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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변희자 시인-마음의 길 3부작》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마음의 길 3부작〉


화해 / 바람 / 관심 /--- 변희자 시인

소설 평론가


〈화해〉


용서란 하기 전엔

가장 어려운 일


하고 나면

제일 쉬운 일


그 짧은 순간

마음이 놓이는 일



〈바람〉


기다림이란

오지 않는 전화에

귀 기울이는 일


천근만근 같은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


내 마음

나도 모르게

너그러워지는 일


〈관심〉


믿음이란

만남 흔치 않아도

서로 손을 잡는 것


잊은 것 같아도

그 손을 거두지 않는 것


마음을 반쪽씩 나누어

정을 쌓아 가는 것



마음의 문학, 관계의 성찰로 이어지다


이 3부작은 감정의 흐름을 묘사한 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음이 걸어가는 길을 다룬 작품이다.

세 편은 각각 다른 정조를 담지만,

결국 인간관계가 성숙해 가는 단계를 보여주었다.


<화해>

용서의 역설을 담담하게 꺼내다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용서를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마음의 경계가 활짝 열리는 순간으로 그린 점이다.


“하기 전엔 가장 어려운 일”


“하고 나면 제일 쉬운 일”


이 두 구절 사이에는

자존심, 자기 보호, 상처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

그러나 시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말없이 ‘짧은 순간’이라는 표현으로

심리적 변화를 제시하였다.

대단한 철학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본질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용서는 결심이 아니라 해방이다.

“마음이 놓이는 일”이라는 표현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인간미의 순도이다.


〈바람>---기다림의 무게가 온화함으로 바뀌는 과정


‘기다림’은 사랑의 문제이면서,

삶의 본질적 태도이기도 하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일,

천근만근 같은 시간,

그러나 결국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시는 기다림의 은밀한 통증을

억지로 감정 과잉으로 풀지 않는다.


대신 두 줄로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시간을 포착한다.


이 작품의 백미는 마지막 연이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게

너그러워지는 일”


기다림은 사람을 소모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딱딱한 철학이 아니라

세월의 온기가 들어 있다.


〈관심〉 — 정(情)이 쌓여가는 생활의 철학


관심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며,

시간이 지나도 손을 거두지 않는 지속성이다.


시인은 ‘믿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살아 있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손을 잡는 것”


“거두지 않는 것”


“정을 쌓아가는 것”


여기에 있는 것은

거창한 사랑이 아니라,

일상의 정직한 지속성이다.


믿음은 말로 쌓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반쪽씩 나눠주는 것이라는 표현은

관계의 최종 정점이다.



종합평론>

마음의 길을 걸어가는 문학적 여정


〈화해〉는 관계의 시작,

〈바람〉은 감정의 성숙,

〈관심〉은 관계의 지속을 말한다.


세 편은 각각 느리고 절제된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안에는 인간의 가장 깊은 진실이 흐른다.


말이 아닌 마음의 움직임


논리가 아닌 온도의 변화


지식이 아닌 성숙의 실천


이 시들은 어떤 사랑의 화려함도,

어떤 과잉된 감정도 기피한다.

그러나 이 절제는 퇴색이 아니라

단단한 감성의 결정체다.

시의 깊이는 높고,

문장 길이는 짧다.

이것은 농축된 시학이며,

“짧은 시의 긴 울림”이라는 최상의 미학이다.


변희자 시인의 선물 같은 이 3부작은

감정의 묘사가 아니라 마음의 철학이며,

관계의 심리가 아니라 사람의 품격이다.

문장들이 담백하며 섬세함이 돋보인다. 담백하고 깊으며

짧기에 오래 남는다.

단어가 적어도 진실함으로 가득하다.

이 작품은 생활 시(生活詩)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영혼의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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