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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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산다는 건
― 찬란한 시대의 별 윤동주 특집 평론〉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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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산다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먼저 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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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거창한 명예가 아니다.
작은 방, 낡은 책상, 밤늦도록 펜을 쥐고 있던
한 청년의 마른 손과 고요한 눈빛이다.
그가 남긴 시보다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시를 쓰기 위해 자기 자신부터 끝없이 심문하던
한 인간의 정직한 떨림이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은
문학사적 평가나 연구서의 언어가 아니라,
한 시인이 다른 시인을 오래오래 사랑해 온 마음으로 쓰는
긴 고백이자 감사의 기록이다.
나는 나의 평생을 통틀어
이 이름 하나를 중심으로 문학과 영혼을 배워왔다.
그 모든 생각을 한 번, 온전히 모아
지금 이 자리에 펼쳐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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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어둠 속에서 태어난 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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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은 흔히
식민지 시대의 비극적 청년 시인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그를 그렇게만 가두어 놓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의 시를 반쯤 오해한 셈이 된다.
그의 시는 시대의 어둠에서 태어났지만
어둠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어둠 한가운데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빛이 무엇인지를
한 줄 한 줄 새겨 넣은 사람이다.
별과 밤, 바람과 하늘,
그가 아꼈던 단어들을 떠올려보면
그것은 모두 시대를 정면으로 고발하는 언어가 아니다.
자기 영혼이 끝까지 버리지 않으려 했던
맑음과 양심의 얼굴이다.
그는 세상의 거대한 폭력과 불의 앞에서
웅변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내면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얼마나 정직한가,
나는 얼마나 부끄러움을 잃지 않고 있는가.”
그 물음 앞에서 그는 매일, 매 순간 자신을 심문했다.
그리고 그 심문의 기록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는 시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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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미학, 양심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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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세계를 설명하는 데
가장 자주 떠올리게 되는 단어는
역시 부끄러움이다.
그에게 부끄러움이란
연약함의 표현도, 자기 비하도 아니었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며,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기억해 낼 줄 안다는 말이다.
부끄러움은 양심의 체온이다.
많은 이들이 시대의 폭력에 익숙해지며
‘원래 그런 것’이라 말할 때,
윤동주는 끝까지 그 익숙함에 적응하지 않으려 했다.
시대에 익숙해지지 않겠다는 결심,
그것이 바로 그의 양심이었다.
윤동주 시인은 자기 안의 어두움까지도 숨기지 않았다.
질투, 나약함, 무력감.
그 모든 흔들림을
시 속에 고백처럼 드러내 놓았다.
그러나 바로 그 솔직함이
그를 누구보다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부끄러움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감시한다.
그 자기 감시가 깊어질수록
인간은 점점 더 성숙한 고독으로 나아간다.
윤동주의 시는 바로 그 고독의 기록이며,
그 고독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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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지금, 무엇 앞에서 부끄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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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잃어버린 이름들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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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밤과 별이 함께 따라온다.
그에게 별은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잃어버린 이름들,
지워진 얼굴들,
땅에서 마땅히 존중받지 못했던 존재들을
하늘에 다시 걸어 두는 행위였다.
별을 헤아린다는 것은
결국 존재를 세는 일이다.
살아 있는 이들뿐 아니라
이미 떠나간 이들,
이름 붙여지지 못한 이들까지
모두 기억 속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다.
그가 별을 바라보며 세어 가는 것은
자기 어린 시절, 가족, 친구,
나라 없는 백성들의 서러운 숨결이다.
밤하늘의 별들이 빛나는 동안
그는 그 빛 하나하나에
사람의 생을, 마음의 숨결을 얹었다.
그래서 그의 별들은
낭만적인 장식이 아니라
진지한 영혼의 호명이다.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빛 하나를 붙잡고자 했던
한 청년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우리 각자에게도
잔혹했던 자기 시대가 있다.
가정의 상처일 수도 있고,
사회와 국가의 모순일 수도 있다.
