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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신위식 시인-영혼의 완성》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영혼의 완성〉


신위식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다운 영혼의 완성이다


온몸 태워 노을에

스며드는 태양처럼


온몸 던져 세월에

순응하는 낙엽처럼


우주의 품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도

저마다 무언가 남기고 사라진다


무엇을 어떻게 남기고 떠날 것인가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평화로울 수

있을까


아직은 미숙아 나의 영혼 세상 즐거움은 순간이라고 죽음을 초월한 위대한 동행

뿐이라고,


뚝뚝 지는 가을 숲에서 조용히 나를 내려놓는다

그 순간이 평화로운 영혼을 위하여


**************


〈영혼의 완성〉


영혼의 완성은 ‘사라짐’에서 온다는 첫 문장


시의 첫 구절은 마치 하나의 유언처럼 다가온다.

“사라지는 것들은 / 아름다운 영혼의 완성이다.”

보통 우리는 남아 있는 것, 계속 이어지는 것, 보존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시인은 시선을 정반대로 돌린다.

형체가 흐려지고, 자취가 희미해지고, 이름이 잊혀가는 그 자리에서

오히려 영혼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사라짐’과 ‘완성’을 나란히 놓는다.

낡은 가치로 보면 이 둘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삶을 깊이 통과해 본 사람에게는,

사라지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진실하고, 가장 다듬어진 시간이 된다.

마지막까지 버티는 것만이 강함이 아니라,

제때 떠날 줄 아는 것, 제때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

영혼의 품격이라는 암묵적인 고백이 이 첫 문장 안에 들어 있다.


노을에 스며드는 태양, 몸을 태워 남기는 빛


“온몸 태워 / 노을에 / 스며드는 / 태양처럼”


태양은 하루 내내 빛을 쏟아붓고, 저녁이 되면 노을 속으로 스며든다.

이때 태양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하루 동안 한 일을 길게 설명하지도 않고,

어디 한 번 날 기억해 달라고 소리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다 타버린 마음으로

붉은빛 하나 남기고 서서히 물러난다.

시는 그 태도를 영혼의 길로 본다.

온몸을 태운다는 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끝까지 다 해보고,

그 마지막에 조용히 빛으로 녹아드는 일이다.

이 이미지는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하루를 마감할 때,

상처와 불만만 남기고 스러져가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마음에 노을빛 같은 잔향을 남기고 있는가.


세월에 순응하는 낙엽, 자연이 보여주는 떠남의 예절


태양에 이어 시인은 낙엽을 불러온다.


“온몸 던져 / 세월에 / 순응하는 / 낙엽처럼”


낙엽은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오히려 완성된다.

그의 역할은 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이 아니라,

떨어진 뒤에도 계속된다.

떨어진 낙엽은 흙이 되고,

또 다른 생명을 돕는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 된다.

여기서 ‘순응’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체념이 아니다.

때가 되었음을 알고,

자신의 자리를 아는 지혜에 가깝다.

한때는 햇빛을 먹고 푸르게 빛나던 잎도

어느 날 문득, 내려놓을 때를 안다.

버티지 않고, 조용히 떨어져 주는 그 태도가

이 시에서 말하는 영혼의 성숙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무대의 한가운데 있을 때보다

무대에서 내려와 다른 세대의 빛을 비춰줄 때,

비로소 삶이 둥글게 완성된다.


우주의 품,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는 모든 존재


“우주의 품에 / 존재하는 그 / 어떤 것들도 / 저마다 / 무언가 / 남기고 / 사라진다”


이 구절은 시의 시야를 한 번 더 넓힌다.

이제 무대는 개인을 넘어, 우주 전체로 퍼져나간다.

우주의 품이라는 표현은

존재를 둘러싼 더 큰 품, 더 넓은 질서를 떠올리게 한다.

그 안에 있는 어느 것 하나도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별은 다 타고나서 흩어진 먼지가 되고,

그 먼지가 모여 또 다른 별과 행성을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말, 표정, 손길, 선택 하나가

다른 사람의 삶에 작은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들이 모여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이 시는 말한다.

누구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는 방식에는 반드시 어떤 결이 생기고,

그 결이 바로 한 영혼의 초상화가 된다.


