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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주광일 시인-겨울엽서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겨울엽서〉

주광일


짧았던 가을이 허허롭게 가버리고,

겨울이 시작되면서 나의 절망은 더욱더 깊어갔어요.


절망의 끝이 전혀 보이질 않는 요즈음입니다.

땅이 흔들리고 차디찬 눈폭풍이 불어와도

나는 그저 속수무책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최악의 시기가

최선의 결과를 갖고 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내 안의 절망은

더욱더 절망적으로 깊어갔고,

나는 내 마음의 기이한 모습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서어서

절망뿐인 이 겨울의 끝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Ⅰ. 겨울의 시작과 ‘허허로움’의 감각


시인의 〈겨울엽서 〉는 ‘허허롭게 가버린 가을’이라는 첫 문장부터 독자의 마음을 당긴다. 계절의 이동은 단순한 자연의 리듬이 아니다. 화자의 내면 풍경과 정확히 포개어진 심리적 지형이다.

가을은 본래 ‘수확’과 ‘정리’의 계절인데, 시인은 그 계절이 너무 짧아 “허허롭게” 빠져나갔다 하고, 겨울은 그 빈자리에 곧바로 “절망”을 들여세운다.

이 감정의 급격한 전환은 계절 변화보다 더 급한 심리의 무게를 드러낸다.



이 시의 첫머리가 좋은 이유는, 절망을 한 번에 선언하지 않고 ‘가을의 결핍’을 먼저 말하면서 점차 독자를 겨울의 깊이에 데려가기 때문이다. 절망은 항상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떠난 뒤에 생긴 빈틈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자연현상보다 깊은 내면의 진동



“땅이 흔들리고 눈폭풍이 불어와도 나는 속수무책”이라는 구절은, 절망이 바깥의 재난보다 더 거세다는 고백이다. 흥미로운 것은, 외부 세계의 위협보다 내면 새계의 절망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땅의 흔들림이든, 폭풍의 위력이든, 그것을 견디는 일은 인간에게 쉽지 않다. 그러나 화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바깥의 시련은 견딜 수 있지만, 마음의 어둠은 어디에도 기대어 서 있을 곳이 없다.”


이 지점에서 이 시는 단순한 계절 묘사에서 벗어나 인간의 실존적 무력감을 정면으로 다룬다. 겨울은 자연의 계절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계절이 되었다.



‘최악이 최선이 된다’는 말의 공허함



사람들은 흔히 “지금이 최악이니까 곧 좋아질 것”이라는 말로 절망하는 사람을 위로하려 한다. 하지만 이 말은 그저 삶을 견디기 위한 주문일뿐, 절망을 실질적으로 덜어주지 못한다.

시인은 이 문장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말은 현실보다 이상을 먼저 말하기 때문이다. 화자의 절망은 ‘지금 여기의 삶’을 견딜 수 없는 데에서 비롯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을 인정받는 일이다.



이 시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바로 그 지점이다.

희망의 언어가 아닌, 절망의 진실을 기록한다는 용기.


절망의 ‘기이한 모습’을 바라본다는 자기 성찰



“내 마음의 기이한 모습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문장은 겨울이라는 계절이 가져다준 절망 속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작업을 말한다.

절망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거꾸로 자신의 본모습을 가장 또렷하게 보게 해주는 상태이기도 하다. 무언가가 너무 아플 때, 우리는 오히려 더 맑아진다. 시인은 그 지점을 포착한다.

여기에는 ‘두려움’과 ‘각성’이 동시에 있다.

마음의 낯선 구석을 들여다본 사람에게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변화가 찾아온다.

절망은 그 자체가 고통이지만, 동시에 자기 인식의 통로가 된다.



겨울의 끝을 향한 갈망인가 도피인가, 도달인가


시의 마지막 문장은 간절함에 가까운 기원이다.


“어서어서 절망뿐인 이 겨울의 끝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다.

절망의 끝을 ‘빨리’ 만나고 싶다는 것은, 그 절망을 외면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확인하고 싶다는 의미에 가깝다.

절망을 끝까지 바라봐야만 다음 계절로 갈 수 있다는 내면의 결심이 숨어 있다.

따라서 이 마지막 구절은 삶을 포기하는 외침이 아니다. 절망을 통과해 가려는 인간의 본능적 의지를 드러낸다.



‘겨울엽서’라는 제목의 힘은 절망의 기록을 보내는 행위다.


엽서는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문장이다.

‘겨울엽서’라는 제목은 절망을 혼자 앓지 않고 세상에 건네는 행위인 동시에 나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보낸다는 희망의 몸짓을 품고 있다.

절망을 쓰고 보낸다는 일은 이미 절망이 완전히 자신을 삼켜버리지 못했다는 증거다.

엽서라는 형식은 짧지만, 그 짧음 속에 “살아 있으니 기록한다”는 선언이 들어 있다.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겨울엽서〉는 절망을 미화하지 않았다.

희망을 성급히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겨울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는 한 인간의 내밀한 독백을 전한다.

그 진실함 때문에 이 시는 위로를 얻는다.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이 아니다.

“당신이 겪는 겨울도 이렇게 깊고 고독하구나”라는 사실상의 공유이다.

이 시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바로 그 ‘정직한 말하기’에 있다.

절망을 꾸미지 않고, 피하지 않고, 조용히 응시하였다

겨울의 끝은 아직 멀었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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