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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학박사 곽혜란 시인-가까운 행복》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곽혜란 시인


〈가까운 행복〉


해안의 곡선을 만드는

바닷가 가장자리 물결

언제나 바다 끝에서 찰랑거릴 뿐


저 넓은 대양에 나서 보지 못하고

늘 바다 언저리에서 조금 밀려 나갔다

다시 제자리로 밀려들어오고는 하지만


대양의 한가운데

광활한 바다에 가 닿아 있는 바닷물은

나에게 꿈도 없는 불행한 존재라고 하지만


너는 모른다 매일 얼굴 비비며 지내는

모래의 살가움 거친 일기에

버티게 해주는 듬직한 바위들

끝없이 다가와 속삭여 주는

희고 자잘한 물거품의 예쁜 짓을

너는 알 리 없지


내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이유로

시시하게 여기는 나의 소소한 행복이

아침마다 미소 짓게 하고 얼마나

큰 의미인지 드넓은 곳에서

원대한 행복만을 찾는 너는 모른다


행복은 저 수평선 너머 넓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팔 뻗으면 닿는 바로

여기, 여기 가까이 있음을



*************



〈가까운 행복〉에 대한 평론

‘소소한 행복’이라는 감각의 미학



가장자리의 존재가 드러내는 정체성의 질문


곽혜란 시인의 〈가까운 행복〉에서 가장 먼저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 것은 ‘가장자리’라는 위치다.

시의 화자는 바다의 중심이 아닌, 해안의 끝, 물결의 언저리에서 자기 존재를 규정한다.

이 ‘언저리’라는 공간은 단순한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정체성을 함축한 상징적 자리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광활한 대양을 ‘성취’와 ‘승리’의 공간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시인은 가장자리의 물결에 자기 존재를 틀어 놓는다.

이것은 중심을 향한 욕망을 내려놓고, 일상의 가장 작은 자리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내적 균형이다.


바다와 인간, 비유가 아닌 존재의 동일화


이 시에서 바다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화자 자신이다.

찰랑거리는 물결, 밀려갔다 돌아오는 가장자리의 움직임은 인간의 감정과 일상의 리듬을 닮았다.

여기에서 “대양의 한가운데”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성공, 원대한 목표, 타인의 눈에 비친 ‘큰 행복’의 상징이다.

그에 반해 “바다가 닿아 있는 가장자리”는 자기만의 시간을 지키는 인간의 고유한 내면이다.

이 대비는 이 시의 핵심 사유를 드러낸다.

행복은 공간의 크기에서 결정되지 않는다는 선언문이다.


‘너는 모른다’ 타인의 서사를 거부하는 자존의 언어


시 속에서 가장 감정적 깊이가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대목이 바로 “너는 모른다”이다.

이 말은 누군가를 타박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삶의 결을 오롯이 지키고자 하는 조용한 저항의 선언이다.

일상의 소소함을 ‘시시하다’고 여기는 누군가에게, 화자는 응답한다.

세상이 평가하는 기준, 타인의 잣대, 사회적 기준의 성공, 광활함에 대한 강박을 거부하고

“나는 여기서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윤동주의 ‘자기 존재의 정직함’과도 닮은 태도로,

곽혜란 시인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자기 긍정의 문장을 시 속에 세운다.


모래·바위·물거품 --관계의 시학


곽혜란 시인의 시에는 자연 소재가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인간을 지탱하는 관계의 은유로 등장한다.

*모래는 ‘살가움’을 주는 친밀한 존재

*바위는 거친 일기 속에서도 기댈 수 있는 버팀.

*물거품은 끝없이 다가와 속삭이는 미소이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이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관계적 위안의 구조와 매우 닮아 있다.

가까운 사람들, 조용히 버텨주는 존재들, 사소한 말을 건네는 인연들.

우리가 종종 지나쳐버리는 ‘작은 관계의 빛’이 바로 이 이미지들 속에서 형상화된다.


