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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주광일 시인-겨울엽서》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겨울엽서


주광일 시인


당신은 나에게 말했지요.

당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이든,

신은 당신이 그의 것임을 알고 있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신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다만 당신 말씀을

내가 아주 오래전에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또한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하느님의 것임을 기억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복된 존재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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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박성진


이 작품은 겨울의 엽서라는 정서적 배경 속에서 존재의 귀속과 영혼의 안식에 대한 내밀한 고백을 담고 있다. 외형은 짧고 단정한 산문시이나, 그 안에는 한 인간이 자기 삶을 되돌아보며 “나는 누구의 것인가”를 묻는 깊은 신학적 사유가 비쳐 있다.


첫 문장은 고백으로 시작한다.

“당신은 나에게 말했지요.”

이 말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 들었던 절대적 진실의 문장에 대한 회귀이다. ‘신은 당신이 그의 것임을 알고 있다’는 선언은 인간이 스스로를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가 무너지는 자리에서 발현되는 존재론적 위로다. 인간이 자기 존재를 모를 때도 신은 이미 알고 있다는 믿음, 그것이 이 시의 중심축이다.


두 번째 흐름에서 시인은 그 말을 뒤늦게 깨달았음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아주 오래전에 알았더라면”이라는 구절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많은 고통과 방황이 신에 대한 경외보다 먼저 삶의 혼란을 경험했기 때문에 생긴 간격을 암시한다.

신을 알기 전에 겪어야 했던 겨울들, 그 긴 고독과 상처가 이 한 문장 속에 응축되어 있다.


마지막 대목은 이 시의 정점이다.

죽음의 문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자신이 하느님의 것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은 종교적 신앙고백을 넘어, 존재의 궁극적 귀향을 원하는 인간의 보편적 소망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이 누구에게 속하는지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평안을 얻는다는 진실을, 시인은 담담히 적어 내려간다.


주광일 시인의 시의 힘은 과장이 없다는 데 있다.

거대한 교리도, 복잡한 비유도 없다.

겨울 하늘처럼 맑고 울림 있는 문장들 속에서 인생의 회한, 신 앞의 겸허, 마지막 순간의 빛이 고요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독자는 마지막 문장을 덮고 나서야 깨닫는다.

이 시가 겨울의 엽서가 아니라, 영혼을 향해 보내는 하나의 기도문이었다는 사실을.


필력이 절제된 만큼 더 단단하다.

찬 바람 속에서 흔들리던 한 존재가 “나는 그분의 것이다”라는 확신을 발견하는 순간, 시는 겨울을 건너 봄의 내부로 들어간다.

이 작품은 그 조용한 귀속의 숨결을, 다가올 12월 겨울 저녁 성탄의 촛불처럼 은은하게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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