“무엇을 어떻게 남기고 떠날 것인가”라는 인생의 질문


“무엇을 어떻게 / 남기고 / 떠날 것인가”


이 한 줄은 시 전체의 중심축이다.

살면서 우리가 정말 깊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 하나를

매우 간결하게 던져놓는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물음은

재산이나 명예 같은 외적 성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방향을 잃는다.

보다 근원적인 것은

어떤 마음을 남기고 갈 것인가,

어떤 온도를 남기고 사라질 것인가의 문제다.

나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함께 일했던 이들의 마음에

나는 어떤 표정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이 시는 장황한 설명 대신

짧은 질문 하나로

생 전체를 흔들어 깨운다.


마지막 순간의 평화에 대한 염원


“마지막 모습이 / 얼마나 / 평화로울 수 / 있을까”


삶은 결국 ‘마지막 모습’을 향해 다가가는 길이다.

그 마지막이 평화로울 수 있는지, 없는지는

살아온 날들의 총합이 말해준다.

마지막 순간은 꾸밀 수 없다.

호흡이 가빠지는 그때,

억지로 미소를 짓는다고 해서

영혼이 평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평화로운 마지막은

살아 있는 동안 조금씩 마음을 정리해 온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고,

고마움을 표현할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집착할 것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하루를 쌓아온 사람에게 찾아오는 얼굴이다.

시인은 바로 그 지점을 묻는다.

“나는 마지막에 평화로운 얼굴을 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곧,

“그렇게 살아왔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온다.


‘미숙아’라 부르는 나의 영혼, 정직한 자기 인식


“아직은 / 미숙아 / 나의 영혼”


이 구절이 주는 울림은 깊다.

자기 영혼을 ‘미숙아’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대개 이미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이미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반대의 길을 택한다.

나는 아직 미숙하다고,

아직 배울 것이 많다고,

아직 사랑하는 법을 다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솔직함이 바로 성숙의 출발점이다.

자신을 미숙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조금씩 성장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 대목에서 시는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담담한 자기 성찰의 톤을 유지한다.

그래서 더 믿을 만하고, 더 따뜻하다.


세상 즐거움의 ‘순간성’과 영혼이 붙드는 것


“세상 / 즐거움은 / 순간이라고”


세상의 즐거움은 대부분 짧게 스쳐 지나간다.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풍경,

그 어떤 것도 오래 붙잡을 수 없다.

시인은 이 사실을 한탄처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한 인식으로 받아들인다.

순간이라서 헛된 것이 아니라,

순간이라서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시의 방향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순간 즐거움의 뒤편에서,

영혼이 무엇을 끝내 붙들고 가야 하는지 묻는다.

짧은 기쁨에 취해 살다 보면

정작 영혼의 나침반은 잃어버리기 쉽다.

시인은 그 흐름을 조용히 멈춰 세우며,

“진짜 오래가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을 초월한 ‘위대한 동행’이라는 신뢰


“죽음을 초월한 / 위대한 동행 / 뿐이라고,”


이 구절은 시 전체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부분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동행의 또 다른 방식이라는 믿음.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

하나님의 품이든, 우주의 품이든,

혹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절대적 존재와의 관계가

죽음 이후에도 계속된다는 깊은 신뢰가

여기 있다.

이 동행이 있기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이 동행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마지막 순간을 향해서도

조금은 더 평온하게 걸어갈 수 있다.

시인은 이 동행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위대한 동행”이라고만 말하고,

그 나머지는 독자의 믿음과 경험에 맡긴다.

오히려 이 여백이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가을 숲에서 나를 내려놓는 장면, 삶의 마지막 연습


“뚝뚝 지는 / 가을 숲에서 / 조용히 나를 / 내려놓는다”


가을 숲은 늘 떠남의 계절이다.

나무는 잎을 내려놓고,

바람은 온기를 내려놓고,

하늘은 여름의 푸름을 내려놓는다.


그 한가운데서 시인은

자신도 이제 무엇인가를 내려놓아야 함을,

흙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이 평화로운 영혼을 위하여

삶의 끝을 고민하는 시의 마지막 부분을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게 하는 삶의 물음표를 던지며 고백하는 시인의 깊은 고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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