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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변희자 시인-그믐달이 알아버린 비밀 》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그믐달이 알아버린 비밀

변희자 시인 소설 평론가


비밀 하나가

잠결처럼 기울어

그믐달의 어둠에

미끄러졌나 보다


감나무 끝

마지막 붉은 감 하나를

두 손으로 받치듯

달은

밤의 균형을 지키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그믐달이 나를 따라오며

말 대신

몸을 숨기며 윙크를 한다


나는 달의 귀를

숨결처럼 잡아

속삭였다


초승달에게는

아직 말하지 말아요


그 말에

그믐달은

나무에 오르려던 몸짓을 멈추고

내 어깨로 기울어

애끼손가락 하나를

밤에 걸어두었다


비밀은

달빛에

숨어버렸다




이 시는 처음부터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무언가를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비밀은 잠결처럼 기울어, 말없이 어둠으로 들어간다.

읽는 사람은 곧 느끼게 된다.

아, 이 시는 답을 주려는 시가 아니구나.


그믐달은 이 시에서 조용히 중심을 잡고 서 있다.

이미 다 찬 달도 아니고, 막 떠오르는 달도 아니다.

물러날 준비를 하면서도

밤의 균형을 끝까지 지키는 존재다.

그래서 이 달은 배경이 아니라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하나의 인물처럼 다가온다.


감나무 끝의 붉은 감 하나는

이 시에서 유일하게 따뜻하다.

욕심이나 탐욕이 아니라

끝내 남아 있는 체온 같다.

달이 그것을 받치듯 있는 모습에서

세상은 아직 완전히 기울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전해진다.


그믐달은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몸을 숨기며 윙크를 보낸다.

이 장면이 참 좋다.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순간,

말보다 먼저 마음이 닿는 장면이다.


초승달에게는 아직 말하지 말라는 속삭임은

지금은 밝힐 때가 아니라는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조금 더 이 밤에 머물고 싶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 시는 서두르지 않는다.

드러내는 대신, 지키는 쪽을 택한다.


마지막에 비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달빛 속으로 숨어든다.

보이지 않아도 남아 있는 것들처럼.

이 시는 비밀을 풀어놓지 않는다.

독자의 밤에 살며시 맡겨둘 뿐이다.


그래서 이 시는

크게 말하지 않아도 오래 남는다.

조용히 읽고 나면,

하늘에 떠있는 달을 한 번 더 올려다보게 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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