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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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존재, 별들의 언어>
부제:데이지꽃, 존재의 눈망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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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근 옥 시
스산한 달빛 비치는 어둠 속 허옇게 스러져가는 꽃들은/
왜,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연약하게 흔들리는가
아름다운 온실 속의 데이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섰다/
꽃은 말한다, 모든 생은 죽음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고
하지만 인간은 일상에 잠긴, 자신의 존재를 묻는 것을 두려워한다/
정치는 대중의 불안을 조장하며, 존재의 공허를 권력으로 덮는다
꽃은 물이 없어 목숨을 잃고, 우린 자유를 빼앗겨 목숨을 잃는다/
염치 잃은 정객은 시들어가는 꽃 앞에서도 권력의 손을 더듬는다
자유가 죽어가는 꽃에게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화문 거리의 소음은 참 백성살이의 본질을 덮는 슬픈 장막
삶은 존재의 진리를 깨닫고, 진정한 자기로 꿋꿋하게 서는 일,/
그러나 아무도 그 꽃의 죽음을 향한 현존재를 보지 못한다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는가, 잎 하나가 떨어지며 묻는다, 비닐막사는/
시간의 감옥, 삶의 존재가 추락되며 정치 언어도 존재를 버린다
죽음을 두려워 않고 줄기차게 꽃 피우며, 꽃처럼 지는 법을 배운다/
구원은 멀리 있지 않다, 적막한 그 죽음 앞에서 나의 꽃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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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꽃 앞에서, 존재를 다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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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꽃 하나가 이토록 많은 말을 건넬 줄은 몰랐다.
꽃은 말이 없지만, 시인은 꽃의 침묵에 귀를 댄다.
침묵은 때로 언어보다 더 정직하다.
정 근 옥 시인은 이 정직한 침묵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존재의 눈망울을 붙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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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스러지는 꽃의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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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옥 시인의 시 첫 행을 읽는 순간부터 나는 마음이 멈칫했다.
“허옇게 스러져가는 꽃들.”
흰빛은 늘 순결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여기서는 스러짐의 마지막 발광이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가장 흔들린다는 말,
그것은 꽃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여기에 있다.
찬란함 뒤에 찾아오는 미세한 균열,
빛나는 시절에서 문득 스치는 고독,
그 떨림을 시인은 정확히 보았다.
그래서 이 시의 첫 질문은 철학이 아니라 고백이다.
“왜,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연약하게 흔들리는가.”
나는 이 한 줄에 오래 멈추었다.
삶의 심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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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 속 데이지, 보호와 감금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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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은 따뜻하지만, 동시에 차갑다.
꽃을 보호하는 공간이면서
세상과의 모든 경험을 차단하는 감옥이기도 하다.
데이지는 피자마자 죽음을 향해 서 있었다.
우리가 어떤 보호 아래에 있을 때조차,
이미 죽음의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진실의
이 시는 그것을 부드럽게, 그러나 거칠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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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은 죽음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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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철학 교과서에 적힐 수 있지만
시 속에서는 꽃잎의 떨림이 된다.
죽음은 생의 반대가 아니라
생을 빛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배경임을
데이지꽃은 말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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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존재를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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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존재를 묻는 것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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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바쁜 것이 아니라,
사유를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일상은 때로는 피난처이지만,
대부분은 자기 존재를 직면하지 않기 위한 연막이다.
정치는 더욱 명료하다.
정치의 언어는 대중을 안심시키는 언어가 아니라
불안을 관리하는 언어다.
불안을 키워야 그 위에 권력이 세워진다.
꽃은 물이 없으면 죽지만
인간은 자유가 없으면 영혼이 죽는다.
이 단순한 진실을 시는 직설로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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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잃은 정객은
시들어가는 꽃 앞에서도
권력의 손을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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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단순 비판이 아니라
권력과 생명의 대비를 통한 잔혹한
윤리의 진술이다.
꽃의 시듦은 생의 마지막이지만,
정객의 탐욕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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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소음과 ‘슬픈 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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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목소리가 모이는 곳이지만
동시에 진실이 가장 잘 가려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수많은 깃발과 구호가 펼쳐져도
백성의 실제 삶은 그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다.
“슬픈 장막”이라는 표현은
슬픔이 아니라 체념의 감정에 가깝다.
가려진 슬픔, 들리지 않는 목소리,
꽃처럼 작은 존재들은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다.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가 사라진 순간, 국가도 함께 사라진다.
국기는 펄럭이지만
그 깃발 아랫사람의 숨은 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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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재’를 보지 못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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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묻고 있다. 삶은 무엇인가.
“진정한 자기로 꿋꿋하게 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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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꽃이 죽음을 향해 서 있는 순간을 보지 못한다.
꽃이 피는 순간만 보고,
꽃의 마지막을 보는 시선을 잃어버렸다.
철학의 용어가 아니라
이것은 현실의 고백이다.
사람들의 현존재 역시 누구도 보지 않는다.
저마다의 죽음과 삶의 경계,
그 떨림을 보지 못한 채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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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막사,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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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가장 쓰라린 장면은 비닐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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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몇 번이면 날아갈 듯한 그 얇은 막이
한 인간의 마지막 집이 된다.
그곳을 시인은 “시간의 감옥”이라고 부른다.
존재가 깎이고,
언어가 타락하는 자리.
꽃은 물이 없어서 죽고
사람은 존엄을 잃어서 죽는다.
비닐막사는 그 존엄이 추락한 자리이다.
정치 언어도 그곳에 닿지 않는다.
닿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닿을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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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꽃처럼 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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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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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두려워 않고
줄기차게 꽃 피우며
꽃처럼 지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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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꽃의 죽음은 완성이다.
죽음을 향해 피워내는 마지막 힘,
그것이 생의 고요한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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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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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영적 교리가 아니다.
내 앞에서 스러지는 작은 존재 하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다.
그 순간에 인간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다.
■ 총평
정 근 옥 시인의 이 작품은
꽃이라는 가장 작은 존재를 통해
국가, 자유, 정치, 인간, 존재, 죽음을 한꺼번에 묻는
대단히 드문 긴장과 깊이를 지닌 시다.
철학적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정치적이지만 편에 서지 않고,
문학적이면서도 선명한 사회적 시선이 있다.
이 시는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 송이 데이지를 바라보는 방식이
곧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리고 묻고 있다.
지금, 너는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꽃의 죽음 앞에서 그대는 어떤 존재인가를
삶의 철학과 사유를 담아서 쓴 시로
시인의 문학바탕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