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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이인애-검은 늑대와 붉은 암여우의 사랑》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다정 이인애

세태해학 풍자 시


검은 늑대와 붉은 암여우의 사랑



무풍지대에 회오리바람이 분다

로맨스가 아닌 종말로 가는 위장 연애


서로의 목적을 숨긴 채 삐걱대며

야누스의 웃음 뒤에 가린

가면 쓴 사랑 놀이극


늑대의 발톱이 빛에 반사된 순간

칼날은 외려 부메랑 되어

늑대의 염통에 깊숙이 박힌다


교성이 처량한 비명으로 변했다

아홉 개 꼬리마다 불이 붙은 채

삼십육계 줄행랑치는 붉은 암여우

환상은 허무의 재가 되어 순삭 된다


어쩌랴 제 꾀에 제 무덤을 판 셈이니

헐 값에 빼앗긴 땅을 두드리며

오열해도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되어버린 야합

연이어 초강력 토네이도가 몰아친다




해학평론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가장한 정치극, 혹은 연애를 가장한 권력 거래를 정면으로 조롱한다. 제목부터 이미 정직하다. 늑대와 여우가 만났는데, 이걸 로맨스로 믿는 쪽이 순진한 것이다.

시는 그 순진함마저 포함해 함께 웃어버린다.


무풍지대라는 말은 안전지대를 뜻하지만, 이 시에서 무풍은 거짓이다.

바람이 없다고 믿는 순간, 회오리는 이미 계약서에 서명되어 있다. 사랑이 아니라 위장 연애라는 선언은 독자에게 친절하다.

“속지 말라”라고, 이건 꽃이 아니라 덫이라고 미리 알려주는 시인의

발상은 경쾌하고

한편으론 씁쓸하다.

상처받은 위장연애는 연애로 국한되지 않음을 내포하고 있다. 삶의 다양한 현장에서 위장술을 펼치는 여우의 꼬리는 불붙을 것이다.


야누스의 웃음과 가면은 이 관계의 핵심 장치다. 앞에서는 연인, 뒤에서는 계산기. 해학은 여기서 작동한다.

이 시는 분노하지 않는다. 대신 씁쓸하게 웃는다. 왜냐하면 이런 관계는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늑대도 여우도 특별한 악인이 아니다. 익숙한 얼굴을 가진 보통의 욕망으로 읽힌다.


가장 해학적인 순간은 발톱과 부메랑의 장면이다. 상대를 해치려던 무기가 자기 심장에 꽂히는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우습다.

권산 징악의 악의가 실패할 때 생기는 희극의 연출이다.

그것이 바로 이 시의 웃음이다.

웃음은 크지 않지만 정확하다. “그러게 왜 그렇게까지 했니”라는 탄식 섞인 웃음이다.


붉은 암여우의 도주 장면은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꼬리에 불이 붙은 채 달아나는 모습은 우화의 문법을 빌렸다.

계약서만 생각하며 사는 여우는 물질의 탐심으로 내면의 세계는 타락한 인간을 상징한다. ‘순삭’이라는 단어 하나로 현재로 끌어온다. 이 지점에서 시는 무거워질 뻔한 도덕극을 다시 해학으로 돌려세운다. 허무는 재가 되고, 재는 웃음 뒤로 흩어진다.


마지막의 사필귀정과 토네이도는 교훈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냉소에 가깝다. 정의가 실현되어서가 아니라, 욕망이 서로를 물어뜯다 자멸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선악의 승리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계산이 틀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 작품의 해학은 웃기려고 애쓰지 않는 웃음에 있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끝나는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늑대와 여우가 스스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시를 읽고 남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씁쓸한 미소다.

가면을 쓴 야누스는

우리 주변에 많음을

경고해 주는 시인의 발상이 신선하다

그 인식 자체가 이 시의 가장 날카로운 풍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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