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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이어령 선생님의 쓰기 철학과, 인간학》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이어령 선생님의 쓰기 철학과 인간학 ---박성진 문화평론〉


----삶은 써야 비로소 살아진다




삶은 ‘쓴다’는 행위에서 비로소 깨어난다


이어령 선생님은 생을 붙잡아두는 것을 삶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는 “삶은 써야 비로소 살아진다”라고 말하며,

인간이 자신의 시간을 건네고, 마음을 내어주고, 경험에 몸을 맡기는 순간

비로소 그 삶이 살아 숨 쉰다고 보았다.

여기서 ‘쓴다’는 말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등불을 밝히는 행위이며

자기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는 결단이다.

그는 조용히 우리에게 되묻는다.

“너는 지금 어디에 너를 쓰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늘의 인간을 흔들어 깨우는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다.



배움에 쓰는 시간---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힘


배움은 늦음이 없고, 지식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

이어령 선생님에게 배움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가장 밝은 등불이었다.

배움에 시간을 쓴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넓히고

내면의 방을 새로 정리하며

사유의 깊이를 더한다.

배움을 아끼기 시작하면

생각은 바람 앞에 꺼지는 촛불처럼 흔들리고

감정은 금세 메말라버린다.

그러나 배움에 시간을 기꺼이 쓰는 이에게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용한 빛이 솟아난다.

배움은 성장이라기보다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며,

모든 나이를 견디게 하는 마지막 힘이다.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숨


이어령 선생님은 말을 생명으로 보았다.

그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꺾인 마음을 다시 일으키며,

잊어버린 희망을 끌어올린다고 믿었다.

따뜻한 말을 아끼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서늘해지고

삶의 온도는 낮아진다.

그러나 따뜻한 말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다.

말은 인간의 두 번째 심장이다.

그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는

타인을 향한 정확한 사랑이며,

또한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이다.

따뜻한 말은 사람의 하루를 바꾸고

어떤 이에게는 한 생애의 방향을 바꾸는 기적이 된다.



자신을 돌보는 마음 — 인간의 품격을 지키는 마지막 울타리


이어령 선생님은 자신을 돌보는 마음을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한

가장 절실한 품위로 보았다.

자기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결국 타인을 온전히 품을 수 없다.

몸을 돌보고,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의 균형을 지키는 일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존중하는 윤리이며

삶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깎아내는

내면의 공예와도 같다.

자기를 돌보는 일에 마음을 아끼는 순간

삶은 쉽게 닳아버리지만

자기에게 마음을 쓰는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뿌리를 갖게 된다.



경험에 쓰는 용기 — 삶의 깊이는 경험의 넓이에서 온다


경험은 시간을 통과한 흔적만이 아니다.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세계와 인간을 넓게 이해할 수 있다.

이어령 선생님은

경험을 아끼는 태도를 가장 큰 빈곤이라 여겼다.

왜냐하면 경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기 안에만 갇혀 살기 때문이다.

그에게 경험은 실수를 포함한 ‘삶의 학교’였다.

실패도, 눈물도, 기쁨도

모두 삶의 질감을 만들어주는 재료였다.

경험에 몸을 던지지 않는다면

인간의 말은 허공에 닿지 못하고

삶은 메마른 껍질처럼 퇴색한다.

삶의 품위는 경험의 수가 아니라

경험을 대하는 태도에서 결정된다.


아끼는 순간 작아지는 인생 — 쓰지 않는 삶은 소멸된다


이어령 선생님은

지나친 아낌을 삶의 축소로 보았다.

말을 아끼느라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배움을 아끼느라 변화하지 못하며,

경험을 아끼느라 세상을 만나지 못하고,

자기 돌봄을 아끼느라

자기 존재까지 잃어버리는 삶.

이러한 아낌은

인간을 서늘한 두려움 속에 가두어버린다.

삶은 결국 쓰여야 빛이 난다.

쓰여야 흔적이 남고,

쓰여야 누군가에게 닿고,

쓰여야 그 사람의 삶이 생기를 얻는다.

쓰지 않는 삶은

시간 속에서 조용히 지워질 뿐이다.


삶의 품위는 어디에 마음을 두고 쓰느냐에서 결정된다


선생님의 철학은 단순한 낭비의 미학이 아니다.

그에게 쓰기란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었다.

마음 없이 쓰는 행위는 공허하지만

마음을 담아 쓰는 행위는

그 자체로 품위가 된다.

시간을 어디에 쓰는가,

말을 누구에게 건네는가,

어떤 경험을 선택하는가.

이 모든 선택이 인간의 품격을 세운다.

품위란 부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어디에 놓았는가의 문제였다.


선생님의‘쓰기 철학’이 오늘 우리에게 남긴 것


선생님이 남긴 말들은

오늘의 혼탁한 시대 속에서도

조용한 등불이 된다.

배움에 시간을 쓰는 사람은

앞으로의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따뜻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다시 숨 쉬게 하며,

자기 돌봄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삶의 중심을 잃지 않고,

경험에 몸을 쓰는 사람은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을 갖는다.

이 네 가지 사용은

인간이 인간답게 서기 위한

네 기둥이다.





박성진 문화평론가의 맺음말 — 삶의 마지막 질문


이어령 선생님의 철학은

우리에게 한 문장을 남긴다.


“너는 지금 어디에 너를 쓰고 있는가.”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지해진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써야’ 한다.


배움에 자신을 쓰고,

말에 따뜻함을 담고,

자기를 돌보는 마음을 내어주고,

경험에 용기를 건네는 일.


이 네 가지 사용은

존재가 사라지지 않기 위한 인간의 마지막 의지이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삶의 자세다.


이어령 선생님의 철학은

남김없이 살아보는 용기를 가르친다.

선생님은 떠났지만

그 말들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서

묵직한 등불로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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