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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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진 웅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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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순영
스스로 배불리 먹고
목을 축이기 위해
우린 일생토록 땀 흘리며
행복이란 웅덩이를 파네
그러나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라네
웅덩이가 터진 것을
보고 듣고 깨달아
나무 십자가를 거쳐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
웅덩이의 터진 곳에
말씀의 돌을 하나 둘 쌓으면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가 고인다네
무수한 별들이 몸을 적시는
사슴들이 와서
물을 마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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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진 자리에서 시작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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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애써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의 뒷모습에서 시작한다.
먹고살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는 평생 웅덩이를 판다.
땀을 흘리고 시간을 들여, 물이 고이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시인은 말한다.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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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문장이 시의 중심이다.
노력의 부정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자각에 가깝다.
아무리 정성 들여 파도, 인간의 웅덩이는 오래 물을 담지 못한다는 사실.
이 깨달음은 절망이 아니다. 방향 전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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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웅덩이가 터진 사실을
“보고 듣고 깨닫는다”라고 말한다.
외면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십자가를 지난다.
이 장면은 교리를 설명하기보다
자기 힘으로 채우려던 삶을 내려놓는 순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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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이후의 태도다.
시인은 기적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터진 웅덩이에
말씀의 돌을 하나씩 쌓는다고 말한다.
급하지도, 요란하지도 않다.
믿음이란 그렇게
하루하루 쌓아 올리는 자세임을 조용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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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서 시는 더 넓어진다.
별빛이 물 위에 내려앉고,
사슴들이 와서 그 물을 마시고 있다.
이 물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차지하는 물이 아니다. 나누어지는 물이다.
그래서 이 생명수는
소유가 아니라 머무름의 선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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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진 웅덩이〉는 말한다.
우리가 실패했다고 여긴 자리,
텅 비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곳이
어쩌면 생명이 고일 수 있었던 자리였다고.
채우려 애쓰던 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별이 물에 비치고
사슴은 고개를 숙인다.
이 시는
터진 웅덩이를 슬퍼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를
가만히 보여주는 무수한 별들이
목을 축이는 시로 서정의 끝을
여운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