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박성진 《박진우 시인-아들아》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아들아〉


시인 박진우


아버지의 시간은

아직 버튼 하나 없는 바람이었지.


해가 지면 노을이 문을 닫았고,

별이 뜨면 황홀한 대형 스크린처럼

펼친 우주 속에

잠이 찾아오곤 했지.


깊은 샘이 길어 올린 두레박,

한 모금의 샘물.

친구의 체온이 섞이고 맨발이

흙을 신던, 카톡 아이콘이 아닌

진짜 친구 웃음이 들판에 피어났지.


배움은 사랑을 지게에 지신

그님의 삶이었고,

스승의 눈빛이 자존의 뿌리를 내리며

하늘의 수치심과 흙내음에 존엄이

머물던 날들.


그래서 말한다.

우리가 살아낸 그 시간은

잊히는 낡은 시절이 아니라,

인간미라는 꽃이 가장 향기를 품고

피던 계절이었다고




박성진 문화평론


이 시는 과거 이야기를 꺼내지만, 사실하고 싶은 말은 지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버튼 없는 바람”이라는 첫 줄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그 시절은 불편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웠던 겁니다.


밤이 되면 노을이 문을 닫고 별이 뜨던 장면.

그건 풍경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였습니다.

사람이 자연을 보며 쉬던 시대, 마음이 숨을 쉬던 때였죠.

그때의 잠은 피곤한 하루의 마무리가 아니라, 우주 품에 안겨드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샘물, 흙길, 맨발.

어찌 보면 소박한 장면들인데, 소박해서 좋았던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가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말보다 체온이 먼저 닿던 시대.

웃음이 아이콘이 아니라 얼굴로 피어나던 시절.

그래서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배움은 사랑을 지게에 진 삶이었다.”

이 한 구절이 이 시 전체를 품고 있습니다.

지식보다 사람이 먼저였고,

성적보다 자존이 먼저였으며,

결국 배움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그걸 우리는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스승의 눈빛 하나가 제자의 가슴에 뿌리를 내려주던 시절,

이 표현은 그저 회상이 아니라,

지금의 교육과 인간관계가 얼마나 메말라 있는지를 은근히 건드리는 대목입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지난 시간을 ‘옛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낡은 시대’라고 부르지도 않죠.

“인간미라는 꽃이 가장 향길 품고 피던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그건 시의 결론이 아니라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서 인간미를 찾고 있는가?”


버튼 하나로 관계를 대신하고,

문자가 마음을 대신하고,

속도가 기준이 되어버린 오늘.

우리 마음은 점점 더 외롭고 말라가고 있습니다.

그걸 이 시는 조용하게 알려줍니다.

이 시는 과거를 찬양하려고 쓰인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인간미를 되찾기 위한 기억입니다.

추억놀이가 아니라 성찰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나면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보다

‘오늘의 나’에게 다시 묻게 됩니다.


“나는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나는 내 곁의 사람과 온기를 나누고 있는가?”


이 질문이 남는 시는 좋은 시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가진 아름다움은

말이 크거나 복잡해서가 아니라

흙냄새가 살아 있어서입니다.

그 은은한 향기가 오랫동안 남습니다.

그게 이 시의 온기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박성진 시인-겨울의 낭만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