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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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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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옥 시인
떠나간 기차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눈 오는 날 가로등 아래/
서성거리는 사내가/
캄캄한 밤하늘에 별을 묻고,/
피 묻은 역사 속 주어진 평행선 레일을 따라간다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간이역 앞에서/
눈 맞은 낙엽이 땅바닥에 누워 눈물짓는다/
찬바람을 견디며 절규하는 선홍빛 상처들,/
바위벽에 부딪쳐, 아픔을 쓸어안고 몸부림한다
경춘선 열차는 다시 시간 속으로 떠나간다
하얀 눈 위의 레일 위에선,/
죽음이 삶과 함께 굴러가고 있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의 길도 두 갈래일까
북새바람이 흰 눈을 쓸고 간다/
눈 위에 남겨진 찬 기억 속 새들의 발자국,/
번뇌를 헤적이다, 슬픔을 다독이곤 떠나질 않는다,/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깨어나야 할 봄을 기다리며
열차가 서야 할 종착역을 생각하니/
허공조차 따스해진다,/
평생 쌓아 올린, 빛나는 욕탐의 탑도/
임종처럼 덧없이 무너져, 버릴 일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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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자리에서 시간을 바라보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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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열차〉와 정근옥 시 세계의 비교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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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옥 시인의 시 세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이동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지만, 그 핵심에는 언제나 도착하지 않는 인간이 서 있다. 〈경춘선 열차〉는 이러한 정근옥 시의 특성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작품으로, 이전 작품들에서 반복되어 온 주제와 이미지가 한층 응축된 형태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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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옥 시인의 다른 시들에서도 길, 바람, 눈, 역사라는 이미지들은 반복된다. 그러나 그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이 이미지들이 정서적 슬픔의 배경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경춘선 열차〉에서는 동일한 이미지들이 단순한 분위기를 넘어 윤리적 질문의 장치로 전환된다. 특히 “피 묻은 역사 속 주어진 평행선 레일”이라는 구절은, 개인적 고통을 사회적·역사적 구조와 분리하지 않는 시인의 성숙한 시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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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역시 정근옥 시 세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간이다. 이전 작품들에서 간이역은 고독의 상징, 혹은 지나간 삶의 흔적에 가까웠다면, 이 시에서는 역사의 침묵이 응결된 장소로 기능한다. 사람이 없는 간이역 앞에서 눈물짓는 낙엽과 상처들은, 말하지 않는 증언자로서 존재한다. 이는 정근옥 시가 점점 인간의 내면에서 사회의 기억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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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비교적 변화가 읽힌다. 정근옥은 늘 자연을 사랑했지만, 초기 작품들에서는 자연이 인간의 감정을 위로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경춘선 열차〉에서 자연은 더 이상 위안의 대상이 아니다. 눈, 바람, 새의 발자국은 기억을 지워버리지 않고 끝내 남겨두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는 슬픔을 극복하는 시가 아니라, 슬픔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태도의 변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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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이전 작품들에서 죽음은 상실의 끝이나 허무의 이미지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 작품에서는 “죽음이 삶과 함께 굴러가고 있다”는 인식을 통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십자가의 두 갈래 길은 선택의 문제이면서도, 인간이 끝내 판단할 수 없는 질문으로 남는다. 정근옥 시인은 여기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 자리 자체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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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드러나는 종착역의 상상은, 정근옥 시 세계의 중요한 변곡점이다.
이전 시들에서 종착은 상실의 이미지에 가까웠다면, 여기서는 비움과 내려놓음의 순간으로 전환된다. 욕 탐의 탑이 무너지는 장면은 패배가 아니다. 생의 무게를 내려놓는 윤리적 선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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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경춘선 열차〉는 정근옥 시 세계의 반복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그 반복을 넘어서는 작품이다. 이 시는 떠난 것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남겨진 자가 어떻게 시간을 견뎌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 태도, 바로 그 지점에서 정근옥 시인의 문학적 깊이는 한 단계 더 진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