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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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사람은 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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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살린 일곱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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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리면
특별한 설명 없이도 마음 한쪽이 차분해진다.
그의 미소, 눈빛, 말투가
이미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온기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일곱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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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귀합니다.
말이 짧을수록
그 말을 지탱하는 삶은 깊다.
이 평론은
추기경의 깊이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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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바라보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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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먼저 사람을 보고, 그다음에 세상을 보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어떤 사상이나 교리를 앞세우기보다
사람 한 명의 얼굴을 먼저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고단한 삶을 대할 때
그 삶을 판단의 자리로 끌어들이지 않았고
그 사람에게 도달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마음을 낮추었다.
그가 남긴 말과 행동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은
복잡한 논쟁보다
사람을 향해 열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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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동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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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눈을 갖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추기경의 눈물이다.
그러나 그 눈물은
동정의 표현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멀리서 바라보는 눈물도 아니었다.
그 눈물은
그 아픔 속으로 함께 들어가
자신의 마음에서 다시 흘러나온 것이었다.
이런 눈물은
위로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된다.
설명보다 더 크고
어떤 언어보다 진실하다.
그분의 눈물은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의 다른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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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어두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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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람의 이름을 지켜냈다
한국 현대사에는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폭력의 시대, 억압의 시대,
목소리가 지워지고 이름이 사라지던 시대.
그때
김수환 추기경은 싸움의 선두에 서기보다
무너진 사람들의 어깨를 먼저 감싸 안았다.
큰소리로 외치기보다
부서져 있던 사람들의 존엄을 붙들어 세우는 방식으로
시대와 맞섰다.
현실을 흔들고 싶다면
사람을 먼저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추기경이 건넨 위로는
정치적 전략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엄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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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중심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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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난한 사람을 ‘스승’이라 불렀다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한 이를 불쌍한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을 보았다.
추기경은 자주 말했다.
가난한 사람은 우리의 스승입니다.
이 말은 사회가 바라보던 중심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역사의 중심이
권력도, 영향력도, 성공도 아니라
사람의 얼굴 하나라는 것을
그는 조용히 증명했다.
그 중심을 바꾼 힘은
어떤 제도보다 강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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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를 입지 않은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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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한결같은 태도가 그를 높였다
추기경은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높은 말투를 쓰지 않았다.
자리에 기대어 말하지 않았고
항상 먼저 마음을 내주었다.
다른 사람을 낮추지 않고
두려움으로 몰지 않고
희망을 숨기지 않으려는 자세가
그의 권위를 만들었다.
그 권위는
직함에서 온 것이 아니다.
삶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그래서 추기경의 말은
세월이 흘러도 낡지 않는다.
오히려 시대가 힘들어질수록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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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남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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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떠났지만 그 말은 현재형이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능력으로 사람을 재고
속도로 사람을 평가하며
성공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려 한다.
이런 시대일수록
그의 말은 더 크게 되묻는다.
지금 당신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있는가.
이 물음은
어떤 변명도 끼어들 수 없는 질문이다.
사람을 귀하게 보는 일은
거대한 개혁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을
김수환 추기경은 평생에 걸쳐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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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나도 남아 있는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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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문장은 아직도 살아 있다.
사람은 귀합니다.
이 말은
한 사람의 신앙 고백이 아니다.
한 시대의 윤리였고
앞으로도 오래 이어질 기준이다.
이 문장을 기억하는 한
우리 사회는 완전히 어둡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
그 단순한 마음이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 전체였고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