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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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전시우 시인
퇴역 후
밤바다에
몸을 던졌다
어둠 속
일렁이는
파도에
시상이
아른거린다
불멸의
그 해들이 준
등단의 기쁨
소년 시절의
꿈이자
버킷리스트는
이루었지만
걱정이
밀려온다
시상의
강물
흐르는 밤
낮 시간은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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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문화평론가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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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우라는 이름이 품은 이중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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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우 시인의 〈등단〉은 짧은 시 속에
한 인간이 지나온 두 개의 세계가 고요하게 맞물려 있다.
군이라는 단단한 구조 속에서 오랜 세월 몸과 마음을 바쳐온 시간이 있고,
그 시간과는 전혀 결이 다른 시적 감수성이
오랫동안 안쪽에서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 시는 단순한 ‘문단 등단’의 보고가 아니라
삶의 구조가 완전히 바뀌는 자리,
즉 전역이라는 외적 사건과
시인의 내적 탄생이 동시에 일어나는 문턱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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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 밤바다로의 투신, 규율에서 해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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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 후, 시인은 밤바다에 몸을 던진다.
이 구절은 실제 몸을 던진 사건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보다 더 깊게 보면 이것은
군인의 세계에서 시인의 세계로 건너가는 정신적 투신이다.
군인의 몸은 명령과 규율의 대상이었다.
그 몸이 파도에 스스로를 맡긴다는 것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조여왔던 긴장 상태가
서서히 풀어지는 장면이다.
바다는 흔들림을 품고 있고,
그 흔들림은 시인이 처음 배운 새로운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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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발견되는 시상 — 감각의 되살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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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전시우 시인에게 공백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그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시상을 깨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어둠을 두려움의 배경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인의 세계에서 어둠은 적과 위험을 숨기는 공간이었지만,
시인의 세계에서 어둠은 감각과 사유가 살아나는
내밀한 공간이다.
전시우 시인을 변화시킨 것은
그 어둠의 질감과 파도의 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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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해 들 군인의 삶이 시인의 토양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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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군의 시간을 ‘불멸의 해 들’로 표현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추억이나 아쉬움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만이 느끼는
내면의 절대성이 담겨 있다.
젊음, 사명감, 동료애, 책임감이
겹겹이 쌓인 그 시간들은
그의 영혼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불멸의 시간이
시인의 언어를 만드는 토양으로
조용히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군인의 날들은 시를 막지 않았고,
오히려 시를 자라게 하는 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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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꿈의 귀환 — 늦은 시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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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의 꿈이자 버킷리스트였던 ‘등단’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인은 기쁨 안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쁨 뒤에 밀려오는 걱정을 조용히 응시한다.
이 대목에서 전시우 시인의 진정성이 빛난다.
등단은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긴장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는 안다.
기쁨 뒤의 걱정은
시를 진지하게 쓰려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솔직한 그림자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소년의 꿈은 단순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층 더 성숙한 형태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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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의 반전 — 시간이 뒤집히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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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상의 강물이 흐르는 밤과
멈춘 듯한 낮을 대조 한다.
군인의 삶에서
낮은 모든 행위의 중심이었고
밤은 경계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인의 삶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밤은 시의 강물이 흐르는 시간이고
낮은 오히려 정지된 세계다.
이 시간의 역전은
한 인간이 본격적으로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음을 보여준다.
전시우 시인은
짐을 내려놓은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밤을 가로지르는 시인으로서
처음으로 호흡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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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시집 와수리가 예고하는 전시우 시 세계의 첫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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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은 전시우 시인의 내면에서
오래전부터 빛을 잃지 않던 꿈이
마침내 외부의 세계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그의 시에는
군인의 강직함이 지나치게 앞서지도 않고,
시인의 감수성이 과장되기도 하지 않는다.
두 세계가 서로를 보완하며
묵직하고 품위 있는 언어를 만들어낸다.
이 첫 시적 선언은
그의 시집 와수리에서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와수리는 전시우라는 이름이
어떤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첫 지형도이며,
그의 시적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를
조용히 예고하는 시작점이다.
전시우 시인의 길은
군인의 기억과 시인의 감성이 서로를 비추며
보다 깊고 단단한 언어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 출발의 첫 장이
바로 이 시 〈등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