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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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낭만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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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겨울밤
첼로의 깊은 울림이
창가로 스며오고
브러시 스네어처럼
부드럽게 번져
내 마음을 감싸고
추운 계절이지만
내 마음은
포근히 풀리고
작은 음 하나
잠든 방 안에
빛처럼 남는다
브러시 리듬이
내 마음의 불을
살짝 덥혀 준다
겨울의 재즈는
말이 아닌 온기
그냥 여기
내 곁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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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낭만재즈>--- 음악평론
브러시 스네어가 만들어낸 겨울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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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겨울을 단지 차가운 계절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겨울을 ‘음악이 따뜻함을 증명하는 무대’로 본다.
첼로의 울림이 창가를 스며들 듯,
겨울의 침잠 위로 감정이 번져가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감정을 냉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고 섬세하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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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는 낮은 음역의 악기다.
그 깊이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정서의 층위를 만든다.
겨울밤의 정적 위에서 첼로의 울림이 퍼질 때
그 깊이는 마음 한 곳에서 응어리처럼 남아 있던 감정을 일으킨다.
따뜻함은 화려함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된 울림에서 온다.
바로 그 울림이 겨울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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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러시 스네어는 소리를 과장하지 않는 악기다.
철사솔이 스네어 위를 쓰다듬듯 지나갈 때
음악은 ‘존재하지만 소리 지르지 않는 온기’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재즈의 본질이기도 하다.
강한 주장이 아니라 미묘한 정서를 건드리는 방식.
시인이 “살짝 덥혀 준다”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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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재즈는 음악적으로도 흥미롭다.
즉흥성이 과장되지 않고,
화려함보다 침잠이 앞선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주는 고요함이
재즈의 잔잔한 리듬과 맞물리면서
‘정서의 온도’를 만든다.
겨울의 재즈는 귀의 음악이 아니라
‘마음의 공간’에 남는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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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음악의 묘사가 “감정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소리가 들려왔다, 느낌이 생겼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 속 화자는 겨울밤이라는 감정적 상태와
재즈가 주는 따뜻한 결을 동일선상에 놓는다.
“말이 아닌 온기”라는 구절은
음악이 감정을 움직이는 가장 순수한 방식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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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음 하나가 방 안에 남아 있다는 표현은
음악의 시간이 사라져도
감정의 여운은 오래 남는다는 뜻이다.
음악은 순간의 소리이지만
그 소리를 들었던 마음의 상태는
어둠 속에 ‘빛처럼’ 남는다.
시인은 이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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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고독은 흔히 차갑다고 말하지만
사실 겨울은 마음의 부피를 크게 만든다.
따뜻함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겨울은 외로움의 계절이 아니라
‘온기를 찾는 계절’로 등장한다.
재즈는 그 온기를 조용히 제공하는 존재다.
그래서 “곁에 있어 줘”라는 마지막 행은 애절이 아니라 따뜻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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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음악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음악이 감정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변화는 조용하고 섬세하며
소리보다 상태가 앞선다.
이 시가 겨울을 아름답게 만든 것은
겨울의 차가움 때문이 아니라
재즈가 그 차가움 속에서 만들어내는
‘말 없는 온기’ 때문이다.
결국 겨울의 낭만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따뜻함이
함께 할 때에 낭만과 감성이 흐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