주가 남긴 시적 물음과
보이지 않는 대화를 이어온 셈이다.
■ 실존주의를 넘어 ‘관계의 철학’으로
■
그는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서
실존주의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조건을 탐구해 왔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서구 철학의 모방이나 개념적 추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책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에서 보이듯
김형석 교수의 철학은
‘관계의 고통을 통과한 고독’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붙드는 사랑’의 문제에 닿아 있다.
그의 강의가 백세가 넘은 오늘에도
젊은 세대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의 철학이 논리보다
‘살아낸 체험’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 나이보다 더 큰 것은 ‘지향성’이다
■
김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
그가 나이를 다루는 방식이 매우 특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에게 ‘105세’는 생물학적 숫자가 아니라
'내가 아직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묻는 지표이다.
그래서 그는 늙지 않았다.
그의 어휘 속에는 미련이 없고,
과거를 붙잡는 회고조도 없다.
대신, 지금 가능한 선한 일.
아직 할 수 있는 배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말아다
이 세 가지를 잃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있다.
그리하여 그의 시간은 느려지지 않는다.
나이는 멈추었지만, 그의 지향성은
오히려 더 넘쳐흐른다.
■ “철학의 마지막 문장은 결국 사랑이다”
■
김형석 교수의 많은 강연을 관통하는 결론은
언제나 비슷하다.
삶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지식도, 업적도, 명예도 아니다.
오직 ‘사람’이며, 그 사람에게 건넨
관심과 사랑이다.
그의 언어는 사유의 끝에서
따뜻함과 노년의 단단함으로 녹아든다.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철학은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책임이다.”
105세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이 한 문장은
지금 청년에게도, 노년에게도
언어의 무게 그대로 가슴을 울린다.
■
〈백세의 철학자는 늙지 않는다.
오래 산 것이 아니라, 오래 사랑한 것이다.〉
■
김형석 교수의 강의는
지식의 기술이 아니다.
‘품격과 방향’을 가르친다.
그의 말은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이 지닌 힘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그는 백세의 노학자가 아니다.
지금도 ‘살아 있는 현역 철학자’이다.
그의 생은 시대를 견디며
한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멀리 뻗어갈 수 있는지를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