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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김수환 추기경의 철학》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김수환 추기경의 철학 ----사람을 향해 피어오르는 하나의 숨〉


박성진 문화평론가


김수환 추기경을 생각할 때,

나는 언제나 먼저 ‘빛’이라는 단어보다

‘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누군가의 손등 위에

조용히 내려앉던 그분의 따뜻함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말보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숨결을 나누어 주는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분의 철학은

거창한 제도나 큰 울림의 문장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고통 앞에서

조용히 멈추어 서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존재의 깊은 자리----“사람은 그 자체로 귀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가장 많이 했던 말,

그러나 가장 어렵게 살아낸 말은 이것이었다.

“사람은 귀합니다.”

그분의 목소리에서는

도덕의 경고도, 교리의 명령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어떤 생명도

하느님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낸 존재라는

아주 단순한 진실이 잔잔히 흘렀다.

나는 가끔 그 말을 떠올릴 때

내 마음 깊숙한 곳이

한 조각 어두운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맑아지는 경험을 한다.

존재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그분의 철학의 첫걸음이었다.


낮아짐의 품격 ----“겸손은 스스로 작아지는 일이 아니라, 더 크게 듣는 일입니다.”


나는 김수환 추기경의 겸손을 ‘자기 포기’라 부르지 않는다.

그분의 겸손은

자기 자신을 줄여

타인의 고통이 더 크게 들리도록

귀의 길을 넓히는 방식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어도

그분의 시선은 언제나 길바닥의 사람들,

환한 미소 뒤에 숨은 상처를 향했다.

겸손은 그분에게

품위였고,

자비였고,

그리고 신앙의 숨결이었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영성-- “고통을 피하는 순간, 사랑은 작아집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상처를 멀리서 바라본 적이 없다.

그는 늘 아픈 자리 가까이로 걸어갔고,

그 자리에서 침묵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 침묵은 회피의 침묵이 아니라,

고통이 지나가는 길을

자신의 마음에 비워 자리 내어주는

사랑의 침묵이었다.

나는 그분이 고통과 마주할 때

한 인간이 얼마나 조용하게 단단해질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시대를 밝히는 양심, “어두운 곳에서 멈춰 서 있는 한 사람의 등이, 다른 이를 이끌어냅니다.”

그분의 양심은

깃발처럼 휘날리는 격렬한 것이 아니었다.

고요한 저녁 등불처럼

한 점에서 오래 켜져 있는 빛이었다.

역사가 혼탁할 때,

그 빛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사람을 향하는 길’로 이끌었다.

그분의 저항은

분노의 외침이 아니다.

존엄을 지키기 위한 조용한 ‘머묾’이었다.

그 머묾이

한 시대의 어둠을 가르는

가장 단호한 선언이 되었다.



사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결국 사람으로 돌아가십시오.”


추기경의 철학을 하나로 묶는다면

나는 이렇게 적고 싶다.

사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은 언제나 사람에게로 이어진다.

그분의 생애는

신학이 아니다.

‘사람으로 살아내는 신앙’이었다.

무수한 가르침 대신

단 한 가지 요청을 남기었다.

“사람에게로 돌아가십시오.

그 길 끝에 하느님도 함께 계십니다.”

그분의 철학은

결국 인간을 다시 깨우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어려운

사랑의 숨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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