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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이인애 시인-모순 <矛盾>》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모순 矛盾


다정 이인애


요지경 세상이라더니

똥 묻은 개들이 줄지어 서서

겨 묻은 개를 불러 세우고

도덕 강의를 시작한다


입은 정의를 말하고

손은 탐욕을 숨기지 못한 채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확성기를 더 키운다

이쯤 되면

아이러니도 피곤해진다


넘쳐나던 시절에는

먹다 남긴 양심도 많았고

잘 입은 도덕은

옷장마다 걸려 있었다

이젠

자물쇠 채운 음식물통 앞에서

배부른 기억만 서성인다


G7의 영광은

기념사진 속에만 남고

현실은

국제통화기금보다 깊은 곳에서

아직도

바닥을 찾는 중이다


큰 나라의 관세폭탄 앞에서

눈 가리고 아옹,

책상 위 보고서는 바쁘고

공장은 조용히 국경을 넘는다

남은 것은

끊긴 생산과

말만 많은 대책


문 닫는 가게들 사이로

커피 향 대신

한숨이 퍼지고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묻는다

이제

인간은

어디에 서야 하느냐고


희망은 있느냐고?

있다면

그것도

이중 잣대로 재단될까

문득

웃음이 먼저 새어 나온다




이 시를 읽자마자 웃음이 먼저 나왔다.

크게 웃은 건 아니다.

그냥, 순간적으로.

이상하게 그 웃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웃고 나서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 내가 왜 웃었지를--

그 생각이 뒤늦게 따라왔다.

이 시를 읽는 동안 나는

나서지도 않았고, 맞서지도 않았고,

모른 척 고개를 돌리며 지나가던 쪽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웃음이 먼저 나온 뒤, 곧바로 부끄러워졌다.


“똥 묻은 개들이 줄지어 서서”라는 장면은 세서 웃긴 게 아니다.

너무 익숙해서 웃기는 것이다.

뉴스에서, 회의에서, 성명서에서,

비슷한 장면을 너무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음이 나오고,

그 웃음은 곧 피로로 바뀐다.

이 시의 말대로, 아이러니도 이미 지쳐버린 상태다.

입은 정의를 말하고 손은 탐욕을 숨기지 못한다는 대목에서

나는 함께 공감한다.

설득당해서가 아니라, 많이 본 장면이라서.

특히 “확성기를 더 키운다”는 말이 오래 남는다.

말이 커질수록 진실이 선명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리만 커진다는 걸

이 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넘쳐나던 시절”을 떠올릴 때 마음이 잠깐 흔들린다.

그러나 그 회상은 따뜻하지 않다.

먹다 남긴 양심, 옷장에 걸린 도덕이라는 표현에서

그 시절의 윤리마저 가볍게 느껴진다.

잘 살 때의 도덕은

쉽게 말할 수 있었고,

필요 없으면 벗어둘 수 있었던 옷 같았다.


자물쇠 채운 음식물통 앞에서

배부른 기억만 서성인다는 구절에서는

말이 없어지게 되었다.

지금의 결핍보다,

있었던 것을 떠올리는 순간이 더 서늘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설명되기보다 그냥 남는다.


G7, 국제통화기금 같은 말이 나올 때

시야는 개인에서 사회로 넓어지지만,

기분은 웅장해지지 않는다.

기념사진 속의 영광과

아직도 바닥을 찾는 현실 사이에서

방향 감각이 흐려진다.


보고서는 바쁘고 공장은 조용히 떠난다는 대목에서

분노보다 체념이 먼저 온다.

말은 늘 많았고,

그 사이에서 삶은 소리 없이 빠져나갔다는 느낌 때문이다.


후반부에서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묻는 장면에서는

잠깐 멈추게 된다.

기술이 묻고, 인간이 대답하지 못하는 장면이 쓸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디에 서야 하느냐고”라는 질문이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이 시는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웃음으로 끝난다.

웃지 않으면 울어버릴 것 같아서 나오는 웃음.

그래서 이 웃음은 가볍지 않은 것이다.

체념 같기도 하고,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신호 같기도 하다.


읽고 나서 이렇게 말하게 된다.

그래도, 아직은 웃고 있구나.

그 웃음이 이 시의 해학이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시로 표현한

시대의 모순의 시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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