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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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리운 바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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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언 시인
내 그리운 바다여
안부가 궁금타
아마도 전생에 바다를 고향으로 살았는가베
삶의 마무리는 니 곁에서하고 싶은걸
보뭄 말이여
내 꿈 속 바다여
변함없제
또 다시 태어나도 니랑 함께 할랑갑다
살다가도 멍하니 곁을 못 잊어하니 말이여
내 푸른 바다야
기다려줄 거제
맙니 곱니 혀도 방황의 끄트머리 니뿐인가베
태어나서 여즉 내맘 끄는 걸 보뭄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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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리운 바다여〉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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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언 시의 세계는 한눈에 보기엔 순박하고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평생을 관통하는 감정의 심층이 스며 있다. 시의 첫머리에서 화자는 바다를 ‘그리운’ 존재로 불러 세운다. 이때 바다는 더 이상 풍경이나 장소가 아니라, 화자의 마음에 새겨진 오래된 고향처럼 다가온다. 바다를 향해 건네는 이 첫 부름 하나만으로도 독자는 시가 놓인 정서의 위치를 정확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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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바다를 ‘부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를 읽는 동안 바다는 계속해서 대상이 아니라 상대가 된다. 화자는 바다를 부르고, 말 걸고, 속삭인다. 장면의 중심은 늘 바다이고, 화자는 그 앞에서 삶과 마음을 조용히 풀어놓는다. 이 부름의 구조가 시 전체를 따뜻하게 묶어주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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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이라는 말은 시적 장치를 넘어서, 화자가 바다를 왜 이토록 애틋하게 생각하는가를 단번에 보여준다. 현실의 기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래된 연정 같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의 이유를 따지기보다 ‘전생에 고향이었다’고 말해버리는 방식은 노랫말처럼 솔직하면서도 깊다. 이는 향수가 아니라 존재적 뿌리감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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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큰 축은 방언이다. 방언은 단순한 지역색이 아니라, 화자가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내려놓는 언어의 자리이다. 표준어로 바꾸면 온기가 절반 가까이 사라진다. 방언의 둥근 결, 느린 호흡, ‘말이여’ 같은 소리는 화자의 생애 전체를 감싼 말의 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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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바다는 한 인간의 삶을 감싸는 자리로 등장한다. 삶이 지치고 방황이 길어질수록 화자는 바다를 떠올린다. 바다는 위로를 건네는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마무리하고 싶은 자리’가 된다. 인간은 결국 자신을 처음으로 품어준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 시에서 바다는 바로 그 회귀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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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에서도 바다는 변하지 않는다. 무의식이 드러나는 꿈에까지 바다가 자연스럽게 뛰어오른다는 것은, 바다가 이미 화자의 정체성 일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바다와 함께하고 싶다는 고백은 단순한 애정 고백이 아니라 생의 구조에 가까운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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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끝에서 다시 떠오르는 곳이 바다라는 표현은 이 시의 심장부이다. 사람은 흔히 방황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돌아간다. 삶이 복잡할수록, 마음 안에서 단 하나 지워지지 않는 장소가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시의 바다는 바로 그 ‘지워지지 않는 자리’다. 애틋하고도 담백하며, 단순한 듯 깊고, 따뜻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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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울부짖지 않고, 과장하지 않는다. 작고 낮은 말들이 파도처럼 고요히 밀려와 마음 안을 적신다. 서정이란 본래 이런 방식으로 존재한다. 조용히 흔들고, 천천히 스며들고, 결국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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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양문학의 전통 속에서도 이정언의 바다는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비극이나 운명의 상징으로서의 바다가 아니라, 인간의 체온과 속정에서 비롯된 바다다. 거칠고 투박한 말투로 불러도 그 안에는 살아온 세월의 온기가 가득하다.
이 바다는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도록 간직한 마음의 사진 한 장처럼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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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이 시는 한 인간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마음의 원점’을 고백하는 노래다. 바다는 그 원점이다. 삶이 흔들리고 방황이 길어도, 끝내 사람을 다시 불러 세우는 것은 복잡한 사상도, 원대한 꿈도 아니다.
가장 오래 사랑해온 것, 가장 깊이 스며 있는 것, 가장 따뜻했던 순간의 자리다.
이정언의 바다는 그런 존재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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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시는 독자에게도 조용히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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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어떤 바다가 남아 있는가.
누구에게나 버리지 못한 바다가 하나쯤은 있다.
그 바다를 다시 부르는 순간, 시는 비로소 당신의 것이 된다.
내 그리운 바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