큰 꿈의 문화, 거대 서사의 시대를 향한 질문


오늘날 많은 이들이 원대한 목표를 향해 달린다.

시대가 우리에게 말한다. 더 큰 자리, 더 넓은 무대, 더 큰 성공.

그러나 시인은 묻는다.

“정말 그게 행복인가?”

더 크고, 더 멀고, 더 높은 곳을 추구하느라

눈앞의 따뜻함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삶을 시인은 부드럽게 비추어 준다.

여기서 시는 단지 정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무의식적 강박을 해체하는 철학적 문답을 수행한다.



가까움의 미학 — ‘닿는 거리’의 철학


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 작품의 결론이자 가장 중요한 미학적 진술이다.


> “행복은 저 수평선 너머… 넓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팔 뻗으면 닿는 바로 여기, 가까이 있음을”


여기서 행복은 ‘거리’로 정의된다.

멀수록 특별해 보이지만,

실은 가까울수록 본질적이다.

가까운 행복은 누군가에게는 하찮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매일 아침 미소를 짓게 하는 유일한 감각이다.

이 결론은 단정적이지 않고 서정적이다.

철학적이되, 인간적이다.

현대 미학에서 말하는 근거리의 감각을 그대로 구현하였다.


삶의 언저리에서 발견한 존재의 결


이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삶의 중심이 아니다. ‘언저리’에 머무는 사람들의 정서를

잔잔하지만 깊은 언어로 길어 올렸기 때문이다.

언저리에 있는 자만이

중심이 모르는 행복을 안다.

중심이 향유하는 광활함은 언저리의 섬세함을 가진 적 없다.

이 시는 바로 그 섬세함,

언저리에 머무는 자의 고유한 색깔을 노래하였다.


철학적 사유 행복의 장소성과 존재론


‘가까운 행복’은 장소적 개념인 동시에 존재론적 개념이다.

장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머무는 자리가 곧 행복의 자리가 된다.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의 의미”처럼

인간은 자기 존재가 머무는 자리를 스스로 꾸리고, 그곳에서 세계를 이해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소소한 일상의 안정은 인간의 정서 즉,

회복력의 핵심 요소이다.

이 시가 지닌 철학과 심리적 직관은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다.


사소함의 위대함


우리는 흔히 ‘사소한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시인이 보여주는 세계에서는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실제의 힘들이다.

모래 한 알의 따뜻함, 바위 하나의 듬직함,

물거품의 속삭임.

이 미세한 요소들이 모여

한 사람의 하루를 지탱한다.

이것이 곽혜란 시인이 가진

잔잔한 위대함의 원리이다.


시인의 시선--- ‘조금 밀려 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존재들


이 시는 바다의 움직임을 인간의 삶과 감정의 생리학으로 읽는다.

살다 보면 우리는 중심으로 밀려 나가지 못하고

언저리에서 머물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언저리의 반복적 움직임 속에서

화자는 오히려 자기 삶의 리듬을 발견한다.

이것은 성공의 리듬이 아니다.

존재의 리듬이다.

고요하고 정확하며, 자기만의 호흡을 잃지 않는 사람의 리듬이다.


‘가까운 행복’의 보편성과 시학적 유산


곽혜란 시인의 〈가까운 행복〉은

작은 삶을 노래하는 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행복의 본질을 묻는 깊은 철학의 시다.

멀고 넓은 세계를 지향하는 시대에

“가까움의 힘”을 다시 불러내는 것,

그것이 이 시가 가진 문학적 기여이자,

독자에게 던지는 조용한 질문이다.

행복은 크기보다 깊이가 중요하며

멀리보다 가까이에 있으며

거대함이 아니라 섬세함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이 시는 마지막 문장까지 놓치지 않는다.


곽혜란 시인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행복은 삶의 언저리에서 가장 먼저 피어난다.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남는 것이다.

시인은 가까운 행복을 찾는 시인임을 알 수 있다. 굳이 드넓은 곳에서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너는 모른다

여기, 여기에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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