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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정근옥 문학박사-우주의 별빛, 그 간절함》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우주의 별빛, 그 간절함〉


어둠 속을 헤매던 그리움이

하늘에 별을 심어놓았구나


밤길을 떠돌다가 찾아온 찬바람에

밤새 떨고 있는 나뭇잎들


새벽의 하현달을 보면 네 가슴도

저리 아프게 빛날까


쏟아지는 별빛이 마음 흔들며

차디찬 겨울 바다에 일렁거린다


*************


〈우주의 별빛, 그 간절함>


어둠에서 별을 발견하는 ‘그리움의 힘’


이 시의 첫 행부터 마지막까지 흐르는 정조는 ‘그리움의 길’이라는 오래된 인간의 정서다. “그리움이 하늘에 별을 심어놓았구나”라는 구절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 인간의 정서가 우주의 풍경을 바꾸는 원인으로까지 확대된다.

이는 동아시아 시학에서 오래도록 이어진 사유 구조는 ‘감정이 자연을 빚어낸다’는 전통적인 심상론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텅 빈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그리움이 별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행위로 본다. 이때의 별은 객관적 광채가 아니라, 그리움이 만들어낸 주관적 발광이다.

즉, 이 시는 그리움이 현실을 밝히는 힘, 어둠을 견뎌 내는 인간의 내적 에너지를 은근하게 드러내었다.



떠도는 밤길과 떨고 있는 나뭇잎 — 감정의 의인화


두 번째 연에서 시인은 감정을 자연의 사물에 배치한다.

“밤새 떨고 있는 나뭇잎들”은 계절의 추위를 묘사하는 동시에, 시적 화자의 내면 떨림을 대신 보여주는 장치다. 나뭇잎은 자신의 뿌리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긴장감, 바람의 향방 따라 흔들리는 존재다. 여기에서 ‘나뭇잎의 떨림’은 인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자연의 동반자적 존재성을 말한다.

시인은 고독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떨고 있는 나뭇잎을 통해 고독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시적 절제이며, 절제가 곧 응시가 되는 순간이다.


새벽의 하현달 — 절반의 빛, 절반의 상처


세 번째 연에서 등장하는 ‘하현달’은 상징적이다. 온전하게 찬 달도, 완전히 사라진 달도 아닌 절반의 달. 그 불완전함은 시인의 마음에 남은 결핍을 은유한다.

“네 가슴도 저리 아프게 빛날까”라는 물음은 달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보내지지만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 같은 질문이다.

달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아프게 빛난다’는 말은 감정의 심연을 드러낸다.

빛의 출발이 기쁨이 아니라, 아픔이라는 것.

이 시의 핵심 감정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빛의 본질을 ‘아픔’으로 읽는 문학적 전통


한국 현대시는 오래도록 빛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해 왔다.

첫째는 구원의 빛.

둘째는 상처의 빛.


■. 윤동주는 별빛을 ‘슬픔의 자리’로 보았고, 백석은 눈부신 빛 속에서 고향의 그늘을 떠올렸으며, 김소월은 달빛을 실연의 단심으로 화했다.

이 시 역시 이러한 전통 위에 서 있다.

빛은 곧 아픔이며, 아픔이 있기에 더 밝게 빛난다.

‘하현달’이라는 선택은 바로 이러한 한국적 정조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겨울 바다로 내려앉는 별빛 — 감정의 지형학


마지막 연은 전체 정조의 결말이 아니라 확장이다.

“쏟아지는 별빛이

마음 흔들며

차디찬 겨울 바다에

일렁거린다”

여기서 별빛의 방향은 위에서 아래로, 하늘에서 바다로, 영혼에서 현실로 흘러내린다. 별빛은 감정의 빛이므로, 결국 화자의 마음이 ‘겨울 바다’에 투영된다.

겨울 바다는 존재의 외로움과 고독을 상징하는 오래된 이미지다.

추운 바다 위로 별빛이 일렁이는 순간, 독자는 ‘감정의 흔들림’을 외부 풍경 속에서 본다. 시인은 자기의 심장을 바다의 물결처럼 흔들어 놓는다.


이 연은 감정과 자연의 완전한 결합이다.


간절함의 시학 — 말해지지 않는 것들의 힘


제목이 암시하듯, 이 시의 주제는 ‘간절함’이다. 그러나 시인은 단 한 번도 이 단어를 시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강하게 존재하게 한다.

간절함은 다음의 사물들을 통해 조용히 구현된다.

--별을 심는 그리움

--떨고 있는 나뭇잎

--반쪽의 달빛

--겨울 바다의 일렁임


말해지지 않는 감정은 시의 보이지 않는 골격을 형성하고, 그 골격이 시 전체의 긴장도를 높인다.

이것이 바로 ‘정서의 절제미’이며 시인의 스타일을 형성하는 내적 질서이다.


감정에서 우주로 — 소우주와 대우주의 일치


이 시의 특징 중 하나는 감정이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시작은 그리움이지만 끝은 우주로 펼쳐진다.

별, 달, 바다, 어둠

새벽을 아우른다.

이들은 인간의 마음을 초월적 공간으로 이끌어가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우주를 과장하거나 신비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이 우주를 불러왔다. 우주는 감정의 확장일 뿐이다.

이는 인간의 마음을 ‘소우주’로 본 고전적 철학과도 이어진다.

이 시는 결국 소우주와 대우주가 서로를 비추는 관계에 놓인 작품이다.



정형의 파괴, 리듬의 절제


시의 형태는 짧은 행과 단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리듬은 두 가지 효과를 준다.

*감정의 호흡을 끊어주어 과잉을 막는다.

*독자가 행과 행 사이의 침묵을 읽도록 만든다.

이 침묵이 바로 우주의 공간이다.

시인은 말보다 ‘빈자리’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시적 전략을 취한다.

이는 현대시의 중요한 특징인 ‘언어의 절약’을 농밀하게 구현한 방식이다.


피동적 자연이 아닌 능동적 자연 ---자연과 감정의 상호작용성


이 시의 자연은 단순 배경이 아니다.

별은 심어지고, 나뭇잎은 떨고, 달은 아프게 빛나며, 겨울 바다는 흔들린다.

감정이 자연에 스며들고, 자연이 다시 감정을 흔든다.

이 상호작용성을 통해 시인은 ‘세계와 나’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결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적 자연은 조선 시단에서부터 시작된 자연--정서의 합일을 현대적 어법으로 복원한 것이며, 동시에 고독한 개인의 질감을 우주적 공간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게 한다.


간절함의 미학과 인간 존재의 흔들리는 빛


이 시의 아름다움은 고통을 직접 말하지 않고, 아픔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사랑이나 상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데 있다.

대신 시인은 자연의 사물 하나하나를 통해 마음의 결을 비추고, 별빛과 달빛, 바람, 나뭇잎, 바다를 통해 ‘간절함의 존재론’을 구축하였다.


결국 이 시는 다음과 같은 말 없는 선언을 품는다.


간절함은 어둠 속에서 가장 빛나며,

그 빛은 우주로까지 번져

겨울의 차가움마저 떨리게 만든다.

이 시는 우주의 풍경을 빌리되 인간의 마음을 잃지 않는,

감정과 자연이 서로의 숨결을 주고받는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우주의 별빛이 반짝이는 정제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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