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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 김석인 시인-오르락내리락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오르樂 내리樂


夕江 김석인


오를 때는

한 걸음 먼저가 아니라

한 걸음 바르게 가 더 중요하다.

손잡이를 꼭 쥐고

발 디딜 곳을 확인하는 그 마음이

나를 지켜준다.


내릴 때는

성급한 발걸음이

작은 돌부리에도 넘어지기 쉽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낮춰 보며

자기 몸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

끝까지 안전하게 도착한다.


오르樂 내리樂-

인생도 길도 다르지 않다.

조심함은 두려움이 아니라

나와 이웃을 살리는 지혜임을,


오늘의 한 걸음이

내일의 행복을 지켜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조심함이 삶을 지키는 방식>


이 시는 빠름과 앞서감을 미덕으로 삼아온 현대 사회에 대하여 조용하지만 단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흔히 ‘얼마나 빨리 오르느냐’, ‘얼마나 먼저 도착하느냐’를 성취의 기준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이 시는 그 기준을 정면으로 비켜간다.

“한 걸음 먼저”가 아니라

“한 걸음 바르게”라는 말속에는 속도의 논리를 내려놓고 삶의 윤리를 붙잡으려는 태도가 담겨 있다.


오르는 장면에서 강조되는 것은 힘이나 야망이 아니라 ‘확인하는 마음’이다. 손잡이를 쥐고, 발 디딜 곳을 살피는 행위는 단순한 안전 수칙을 넘어, 자기 삶을 함부로 다루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여기서 ‘나를 지켜준다’는 말은 외부의 보호가 아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태도가 곧 보호가 된다는 깨달음으로 읽힌다.


내리는 장면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인생에서 내려오는 순간은 흔히 실패, 퇴장, 혹은 쇠락으로 오해되기가 쉽다. 그러나 이 시는 내려감의 순간에 오히려 더 깊은 주의를 요청한다. 성급함이 위험이 되는 이유는, 높이보다 마음이 먼저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기 몸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라는 구절은 자기중심적 태도가 아니라, 끝까지 삶을 책임지는 태도를 가리킨다.

끝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는 사람은 늘 겸손한 속도로 걷는 사람이다.


제목에 쓰인 ‘오르樂 내리樂’이라는 한자어는 이 시의 철학을 함축한다. 오름과 내림이 모두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삶의 위계와 우열을 해체한다. 성공만이 기쁨이 아니다. 물러남과 낮아짐 또한 온전한 삶의 일부라는 관조가 네 글자 안에 담겨 있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조심함을 두려움과 분명히 구분한다. 조심함은 움츠러듦이 아니라 관계를 살리는 지혜이며, 나 혼자만의 안전이 아니라 이웃까지 품는 윤리적 태도이다.

그래서 이 시는 개인의 처세를 넘어 공동체의 삶의 태도까지 확장된다.


이 시는 거창한 교훈을 외치지 않는다. 오늘의 한 걸음을 제대로 딛는 것이 내일의 행복을 지킨다고 말할 뿐이다. 그 단순한 진실을 다시 믿게 만드는 힘이다. 그것이 이 시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빠르지 않아도 좋고, 높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단정한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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