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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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의 교정을 거닐며〉
동주의 교정을 거닐며
가을빛 어린 돌길을 밟다 보면
내 마음의 그림자가
조용히 따라온다.
나라 없는 학생의 걸음은
늘 조심스러워
풀잎 하나 스치는 일도
미안해진다.
강의실 창가엔
누군가 두고 간 연필이
저녁 햇살 속에서
가만히 놓여 있고,
도서관 창가 어딘가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가
작은 숨결처럼 번져온다.
그 소리에 마음이
조용히 흔들린다.
어둠이 스미면
교정의 나무들도
천천히 고요로 기울고,
나는 그 사이를 걸으며
말하지 못한 말들을
가슴 깊숙이 접어 넣는다.
오늘도
말없이 걷는 이 길이
언젠가 별빛으로 돌아오길,
내 작은 침묵이
누군가의 새벽을 비추길
살며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