그럴 때, 별을 헤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떠올려 보는 일,
그것이 바로 윤동주가 남긴 기도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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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산다는 건, 자기 자신에게 먼저 엄격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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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윤동주를 따라 시를 읽고 쓰면서
한 가지 사실을 뼈저리게 배우게 되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날 서게 비판하는 재능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엄격해지는 용기라는 것이다.
그는 가난했고, 약했고,
거대한 역사를 혼자 되돌릴 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나에게만큼은
정직하고 싶다.”
이 결심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천하기는 가장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잘못은 쉽게 찾아내지만
자기 내면의 어둠은 끝없이 합리화한다.
윤동주는 이 합리화의 유혹을
끝까지 견뎌낸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먼저 자기의 마음을 묻고,
자신의 생각을 한 번 더 걸러내고,
그 후에야 언어를 꺼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선동의 언어가 없다.
대신 오래 숙성된 양심의 목소리가 있다.
그 조용한 목소리가
세월이 지나도 낡지 않는 이유는
그가 시대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였고,
그 고통을 화려하게 장식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마음의 거울 앞에
조용히 내려놓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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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매일같이 그 거울 앞에 서는 일이다.
거울 속 자신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일이다.
윤동주는 그 일을
너무 일찍, 그러나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해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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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시, 종교를 넘어선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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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에는
기도와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 믿음은
교리나 제도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영성은
인간의 존엄을 향한 가장 깊은 감각에서 출발한다.
타인을 향한 연민,
자신의 죄를 자각하는 고백,
온전히 맑은 하루를 살고 싶다는 소망.
이 모든 것들이 모여
그의 신앙을 이루고,
그 신앙이 다시 그의 시를 떠받친다.
그의 하나님은
권력의 편을 드는 신이 아니다.
약한 이들의 편,
눈물 흘리는 자의 편,
부끄러움을 알고 떨고 있는 영혼의 편이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종교적 선전이 아니라
가장 개인적인 양심의 언어이다.
그는 하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동시에 이 땅의 고통받는 이들을 함께 떠올렸다.
나는 이 점에서
윤동주를 단지 기독교 시인으로만 부르기를 주저한다.
그는 종교를 넘어
영혼의 투명함을 향해 걸어간 사람이다.
그의 시는 하나의 신앙 고백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대한 가장 깊은 예의였다.
영성이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끝까지 붙들겠다는 의지이다.
사람의 목숨, 자유, 양심, 사랑.
그는 이 네 가지를
어떤 위험 속에서도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의 시는, 오늘의 언어로 말해도,
여전히 가장 뜨거운 인권의 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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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시대를 건너 우리에게 오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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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숨을 거둔 뒤,
한반도는 둘로 갈라졌다.
그가 꿈꾸던 조국은
현실 속에서 더 멀어졌고,
그의 시는 분단의 세월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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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단과 통일을 노래하는 시를 쓰며
자주 그를 떠올린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이 남과 북의 오랜 상처를
어떤 어조로 바라보았을까.
아마 윤동주 시인은
어느 한쪽의 선전 도구가 되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대신 양쪽의 서러운 얼굴들을
똑같은 인간으로 바라보며
그 이름 하나하나를 하늘에 다시 올려두려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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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문학을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전쟁의 참혹함과 정치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윤동주의 시는
그 이전에 “인간의 마음”을 먼저 묻는다.
너는 지금 이 현실 앞에서
얼마나 정직한가,
얼마나 부끄러움을 잊지 않고 있는가.
오늘 우리가 통일을 말할 때
이 질문을 빼놓는다면
그 통일은 껍데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국경이 사라지기 전에
먼저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야 한다는 것,
그 마음의 시작이 바로
양심과 부끄러움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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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분단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그의 시는 분단 시대를 건너
우리에게 가장 깊은 영혼의 과제를 건넨다.
“먼저 인간이 돼라.
먼저 양심을 지켜라.
그러고 나서 조국을 말하라.”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